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동안 닉네임을 고민하다 쓰는 하소연
얼마 전 회사 세미나에서 퀴즈를 맞추고 스타벅스 카드를 상품으로 받았다. 룰루랄라 스마트폰 앱을 켜고 카드 번호를 등록하고 있는데 '나만의 닉네임'을 입력하는 창이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닉네임'의 함정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제발 나한테 이런 문제 좀 내지 마세요..) '뭐 이런 걸 고민하나, 참 한가하고 쓸데없다'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 닉네임에 대한 고민은 내가 인터넷 창을 켜기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주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닉네임과의 사투'는 한메일(hanmail) 아이디를 만들 때 발생했다. 당시 9살이었던 나는 그때도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 알림장 공책을 5장씩 채워가며 온갖 후보군을 저울질 했었다. 그 콩알만한 것이 '우리 엄마 아빠는 대체 내 이름을 어떻게 지은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던 것을 보면 어린이에게도 이 주제는 아주 심각한 고민거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꼬맹이의 결론은 단순했다. 그 시절의 나는 초딩 남자애들이 흔히 그렇듯 어른이 되면 '우주비행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스티븐 호킹'이었다. 그래 우주로 짓자. 그래서 그때 지었던 아이디가 woojoo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명쾌한 결론도 없다)
그 뒤로 나는 온-라인 월-드에서 'woojoo'라는 닉네임으로 살았다. 때때로 누군가 나의 '우주'를 선점하여 곤란한 순간이 오면 'stargazer'(별 보는 사람)나 'supernova'(초신성)처럼 '우주'와 연관된 아이템을 찾았고, 고등학교에 가기까지 닉네임과 나는 서로 사이좋게 오손도손 공존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의 닉네임이 되는 아주 적절한 콜라보레이션이 가능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내가 우주로부터 멀어지면서 시작되었다. (갑자기 뭔가 철학적인 느낌) 나는 고등학교를 외국어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전공으로 영어를 선택했다. 대학교에 가서까지 전공이 영문학이었으니 이제 나는 우주와 1도 상관이 없는 평범한 '지구인'이 된 것이었다. 최근에 우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것은 '인터스텔라'를 관람했을 때 뿐이었다. 이제 나 같은 녀석이 '우주'라는 닉네임을 가진다는 것이 어쩐지 삐걱삐걱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닉네임이 'English'였다면 오히려 적절했을 텐데.
그와중에 스티브 잡스께서 모바일 혁명을 시작하사, 이제 세상 모든 서비스에 아이디가 필요해졌다. 나의 '닉네임 고민'은 더더욱 심각해졌음이 물론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나 시작하려 해도 '닉네임 선택'란에서 2시간씩 고민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마 이렇게 고민한 시간을 다 합치면 죽을때쯤 한 몇달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라도 해서 문제가 풀렸으면 좋으련만 결국 2시간씩 고민하고 짓는 닉네임이 당시 먹고 싶은 음식이었으니 지금도 온갖 아이디가 '초밥', '명란크림파스타', '방어회'처럼 먹을 것 일색이다.
이 닉네임 열풍은 이제 오프라인 회사에도 불어닥쳤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호칭을 통해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어간다'며 '팀장님', '그룹장님'처럼 직책을 부르는 대신 '이름'+'님', 혹은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물론 잘 지켜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긴 하다) 문제는 내가 이 닉네임을 아직까지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세례명인 '다니엘'을 사용해 볼까 했었는데, 때마침 팀장님 닉네임이 다니엘이었다. 어거지로 그 이름을 사용하자니 권위에 대한 도전같이 느껴져 결국 '광섭님'으로 정착하고 말았다.
나는 이 닉네임 고민이 사실 내 '자아찾기'와 연관되는게 아닌가 싶다. 나를 규정하는 하나의 단어를 찾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그 단어라는 것은 너무 힘이 들어가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한없이 가벼울 수도 없다.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속박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사람을 잘 모르겠으니 결국 이 단어는 지금까지 우주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 아무거나 대충 짓자. 결국 오늘도 닉네임 잘 짓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스타벅스 입력 창을 2시간 동안 고민하다 결국 지금 먹고싶은 '햄치즈파니니'가 되기로 결심했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다들 각자의 '호'가 있었다던데 나는 대체 언제쯤 마음에 쏙 드는 닉네임을 가지게 되려나. 때마침 브런치의 여러 작가님들을 보면 '따뜻하고 다정하며 재치가 넘치는, 그리고 본인에게 꼭 맞는 닉네임'을 가지신 분들이 종종 보인다. 그런 분들에게 궁금하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좋은 닉네임을 생각하셨는지.
앞으로도 '햄치즈파니니'는 이 고민을 죽 이어가야 하나보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