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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Nov 15. 2018

수능 답안지를 밀려써 본 인간의 소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현관문을 나서면 코끝이 저릿저릿한 날씨, 어딘지 모르게 바람결에 숯냄새 같이 것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수능 시험이 눈앞에 닥쳐왔다는 뜻일 겁니다. 전국에 수십만명의 수험생이 사생결단의 각오로 긴장하고 있기 때문인지 수능시험 주간이면 늘 쌀쌀한 한파가 닥쳐오곤 하지요. 제가 수능을 봤던 9년 전 목요일에는 모두들 패딩을 입었으니 아마 오늘보다 훨씬 추웠던 것 같습니다. '으으 겁나게 춥네', 바래다 주시는 부모님을 뒤로하며 교문 안으로 들어가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가위로 오려놓은 것처럼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하루종일 고된 시험을 마친 뒤 부모님을 다시 만나며 제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그냥 그랬어요'라는 평범한 답변이었습니다. 모의고사를 보면 늘 일관된 기분에 일관된 점수가 나왔기 때문에 수능이라고 별반 다르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실제로 부리나케 집에 가서 가채점을 해보니 평상시 나오던 점수가 고~대로 나왔고 '아이고 이 거지 발싸개 같은 수험생활도 이제는 영영 끝이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탱자탱자  한량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성적표가 발표되던 날, 담임선생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와 뭐야 나 뭐 막 전교 1등 그런거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하며 교무실로 후다닥 달려갔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올~, 올~' 소리를 내며 재수없으니 빨리 다녀오라고 킬킬대고 있었지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 점수가 조금 이상하더라'. 성적표를 죽 한번 흝어보니 영어 점수가 원래보다 50점 정도 낮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산 오류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해보니 답안지를 밀려썼더라구요. 듣기 마지막 문제가 안들렸다는 이유로 한 칸을 빼놓고 답안지를 쓰다가 읽기의 모든 문제가 하나씩 앞으로 밀려있었던 것입니다. 컴퓨터용 싸인펜을 쥔 순간부터 평생 답안지 잘못 써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절대 잘못 쓰면 안되는 답안지에서 처음으로 실수를 한 것이었습니다.


수능 답안지를 밀려쓰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아무 기분도 안듭니다. 이게 뭔가 수습이 되는 참사를 만나면 사람이 머리속으로 계산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일을 겪게 되면 뇌가 정지하는 것 처럼 서버립니다. 그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는 경험이 뭔지 느껴봤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모든 입시계획은 취소되었습니다. 집안 분위기도 말 한마디면 조각조각 갈라져 서로를 찔러대는 초겨울 얼음장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집을 나갔습니다. 핸드폰이고 지갑이고 아무것도 안들고, 츄리닝에 맨투맨 하나 입은 잠옷차림으로 초저녁부터 아침 해가 뜰때까지 겨울밤을 계속 걸었습니다. 12월 칼바람에 귀가 떨어질 것처럼 너무너무 추웠는데도 그때는 뭔가 '내가 죄를 지었고 나는 충분히 반성해야돼'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새벽 4시쯤 되니까 이러다 진짜 발가락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능 답안지 밀려쓴 수험생, 죄책감에 밤새 걷다 길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 이런 뉴스 헤드라인도 스쳐지나갔는데, 상상해보니 너무 부끄럽고 끔찍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밤새 한숨도 안주무시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가 쭈뼛쭈뼛 들어오는 걸 보시더니 시금치 된장국 한그릇을 끓여주시곤 '보일러 틀어놓았으니 얼른 들어가 자라' 한마디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를 감기몸살에 걸려 끙끙 앓아눕고 난 뒤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한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좀 지독해지는게 있었습니다. 그 뒤로 재수 생활을 하는 동안 정말 기계처럼 6시에 일어나고 12시반에 자는 생활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했습니다. 같은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도 저와 조금 친해진 뒤에는 '너는 좀 무서워'라는 말을 하곤 했던 것을 보면 그때 저는 아마 지금의 뒹굴거리는 베짱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쨋든 그 뒤로는 대학도 적당히 가고, 취직도 어영부영해서 자기 앞가림하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20대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처럼 매해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면 답안지를 밀려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때는 세상이 멸망하는 것 같았던 일이 지금은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무용담이 된 것을 보면 어쩐지 제 자신이 너무 가벼운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나 오늘 본 수능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수험생이 있다면 그냥 무용담 하나 얻었다 생각해 주세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심각했었지 떠올리며 친구들과 낄낄거릴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똑같은 수능시험에 나만의 추억 하나 생겼다며 어처구니 없는 합리화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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