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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Dec 12. 2018

자선 바자회 해보셨어요?

살 때는 몰랐는데, 파니까 보이는 것들


'올해도 이제 끝나가는구나' 생각이 들게 하는 신호탄들이 있다. 굳이 따져보자면 '시베리아산 칼바람', '별 모자를 뒤집어쓴 전나무',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같은 것들이 한해의 끝을 알리는 대표주자들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가치'나 '사회 공헌'과 관련된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신경 쓰는 행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따뜻한 '자선 바자회'! 쌀쌀한 연말연시야말로 이웃들의 훈훈한 온정이 절실한 시기이다 보니, 불우 이웃을 돕는 바자회는 늘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열리게 마련이다.

필자도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사업군에서 일을 하다 보니 올해는 자선바자회 판매 및 운영 요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의 70%에 타의 30% 정도로 참가했던 행사였는데 막상 끝나고 보니 '참 잘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자선 바자회'에서 물건을 팔고, 운영을 도와주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끄적끄적 작성해 보고자 한다.





1. 장사도 재능러가 잘한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일이 재능과 관련이 없겠냐만, 장사야 말로 최고의 재능이 필요한 영역인 것 같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누구는 1시간 만에 손바닥을 탁탁 털만큼 잘 팔고 누구는 하루 온종일 고생해도 완판이 요원하니까 말이다. 자선바자회도 결국 일종의 '사고파는 행위'가 들어가기 때문에 장사를 잘하는 것이 정말, 정말(강조) 중요하다. 필자는 이미 대학교 주점 때 장사 머저리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목청이나 높이며 '정성'으로 팔았다.


그런데 함께 참가했던 동기 중에 물건을 엄청나게 잘 파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바자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오빠 나는 중학생 때부터 길거리에서 귀걸이를 팔던 사람이야'라고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해 주길래 '얘는 대체 뭔데 중학생 때부터 길거리로 나섰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바자회를 시작하고 보니 '고수의 진가'가 바로 드러났다. 그 친구는 옷을 파는 매대에 배치되어 세상에 온갖 화술로 물건을 팔아댔다. '언니 이거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같이 일반적인 '멘트'에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진짜, 와, 이 가방이 아직도 안 팔렸다고?'라는 식으로 1인극까지 척척해냈다. 완판하고 씩 웃는 모습을 보니, '역시 재능러는 이길 수 없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명수옹


2. 좋은 이야기를 담으면 완판!


자선바자회는 바자회의 취지를 잘 살린 이야기를 담아 파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자회에 오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정말 필요한 물건만 사겠다는 사람이라면 인터넷 쇼핑이나 이마트를 가지 뭐하러 바자회에 온다는 말인가.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자선 바자회'라는 따뜻하고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해서 좋은 기억을 사 가고 싶어 한다. 물론 정말 '잇템'을 집어가는 운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물건'과 '즐겁고 따뜻한 기억'에 만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물건을 팔더라도 '텀블러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00 선수가 결식아동을 위해서 만든 텀블러 사세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확실히 많이 몰려든다. 또 이런 손님(?)들이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에 '지금 물건을 사세요! 전액 결식아동에게 기부해요!'라고 말하면 의외로 흔쾌히 사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도 자선 행사의 특성 때문에 이런 '착한 흥정'이 먹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텀블러 좀 사가세요~


3. 재고 처리는 난감해


자선 바자회는 재고처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막상 기부받은 물품은 많은데 다 팔지 못하면 처지가 정말 곤란하기 때문이다. 바자회 주최 측은 원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재고가 생기면 쌓아둘 곳이 없다. 그래서 무조건(!) 팔아야 한다. 바자회가 한 시간 정도 남으면 바자회의 운영 요원은 가격을 90%씩 깎아대며 모든 물건을 거의 '나눠준다'. (꿀팁: 혹시 나중에 바자회에 물건을 사러 가실 일 이 있다면 참고하시길)


물론 그렇게 팔려고 난리를 쳤어도 안 팔리는 물건은 반드시 나온다. 왜냐하면 거저 줘도 안 가져가는 물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말도 안 되는 사이즈의 옷들도 환영받지 못하는 생존자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나 같은 운영요원들이 집으로 들고 가기도 하고, 그나마 쓸모가 있는 물건들은 물건 자체로 받아주는 자선단체에 기부하여 꾸역꾸역 처리한다.


꼭 한두개가 남는다


4. 가격 할인은 천천히, 조심히


가격 할인은 재고처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행해야 한다. 재고가 남으면 안 되는 자선 바자회의 특성상 물건을 거의 거저 주더라도 최대한 적게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물건을 너무 일찍부터 싸게 팔면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 일찍부터 물건을 깎기 시작하면 본의 아니게 '호갱님'들을 만들게 된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물건을 샀다고 하더라도 10분 뒤에 어떤 사람이 절반 가격에 같은 물품을 집어간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 예로 바자회가 끝나기 3시간 전쯤에 빵을 50%씩 할인해서 팔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15분 전쯤 빵을 3만 원어치나 사갔던 아저씨 한분이 슬픈 표정으로 항의 아닌 항의를 하시는 것이었다. 결국 빵 1 상자를 더 드리기로 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어쨌든 그분 입장에서는 끝까지 조금 찜찜하셨으리라. 할인은 천천히 그리고 몰래몰래 하는 것이 좋다.


할인은 2시간 전에 시작하자


5. 몹쓸 기부품들은 어찌할꼬


이건 얼마 전에 뉴스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필자가 참여했던 자선 바자회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바자회에 기부된 물품 중에는 정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것들이 있다. 아마 기부해주신 '선량한 분'들은 그런 물건들을 잘 고치 사용할 수 있겠지 생각하셨겠지만, 세상에 자선 물건을 고쳐서 사용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개 그런 물품들은 아무리 싸게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서 바자회 주최 측을 속상하게 한다.


이번에는 그런 물품으로 악기들이 있었다. 망가진 기타와 바이올린이 하나씩 있었는데, 이건 뭐 500원에 팔아도 팔리질 않았다. 세상에 누가 그 크고 무거운 짐들을 자기 돈까지 들여가며 사갈 것인가. 결국 운영 요원 하나가 본인 집 인테리어 용으로 바꿔보겠다며 1000원에 사갔다. 금손의 가호 아래 새로운 아이템으로 탄생하길 바란다.


안사가는 물건을 처리해주신..




자선 바자회라는 큰 연말 행사를 진행하고 보니 올해 내가 '사회적 가치'활동에 참 여러 가지 형태로 참여해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운영까지 경험하 이쪽 분야의 새내기로 조금씩 성장해간다는 기분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어가며 하루 종일 장사를 한다는 것을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긴 하지만 정신적으로 더 충만해지는 경험이다.


바자회가 모두 마무리되고 올해 기획을 전담하셨던 분과 이야기를 하고 보니 내년에는 아마 필자 팀이 바자회 기획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일 겸 힘든 일) 그런 날이 온다면, 브런치를 읽어주시는 분들도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혹시나 바자회가 끝나갈 때쯤 저를 보게 된다면 조그만 신호 하나 보내주시길. 그러면 지인찬스로 뒷골목 할인가격을 적극 사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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