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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Aug 28. 2018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때

나는 언제 이렇게 불친절한 사람이 되어버린걸까


대학교 새내기 때의 일이다. 종이인형 마냥 팔랑팔랑 가볍게 날아다닐 시절이다 보니 세상 만사가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도 이때 만큼은 진심이었다. 여느때 처럼 수업을 마치고 신나게 동아리방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잠시 시간 가능하신가요?'

당시의 나는 수강신청도 제대로 못해서 듣는 수업이라곤 고작 전공1개에 교양 3개였기 때문에 남는게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네 가능합니다만? 무슨일이신가요?' 자기를 약대 4학년 휴학생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커피 하나 사들고 잠시 벤치에 가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냐고 물었다.


세상사 깊은 고뇌를 잔뜩 담은 듯한 표정에 친절하게 커피까지 사주신다니 캠퍼스에 처음와 본 나로서는 이분이 무언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 사연이 있겠거니 지레짐작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은 어떠냐는 일반적인 물음과 함께 아이스크림 커피를 하하호호 사들고 벛꽃 이파리가 퐁퐁 날리는 인문대 연못가에 둘러앉았다. '그래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들어나보자' 그런데 그때 이분이 대뜸 하시는 말씀이

교회 다니시나요?

인것이 아닌가?


지금의 나였다면 두말할 것 없이 '저는 성당다녀요. 괜찮습니다~'하고 일어났겠지만 21살의 나는 길거리 전도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 밤 12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세상 사람들과 말을 섞어볼 일 자체가 없었고, 새로운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굳이 누군가를 경계하는 버릇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분에게 붙잡혀 3시간 동안 '주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물론 중간중간 도망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예수님께서는요..'
'아 네 저 근데 지금 제가 약속이..'
'아뇨 잠깐이면 돼요'
'네..(실패)'

뭐 이런 식의 실갱이를 한참 동안 한 뒤, 결국에는 이번 주말에 교회에 가기로 3번 약속을 하고, 손가락 도장을 찍고, 전화번호까지 교환하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나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길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일단 경계하게 된 것이. 그 뒤로 나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또 오랫동안 붙잡힐 것만 같아, 그런 낌새만 느껴져도 모르는 사람 항상 피해다녔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일이 있었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6개월 정도 밴쿠버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이 지역은 11월 말이 되면 한달 내내 비가 오는데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특히 남자들은 바람막이를 하나 덮어쓰고 처량하게 비를 맞으며 다니는 것이 마치 자랑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여느 주말 아침과 같이 잔뜩 새집지은 머리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찍찍 끌며 아침밥을 사기 위해 마켓으로 향했다. 장바구니를 빗속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왠 캐나다 할머니 한분이 나를 붙잡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대뜸 'Are you OK?'라고 물으셨다. 아니 캐나다에서의 전도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그건 아닐 것이고, 그냥 내가 지금 너무 안 OK해보이는 것인지 잠시 스스로를 점검해봤다. 뭐 나로서는 평상시 모습 그대로였다. 'Yes Im OK'


그랬더니 그 할머니께서 갑자기 'Oh~~~'하고 길게 탄식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랬다. 이 추운날 비까지 오는데 '양말 하나 없이' 장바구니를 들고 헤메고 있는 나를 '홈리스'로 착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더니 부득부득 마켓에서 자기가 양말 한켤레만 사주겠다고 나를 설득하셨다. 양말을 공짜로 얻으니 기뻐해야 할지, 거지 취급을 받았으니 슬퍼해야할지 갈피를 못잡았지만 어쨋든 나는 이 착한 할머님께 '저는 저기 보이는 저 학교의 학생이고 지금 아침밥을 사러 가는 길일 뿐'이라고 설명을 해드렸다. 할머니는 그 추운 날씨에 한참을 잘챙겨입고 다니라고 잔뜩 훈계를 하시고 자기 갈길로 돌아가셨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할머니의 진심이 느껴져서 어쩐지 그냥 웃기는 추억으로 남아버린 사건이었다.

그때 내가 밥을 사러 가던 길, 날씨가 맑으면 참 아름답다


서울에 돌아온 뒤 시간이 한참 흘러 나는 이제 '노련한 서울 직장인'이 되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붙잡더라도 눈길 한번 안주고 가던 길을 갈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지난 6년간의 캠퍼스 생활 동안, 단순한 전도를 제외하고라도 나에게 도를 가르쳐 주시려거나, 내 운명을 걱정해주시는 분들을 어림잡아 100명 정도는 만나뵈었던 것 같은데 1분 이상 대화를 한적은 캐나다에서의 경험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길거리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많은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굴어왔다.

얼마전 퇴근길 서울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하기위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 길거리 전도가 잦은 지역인지라 혼자 지나갈때면 보통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쳐다보며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런데 그날도 조금 남루한 행색의 아저씨 한분이 '저기요' 하며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나는 여느 때의 '노련한 서울 사람'처럼 '괜찮습니다'라고 인사드리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재빨리 시선을 앞으로 옮기려는데 당황한듯한 어린아이의 눈동자가 보였다. 순간 나도 화들짝 놀랐다. '어린애..?'


바로 걸음을 멈춘뒤 이어폰을 빼고 아저씨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말씀하시길

저..남대문 시장으로 가야하는데 이거 도통 복잡해서.. 여기가 지금 지도에서 어디입니까?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이 당연한 세상에 지도를 펴고 길을 물어보는 아저씨. 사투리를 쓰시는 걸 보니 지방에서 올라오신 것 같았다. 아까의 어린애는 아빠 뒤에 꼭 붙어서 복잡한 서울 도심과 야박한 민심이 불안한지 눈동자를 여기저기 굴리고 있었다. '아 지금은 여기구요, 저기 남대문 보이시죠? 이 방향으로 10분만 걸어가시면 돼요'

늘 재빠르게 지나쳐 버리는 서울역 환승


그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아이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줬을까? 서울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꼬맹이에게 나는 아마 처음 말을 걸어 본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뜸 들어보지도 않고 괜찮다고 가버리는 서울 사람. 그 아이는 이걸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


그때 캐나다에서 양말을 사주겠다고 우기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동양에서 온 '홈리스' 한명이 발이 시려울 걸 걱정하시던 캐나다 호호 할머니는 지금도 그런 따뜻한 마음으로 살고 계실까? 내가 아직도 밴쿠버를 떠올리면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때 그렇게 티없이 착한 사람들을 여러번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 아이에게 서울의 어떤 모습을 보여준 것일까.


늘 세상에 따뜻함을 더하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 세상에 얼음 한장을 더 올리는 냉혈한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면 적어도 한마디는 들어보아야겠다. 100번의 귀찮음이 있더라도 한명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서울에 사는 캐나다 호호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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