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 New ICT 탐방기 - 上편[대공방, 성가대륙]
'음.. 저는 견문을 좀 넓혀 보고 싶은데요 리더님'
얼마 전 회사에서 중요한 보고가 한번 있었다. 온갖 쟁쟁하신 분들 앞에서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째깐한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셨던 건지 많은 분들이 호평을 남겨주셨다. 덕분에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2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고 우리 팀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팔짝팔짝 기뻐하셨음은 물론이다. 그때 우리 리더께서 넌지시 물어보셨다. '혹시 원하는 게 있나요?'
뭔가 포부 있는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씀드렸다. (원래 해파리처럼 살아가고 싶은 소시민이지 이런 야망가는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 밖의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걸 경험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는데, 당시에는 의례적인 대화일 거라 생각하고 완전히 까먹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리더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면 선전을 한번 다녀와 보는 게 어때?' 그래서 나는 졸지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중국 선전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중국의 New ICT와 스타트업 생태계 체험'이라는 생경한 미션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장소는 외관상 아파트 형 공장이 줄줄이 이어져있는 칙칙한 단지 형태였는데, 내부로 들어가 보니 알록달록한 깃발들이 곳곳에 붙어 '여기는 혁신의 친구, 스타트업이에요!'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대공방이 하는 일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아이디어를 실물로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초등학생이 쓰는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싶다면, 그 아이디어를 들고 대공방을 찾아가면 된다. 그러면 대공방에 있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기본적인 설계를 도와주고 선전 외곽과 위성도시에 있는 공장과 연결하여 시제품을 싸게 만들어준다. 그러다 소위 '대박'이 탄생하면 그때부터는 수십만 개씩 주문이 밀려드는 구조다.
사실 대공방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우르르 쏟아진다. 한국과 교류가 워낙 많은 엑셀러레이터 이기도 하고, 이미 다녀오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는 쉽게 얻기 어려운, 대공방 대표님께 그 자리에서 던졌던 질문들을 정리해보았다.
1. 몇 개의 팀이 있나요?
현재 40 여개의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2. 대공방 입주자격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드웨어 기반의 스타트업인가?, 둘째, 시장성이 있는 스타트업인가?
3. 정말 많은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수익을 어떻게 만드시나요?
수익구조는 단기 수익과 장기 수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기 수익: 입주된 팀에게 임대료를 받습니다. (한국은 지분을 주고 사무실 입주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중국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부동산 임대 관계가 훨씬 철저한 듯 보였다.), 또한 디자인이나 프로토타입 제작을 도와주면 그만큼의 돈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 인증 기관으로서 정부 보조금도 지원받고 있지요.
장기: 가능성이 높은 창업팀은 주식에 투자합니다. 그리고 해당 주식이 상장되면 그 주식으로 수익을 얻습니다.
4. 지원하는 사업의 성공률은 어떻게 되나요?
대공방은 창업팀의 성공을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망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사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70~80% 정도의 팀이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합니다.
두 번째는 '대규모 투자유치(수만 대 이상의 선주문 등)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보통 10% 정도의 팀이 이 목적을 달성합니다.
5. 성공하는 팀과 실패하는 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사업에 성공하는 팀은 학습능력이 뛰어납니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잘 만들어와서 그대로 출시하겠다는 팀은 좀처럼 성공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제품을 가져왔지만 끊임없이 소비자들에게 물어보며 아이디어를 발견시켜 나가는 팀은 대부분 성공했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6. 저는 대공방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요! 어떻게 지원하면 되나요?
일단 먼저 아이디어에 대한 메일을 보내세요.(대공방 메일: admin@imakerbase.com) 메일을 준 해외팀이 직접 오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필요하다면 동영상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저희는 일단 창업자의 발표를 먼저 들어본 뒤, 대공방의 전문 심사위원들과 외부 컨설턴트가 협의하여 사업을 선발 여부를 결정합니다.
7. 저는 소프트웨어 쪽 창업을 하고 싶은데 이것도 대공방의 지원을 받을 수 있나요?
저희는 오직 하드웨어 창업만을 취급합니다. 대공방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생각을 현물로 빠르고, 그리고 싸게 만들 수 있도록 공급체인과 연결해준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쪽 창업을 여쭤보시면 제가 추천할 수 있는 업체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마냥 좋아 보이는 대공방이지만 한계점도 분명한 것 같았다. 현재 대공방에 대한 리뷰 글들은 대부분 해당 기업의 가치에 대해 찬양 일색이다. 하지만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필자의 눈치코치로 느낀 대공방의 단점들을 굳이 정리해보았다.
1. MOU(업무협약)를 엄청나게 많이 한다.
필자도 MOU를 준비하며 느꼈던 것이지만 MOU는 사실 무언가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냥 일을 하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MOU가 1건 있으면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성과'가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공방은 MOU 대비 성과가 부실하게 느껴졌다.
2. 작업 환경이 안 좋다.
일하기가 안 좋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환경'이 안 좋다. 안 그래도 미세먼지 천국인 중국인데 하드웨어 작업장과 공사장까지 펼쳐져 있으니 주변이 온통 뿌연 하늘이다. 대기 환경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아주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세먼지에 민감하지 않은 나도 여기서는 켈록켈록 목이 너무 아팠다. 은은한 페인트 냄새가 늘 도사리는 지역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3. 렌더링 이미지가 많고 실물은 많이 보여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성공 사례 상품을 렌더링 이미지로 소개해준다. 예를 들자면 '우리 대공방은 이런 이런 제품을 지원했어요!'라는 식으로 포스터나 광고 이미지만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실제로 소비자에게 얼마나 팔렸고, 그 상품을 들고 있는 소비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많은 제품들이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우리가 찾아갔던 스타트업 업체는 성가대륙라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이었다. 사업 소개는 허동주시라는 아주 젊은 대표분께서 해주셨는데 나보다도 훨씬 어린것 같았다. 눈으로 볼 때는 24~25살 정도? 세상에 저 나이에 몇십억씩 투자를 받고 자기 사업을 만들다니 '중국 청년 사업가'라는 것이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동주시 대표는 아주 초롱초롱한 눈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의 미래와 자신의 회사가 지향하는 역할에 대해 1시간가량 토론을 진행했다. 그때 내가 물어봤던 질문들을 나열해 보았다.
1. 제가 좀 헷갈려서 그러는데요. 성가대륙의 수익 모델이 정확히 뭔가요? 채굴기? 아니면 코인 발행?
저희는 복합적인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채굴기 판매가 핵심이긴 하지요. 지금 눈앞에 보시는 것이 저희 채굴기 모델입니다. 대공방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이니 하드웨어 중심인 것이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저희 회사는 채굴기에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데이터 저장 체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2. 블록체인이 결국 성공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믿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탈중앙화의 가치를 믿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블록체인에 대해 다양한 말을 해주었지만, 너무 블록체인에 관해 심화된 내용인지라 생략)
3. 저도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습니다만 전망은 회의적인데요. 탈중앙화가 결국 '현재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민감한 질문인 줄은 압니다만, 현장에서 일하시면서 느끼시는 '중국 정부의 블록체인 방침'은 어떤가요?
반대로 저도 한 번만 여쭤보겠습니다. 한국 정부의 블록체인 지침은 어떤가요? (나: 한국 정부는 표면적으로 블록체인과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지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블록체인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제약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보를 탈중앙화 한다는 건 결국 현재 정보를 쥐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그렇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거든요.) 중국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난관들이 좀 있었죠. 그렇지만 블록체인을 지지한다는 것은 믿음 아닐까요? 언젠가는 그 생태계가 튼튼하게 만들어질 거라는, 이 방향이 맞다는 믿음이겠죠. (둘 다 뭔가 공감하며 끄덕)
스타트업 대표의 초롱초롱한 눈이 마음에 쏙 들었던지라 소개가 끝나고 난 뒤 잠시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나는 한국 대기업에서 사내 벤처를 하는 사람인데 네 눈빛이 너무 대단해 보인다. 나중에 내가 연락해서 한번 더 대화해도 되겠느냐'는 말이었고 그는 흔쾌히 연락처를 주었다.
사실 성가 대륙이라는 회사 자체가 그렇게 혁신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데이터 저장 방식에 블록체인 코인을 엮는 것은 이미 '경영학원론' 수준으로 낡은 개념이 아닌가. 그렇지만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젊은 리더가 있다면 이 사람은 언젠가 뭔가는 만들겠구나 싶었다. 때마침 요새 나는 대체 어떤 눈빛으로 생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중국 하드웨어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코끼리의 꼬리 정도는 만져본 것 같았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꼭 공장까지 방문해서 하드웨어 생산의 시작과 끝을 전부 경험해보리라 다짐하며 숙소로 향했다. 선전 체험에서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이 다들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성공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사람만 가득가득한 공장이라니. 무료한 삶을 살던 내 볼때기를 꽉 꼬집는 기분이 들었다. 배운 것보다 반성이 더 많았던 선전 체험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