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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Nov 27. 2018

전설에게 죽음은 작은 쉼표에 지나지 않는다

영시로 읽어보는 <보헤미안 랩소디>


글쎄 이 영화를 보면서 왜 불안했을까?


어젯밤에 심야 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왔어. 그래 네가 그렇게 보라고 난리, 난리를 피웠었는데, 어제 드디어 영화관에 갈 시간이 나더라. 뭐래 너랑 안 봤다고 내가 모든 걸 혼자 보지는 않아. 이번 영화는 엄마랑 같이 봤어. 뜬금없이 갑자기 웬 엄마냐고? 그러게, 나도 잘 몰랐는데 우리 엄마가 퀸 노래를 전부 다 알고 계시더라구(!). 내가 깜짝 놀라며 '아니 엄마가 퀸 노래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하고 물으니 우리 엄마 대답이 정말 대박이었어. '나야말로 진짜 퀸 세대다. 이 가짜야!'

영화 정말 좋더라. 네가 왜 그렇게 보라고 했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어. 지금도 Radio Gaga가 머릿속에 재생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한 일주일 정도는, 이 기분에 푹 젖어서 살아보고 싶어. 영화의 마지막 20분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아직도 엄마랑 나는 윔블리 스타디움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것만 같아. 그래 다음번에는 꼭 같이 싱어롱 극장에 가보자. 조금 부끄럽겠지만 신나게 놀아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되겠다.


월드 베스트 난닝구

그런데 사실은 말야,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불안했어. 그건 아마 내가 이미 프레디와 퀸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프레디가 메리에게 청혼을 하는 아름다운 장면도 나에게는 겨울을 알리는 붉은 단풍처럼 예쁘지만 스산하게 느껴졌어. 괴짜 여왕님이 뻐드렁니를 번쩍이며 '안녕 덴버! 안녕 포틀랜드!' 멋지게 소리를 지르던 순간조차, 죽어가는 전설의 슬픈 얼굴이 겹쳐 보였다면, 어때 내가 너무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사람인 것 같니? 혹시 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


그래 영화는 결국 내가 걱정하는 그 파국의 바다로 흘러가 버렸어. 프레디가 기침한 휴지에서 핏방울들을 발견한 순간 나도 그와 함께 돌처럼 굳어버렸지. 엄마가 옆에서 감자깡 좀 먹으라며 손짓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그 상태로 죽 침잠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가 전설이라고 하지만 나의 락스타가 삐쩍 마른 모습으로 스러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야. 대체 앞으로 남은 40분의 러닝타임을 어떻게 받아들인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한참 손에 깍지를 끼고 프레디의 안색을 살피고 있는데 그가 멤버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나 걸렸어'. 나는 이 장면에서 퀸 3인방 배우들이 진짜 연기를 잘한다고 느꼈어. 짐작은 했지만 모른척해야 하는 그 미묘한 감정을 표정에 고스란히 담아내더라구. 그다음에 프레디가 뭐라고 이야기했는지는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난 너희만 이 이야기를 알았으면 좋겠어. 그냥 난 앞으로도 계속 음악이 하고 싶을 뿐이야, 이런 걸로 눈물 짤 시간에 연습이나 하자고. "난 프레디 퍼킹 머큐리니까."'


연습이나해 그시간에

진짜 웃기는 인간이지. 다 죽어가는 마당에 연습이나 하라니. 그런데 이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영시 한편이 있었어. 'Death be not proud'라는 아주 유명한 시인데 내가 너를 위해 짧게 요약해 줄게

죽음아 뽐내지 좀 마라. 사람들이 너를 강대하고 두렵다 하여도, 실상 너는 별것도 아닌걸.
네가 정말 죽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사실은 죽은 것이 아니야. 넌 나도 죽일 수 없을 테지. (중략)
가장 선한 자가 너를 따라가지만, 그것은 그저 육체의 평안이자 영혼의 구원일 뿐. (중략)
아편이나 마술도 우리를 잠들게 할 수 있으니, 너의 칼보다 그게 훨씬 나을 거다.
그러니 네가 자랑할게 뭐냐. 짧은 잠 한번 지나, 이제 영원히 깨어나면,
죽음, 넌 그저 아무것도 아니지, 죽음 바로 네가 죽을 거다.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l die]

죽음에 대해 큰소리로 호통치는 존 던의 시가 마치 프레디의 포효처럼 느껴지지 않니? 세상에 별의별 시가 다 있다지만 죽음을 조롱하며 협박하는 시는 이 시가 아마 최초였을 거라 생각해.


죽음아 까불지마라 -존 던

이 시에 대한 재미있는 비평을 하나 알려. 비평가들이 오랫동안 싸우던 주제가 하나 있었어. 바로 문장부호에 관한 싸움이야. 혹시 내가 영어로 써놓은 마지막 2행이 유독 쉼표(,)를 많이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니? 비평가들은 이 곳에 쉼표(,) (쉬어가기)를 써야 하나 세미콜론(;) (단절하기)을 써야 하나를 두고 엄청나게 싸웠다고 해. 이게 굉장히 헷갈리게 쓰여있었나 봐.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하나야. 쉼표를 쓰자. 비평가들은 이렇게 말해. 존 던이 이 시에서 굳이 문장을 완전히 끊는 온점이나 세미콜론 대신 쉼표를 사용한 이유가 '죽음이란 게 그만큼 별거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거야. 한숨 자고, 쉼표 한번 찍고 나면 영원한 삶을 얻는데, 죽음아, 넌 진짜 별것도 아니구나, 그저 쉼표 한번 찍을 만큼 가벼운 녀석아.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다고 본거지.


난 프레디가 죽음에 대해 가진 태도라는 게 바로 저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해. 물론 프레디도 죽음이 두려웠을 거야. 에이즈를 진단했던 의사 선생님 앞에서 손을 부르르 떨며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지만 시시각각 조여 오는 죽음에 대해 프레디는 '난 그냥 퍼킹 프레디 머큐리니까'라고 소리를 높여. 그리고 그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음악 작업에만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하지. 참 놀라운 것은 그가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을 이어가다 급성폐렴으로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거야. 마치 오랜 서사시에 짧은 쉼표 하나 찍는 것처럼 말이야. 전설에게 죽음이란 것은 참 별것도 아니라는 듯.


병이 깊어 비쩍마른 얼굴에도 눈빛만은 형형해

지금도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는 중인데, 프레디가 이런 말을 하네 '내가 내일 돌아오지 않을지 몰라도. 그냥 계속 살아가라고. (Carry on)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래 확실히 프레디는 잠깐 쉼표를 찍었을 뿐인 것 같아. 그가 오늘 월드투어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가 그 투어를 대신해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존 던의 시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죽음을 가볍게 쉼표로 넘겨버리고, 사실 영원히 깨어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해보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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