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섭 Nov 29. 2018

좋아하는 가수를 만나는 가장 특별한 방법

가수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어 주세요 [1편]


야야야!
내가 대박 재밌는 일 하나 찾았어!
 너 나랑 이거 같이하자.
이거 안 하면 진짜 평생 후회할 거야!


군대에서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맨날 같이 놀러 다니던 친구 하나가 대뜸 전화를 하더니 '안 하면 평생 후회할 일을 알려주겠다'며 공갈협박을 시작했다. 그래 한번 들어나 봅시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 난리람. 심드렁하게 목소리를 깔며 그 녀석이 가져온 '대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너 '브로콜리 너마저' 팬이잖아! 그치!
우리 그걸로 뮤지컬을 만들어보는 거야!
이미 극본까지 다 써놨어.
넌 그냥 와서 숟가락만 얹으면 돼.
어때 대박이지! 완전 좋지!!

 

이미 너무 들떠서 정신은 반쯤 브로드웨이에 가있는 친구를 워워 진정시키고 전후 사정을 한번 찬찬히 들어보았다. 요지는 이랬다. 이 친구는 당시 도서관에 갇혀 고시생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심심해서 죽으려고 했다. (원래 '인간 외향성'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조로만 이루어진 울적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우연히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듭니다!'라는 신통한 대자보를 보게 된 것이었다. '브콜너'의 열혈 팬이었던 친구는 쿵쿵 뛰는 심장을 붙잡고 어떤 '의로운 사람'이 이렇게 멋진 일을 하냐며 곧장 극본을 쓴 당사자를 찾아갔다.


덕후들이 모여든다


극본을 쓴 학생은 고시생보다 더한 열정파였다. 노래 가사에 이야기를 더해 뮤지컬 대본을 써낸 것도 모자라, 원곡 가수에게 공연 허락(!)까지 받아 냈으니 말이다. 고시생 친구가 '왜 이런 (멋지지만 쓸모없는)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신이 원래부터 브로콜리 너마저의 골수팬이었으며,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지금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답했다. 그래서 대뜸 브로콜리 너마저의 소속사 사무실로 찾아가 '차가운 현실에 지친 대학생들을 위로하는 뮤지컬을 만들고 싶은데 당신의 음악이 내 생각과 꼭 맞다'며 원곡 가수를 설득했던  것이다. 처음 만난 당사자에게 이 일화를 직접 들은 고시생 친구는 이거야 말로 낭만이 죽은 시대(?)에 '진짜 열정'이 담긴 '청춘의 작업'이라 생각했고, '이번 생에 무조건 해야 하는 일'로 이 뮤지컬을 낙점했다.

그런데 여기서 멈췄으면 좋으련만 녀석은 곧장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잘 아는 연극 덕후, 브콜너 덕후가 있는데 걔도 백프로 같이 할 거다'라는 허언과 함께 말이다. (당사자는 안중에도 없었던 듯하다.) 그리하야 '너랑 내가 이미 연극에 잔뼈가 굵으니(?) 공연에 참여해서 평생 후회할 짓을 만들지 맙시다'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나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1년 반 동안 극단 했던 애들이 무슨 연극을 안다고 그런 소리를 했었나 기가 찰 노릇이다.


며칠 뒤 나는 고시생 친구를 만나 공연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전역했으니 이제 공부할 거야! 내 학점이 지금 심해어류처럼 살고있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웬걸 이 친구는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전혀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리곤 '이거 읽으면 생각이 바뀔 거야'라며 얇은 대본집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소박한 대본집의 첫 장에는 '졸업'이라는 제목이 조그맣게 적혀있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 타이틀 곡과 꼭 같은 제목. 저 우울한 노래를 타이틀로 삼다니 상당히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들의 이야기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어느덧 극본을 썼던 열정둥이 극작가를 만나고 있었다. '하 전역하자마자 이렇게 또 공연에 코가 꿰이다니, 어머니 저는 역시 공부 팔자가 아닌가봐요' 생각하고 있던 차 극작가 친구가 나에게 '연출'을 부탁했다. 사실 내가 연출을 잘해서 요청했다기보단 희곡 관련 수업을 주구장창 들으며, 공연 덕후로 살고 있는 인간이 대학생 중에서는 그나마 조그만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겐 21학점(!)이라는 복학생 전용 '구속영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래서 적당히 홍보 스태프 정도만 하겠다며 완곡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이렇게 나처럼 모인 사람이 배우, 연출, 밴드, 스태프까지 해서 총 30명이 넘었으니 상당한 규모의 공연팀이었다.


그 뒤로 나는 홍보팀의 일원으로서 연극에 바람을 넣는데 최선을 다했다. 공연의 제목이 '졸업'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졸업 관련 콘텐츠를 기획했었다. 중간고사가 한창인 생뚱맞은 시즌에 학사과에서 졸업 가운을 빌려 입고 '브콜너' 노래를 부르며 한량마냥 돌아다니기도 했고, 인문대 연못 앞에서 부스를 차리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나에게 보내는 졸업식 영상 편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원래 성격과 상당히 안맞는 일들이다) 하루는 공연의 밴드 팀과 함께 길거리 버스킹을 나갔던 날도 있었다. 다 함께 '보편적인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이래서 연극 놀이를 하나보다 하는 짜릿한 기분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보편적인 사랑이 되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공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자의 사정이 바빠 연습이나 리허설을 자주 보지 못했던 스태프들은 우리 공연이 이제 완성 단계에 왔겠구나 지레짐작을 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든다'니 이런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온다면 얼마나 멋진 작업이 될 것인가. 공연팀 전부는 연극의 중간 점검을 위해 서울 근교로 워크샵을 떠났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리허설 무대가 막을 올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배우들이 연기를 상상초월로 못했다.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인 발성도 내지 못했고, 딱딱하게 굳은 몸짓으로 노래를 하는데만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건 마치 6명의 브로콜리 너마저 팬들이 마이크를 돌려가며 전국팬심자랑을 하는 꼴사나운 모양새였다. 배우들도 그 점을 잘 알았던지 스태프들 앞에서 한없이 숨고 싶어 했다. 연출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대참사였다.


이런 비극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당시 연출을 맡고 있던 책임자는 작곡과의 4학년 졸업반 친구였는데 곡의 편곡과 밴드 지도에만 집중하느라 배우들의 연기를 봐줄 시간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또 본인이 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지도할 내용이 없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배우들은 '각자 알아서' 연습해야 했고, 그러니 발성, 동선, 무대, 소품 활용처럼 연기에서 중요한 것들이 거의 백지상태였다. '이건 지인들을 부르면 욕 엄청 먹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 30명의 구성원들이 모두 좌절하고 있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착잡한 마음에 펜션 앞 벤치에서 사탕을 와그작와그작 씹고 있었다. (담배 피우는 친구들을 맞춰주느라 츄파춥스를 들고 다니던 버릇이 있었다) 그때 극본을 쓴 친구가 살그머니 찾아오더니 오늘 연기가 어땠냐며 조심조심 물어왔다. 나는 정말 솔직하게 대답하고 싶었다. 왜냐면 진짜 망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 뮤지컬에 참여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라는 대답을 했다.

친구의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졌을 때, 나는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꿈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선을 긋고 뒤로 물러났던 인간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옷자락만 매만지고 있었고 나도 할 말이 없어서 덩달아 한숨만 푹푹 쉬어주었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 때였나. '너가 해줄 순 없어?'라는 자그마한 개미 소리가 흘러나왔다.


(2편에서 계속)

작가의 이전글 전설에게 죽음은 작은 쉼표에 지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