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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Jan 02. 2019

좋아하는 가수를 만나는 가장 특별한 방법

가수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어 주세요 [2편]


1편 URL: https://brunch.co.kr/@supernova9/77


전편 요약 :

쌀쌀맞은 관악의 봄, 창의력 대장인 덕후 하나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로 뮤지컬 극본을 쓴다. 공연을 좋아하던 필자는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뮤지컬 팀에 합류하게 되고 '연출 한번 해보지 않을래?'하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소심하고 무능력한 학점 쫄보는 그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고 홍보팀의 스탭으로만 소소하게 일 한다.

이제 연극이 한달밖에 남아있지 않은 시점에, 팀원들은 연극이 거진 망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극작가 친구는 필자에게 다시금 연출을 부탁한다.



친구의 부탁을 받고 한 5분 정도를 골똘히 고민한 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무대에 오를 배우들을 모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나같이 죽을 상을 한 꿈나무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것을 보니 이차 대전을 앞둔 윈스턴 처칠 마냥 의미심장하고 멋진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하지만 일단은 속터지는 마음을 털어놓는게 우선인 것 같아 우중충한 어조로 말문을 뗏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만한 시간적인 여유는 없지. 공연은 이제 한달 밖에 안 남았고, 우리 모두가 오늘 보았지만 지금 진짜 엉망진창이야. 내가 배우라면 이런 무대는 절대 못 올라갈 것 같은데. 너희는 어때?'


연극을 하다보면 이렇게 소위 말하는 '망하는 연극'들도 꽤 나온다. 연극이 요단강을 건너는 이유는 무척 다양한데, 배우들이 크게 싸운 뒤 갈라서는 경우도 있고, 연출이나 기획이 너무 무신경해서 진행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공연이 망작이 되면 참여했던 구성원들은 모두 그 기억을 트라우마처럼 가져가게 된다. 죽마고우가 철천지 원수가 되는 일도 다반사다. 어쩐지 이런 미래가 우리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 같 '약간 간지러운 말'을 시작했다.


'그치만 나는 우리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어.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어. 세상에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아. 우리 이야기로 커뮤니티에 악플도 좀 있던데. 까분다고 말야. 그런데 우리는 그냥 하고 싶다는 이유로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종일 연습을 해. 이런게 성공하면 좀 많이 멋있을 것 같아. 그래서 몇년이 지나서 오늘을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그때 그렇게 열심히 하길 참 잘했다'고 추억했으면 좋겠어. 나부터 한번 열심히 해볼게. 정말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달을 지내보자.'


원래 멋있는 말이 끝까지 멋있으려면 책임을 져야 한다. 다음날 연습 시간부터 나는 연출로 분해서 연습실로 향했다. 그리고 몇가지 반드시 지켜야할 그라운드 룰을 못박았다. 그때 정했던 룰들이란 사실 내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고, 선배 연출들이나,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던 것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있었는데, '연습은 절대 절대 늦지않는다', '그날 외워야할 대사는 무조건 다 외운다, 만약 못외우면 연출과 기숙사에서 밤을 샌다', '대본집은 여백이 없을 정도로 꼼꼼히 연구해서, 연출과 말싸움을 할 수 있어야 한다.'따위가 있었다.


심각하게 합시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런 룰들이 바로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얻었던 별명이 '분노조절장애'였다. (이때 친구들은 아직도 날 분조장이라고 부른다) 당시의 나는 배우 역할을 맡은 친구들이 대사를 못 외워오면 대본집을 바닥에 집어던지면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슬퍼해야 할 장면에 웃음이 터지면 지금 나랑 장난할 시간이 있냐면서 펄펄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바보같고, 멍청한 짓이었지만, 그때는 잘하는 연출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자사자 몰두하다보니 전공 생활도 정말 난장판이었다. 연출은 무조건 배우보다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업 과제는 매번 아무거나 써서 내곤 했다. 하루는 교실에 갔더니 미국문학 교수님께서 무서운 어조로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로 따라오라고 공언하셨다. 숙제도 제대로 안내고 수업에서 얼굴만 비추고 가버리는 복학생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한숨을 푹 쉬시며 찌릿 째려보시곤 '기말에 페이퍼 2개 내라', 하며 가보라고 손을 흔들어 주셨다. 기왕하는거 잘해보라는 말씀과 함께. 지금 돌이켜봐도 교수님은 얼마나 어이없으셨을지. (이 학기는 결국 3학점을 제외하고 나중에 전부 재수강했다, 차라리 휴학을 하는게 나았을걸)


그렇게 연극날이 찾아왔고 무대가 막을 올렸다. 몇달 동안 주구장창 홍보만 해댄 덕분인지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대를 시작하기 직전 연출 인사를 하기 위해 관객들 앞에 서려는데 왠지 눈물이 찔끔나왔다. 아마 이렇게 이해타산적인 세상에 이토록 바보 같은 이유로 만든 결과물이 응원받는 다는 것이 벅찼던 것 같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홀가분했다.) 그때 관객석의 왼쪽편 앞줄 두번째에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향기님이 앉아계셨다. 뭔가 그 광경을 보니 '나야말로 진짜 성공한 덕후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더더욱 감개무량했다. (총기획, 극작가 친구가 초청했었다)


룰루 랄라 시작장면

이런류의 신파극 이야기가 흔히 그렇듯이 연극은 대성공이었다. 나중에 커뮤니티에 올라온 후기 같은 것을 찾아보니 '노래는 좀 못했지만 대체로 재밌었다', '브콜너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서는 '원래 브콜너 노래는 가창력이 그닥 필요한게 아니니 괜찮다.'는 위로의 댓글들을 보여 배우들과 함께 '우리 노래 못하나봐 낄낄' 히히덕 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이때의 공연은 지금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는 나만의 보석이 되었다. 아마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 밴드, 스탭 모두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 주마등이란게 스쳐지나간다면 이 때 기억은 무조건 고화질로 재생되겠거니.


짝짝짝

이번 연말, 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아직까지도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 연출했던 무대의 장면과 동선, 그리고 춤들이 머리속에 함께 재생되는 기분이다. 아마 브콜너의 음악을 '공감각적(?)' 깊이'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시 뮤지컬을 만들고 주구장창 함께 연습했던 연극팀 친구들 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비록 작은 숟가락만 얹은 일이었지만, 이 경험은 한사람의 순수한 열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추억을 줄 수 있는지 알게 해준 시도였다.


오랜만이에요!

좋아하는 가수를 만나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가 있을테다. 하지만 그 가수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드는 것 만큼 특별한 일도 없지 않을까? 뮤지컬이야 말로 가수와 내가 정반대의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주는 마법일테니 말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비슷한 일을 한번 더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냥 정말 내가 좋아서 같이하자고 손을 올리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쭈뼛쭈뼛 손등을 포개는 그런 경험. 무의미해서 더 의미있는 그런일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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