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섭 Sep 03. 2018

당신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시나요?

죽이려던 사람의 제자가 된 사카모토 료마


요즘 '빼액'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상대방과 말싸움을 하다 자신의 논리가 밀리면 '그래 알겠어, 인정!'이라고 말하는 대신  '빼액!'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단어인데요. 문제는 이처럼 '빼액'하는 사람들이 보통은 죽을 때까지(!) 본인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분들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짓누르려 하지요. 요즘 인터넷 뉴스를 켜고 정치권 기사나 사회면 단체 시위 영상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빼액'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때 매우 유명했던 MS오피스 구매 사건


그러나 소위 말하는 이런 '고집불통'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9세기 중반 일본에서도 이렇게 '빼액'대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니까요. 다만 이 시기가 지금보다 좀 더 잔혹한 면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상대방의 목에 '문자 그대로' 칼을 꽂아 넣는 행동이 대낮에도 버젓이 일어났다는 것일 겁니다. 끔찍한 테러와 극단적인 반목이 매일 목격되던 시대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행동이었을 텐데요. 오늘은 이런 '용기 있는 유연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사카모토 료마'입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낸 영웅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는 하급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이 속한 도사 번(커다란 광역 행정지역)에서 검술(!)을 연마하는 무사로 성장했는데요. 당대의 하급 사무라이로서는 드물게 에도(도쿄)까지 유학을 가 검술 수업을 받았다고 하니 꽤나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도 시대의 흐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서양 오랑캐가 침략하여 일본의 대문에 대포를 마구 쏘아대는데 무기력하게 협조하고 있는 당시 정권을 보며 불만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죠. 이후 고향인 도사 번으로 돌아온 그는 도사 근왕당이라는 단체에 가입합니다.


도사 근왕당(土佐勤王党)은 말 그대로 '도사 번에 천황을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이 사람들이 혈서로 쓴 내용을 한번 보면 대략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하고 신성한 우리나라가 서양 오랑캐에게 능욕을 당하고,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기풍이 풍전등화에 놓였다... 우리는 천황 폐하의 깃발이 또다시 펄럭이도록... 백성에게 닥친 재난을 막을 수 있도록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조선 후기 올곧은 선비들이 생각나는 말투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도사 근왕당은 천황 폐하를 위해 서양 오랑캐들을 모조리 무찌르는 '기풍 있는' 사무라이들로 구성된 단체였다는 것이죠. 이 사람들은 도사 번 안에서 당시 정권(천황이 아닌 쇼군이 다스리는 일본)에 협조하거나 서양 오랑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테러하고 비난하는 정치단체로서 활동합니다.


뭐...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도사 번 내에서 암살과 테러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던 1862년, 검객 사카모토 료마는 도사 번을 탈출합니다. 그가 탈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고지식한 사무라이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에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대에 번을 탈출한다는 것은 지금의 탈북과 비슷한 행동입니다. 붙잡히면 대부분의 경우 사형이 기다리고 있는 중범죄였죠. 사형까지 감수한 그가 에도에서 처음 하려고 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검객 료마는 에도에서 가쓰 가이슈라는 사람을 암살하기로 결심합니다. 가쓰 가이슈는 에도 정권에서 해군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네덜란드 학문을 공부하고, 미국에 견학까지 갔다 왔으며, 정권에서는 서양식 해군 건설이라는 중책을 맡은 사람. 서양 오랑캐를 무찌르고 왕을 떠받들고자 했던 료마에게는 악의 축과도 같은 인물이었죠. 료마는 결국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가쓰 가이슈 죽이고자 그의 집에 침입하게 됩니다.


당대 일본 해군 최고 전문가 가쓰 가이슈


그러나 칼을 든 료마를 본 가쓰 가이슈는 짐짓 태연하게 말을 건넵니다. '날 죽이러 온건가? 그 때문에 찾아온 거라면, 그전에 잠시 이야기 좀 하세나' 어리둥절 해진 료마는 잠시 칼을 내려놓고 이 패기 있는 사내의 말을 찬찬히 들어봅니다. 꽤나 멋진 장면처럼 보입니다만 이미 가쓰 가이슈는 료마가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경호를 강화해 놓은 상태였으니, 그가 완전히 위험을 감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참 동안 암살의 표적에게서 그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료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오늘 밤 선생님을 반드시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속좁고 편협했던 저의 생각을 반성합니다. 저를 부디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이 일화를 보면 가쓰 가이슈라는 사람이 대단해 보입니다. 자신을 죽이러 온 암살자를 제자로 만들다니요.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료마의 판단과 용기가 더 대단해 보입니다. 그가 속했던 도사 근왕당 사람들은 대부분 정적을 암살하다가 죽임을 당했으며, 극단적인 경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도사 근왕당은 대장이 할복자살하며 단체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복잡하긴 하지만 요즘으로 치자면 원리주의적 성격의 테러단체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적의 말을 경청하고 진심으로 따르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미 죽음까지 감수하고 도사 번을 빠져나왔던 그였으니까요.


사람의 앞 일은 아무도 내다볼 수 없나 봅니다. 저는 이제 날마다 제가 꿈꾸어 온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한 그는 고향에 있는 누나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에서도 커다란 행복감이 느껴지지요. 일본의 근대화, 서양화를 위해 짧은 평생을 오롯이 내던진 사카모토 료마의 삶은 이후 '삿쵸 동맹', '대정 봉환'이라는 굵직굵직한 거사들을 이루어내며 '메이지 유신'의 초석으로 우뚝 섭니다.


지금도 일본에서 다양하게 변용되고 있는 료마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냐는 가쓰 가이슈의 말에 료마가 '빼액'하고 응수했다면,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그는 아마 역사에 이름조차 남지 않는 무명 검객으로 스러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무작정 떼를 부리기 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작은 행동이 새로운 시대의 사카모토 료마가 탄생하는 배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출처

마리우스 B. 젠슨,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도널드 킨, '메이지라는 시대'

마쓰우라 레이, '사카모토 료마 평전'


사진 출처

JBTC, '썰전, 2016.10.13'

NHK, '료마전' 시능지님 블로그 캡쳐

일본 위키피디아


#역사 #일본 #일본사 #리더십

작가의 이전글 반성하는 리더의 '위대한 실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