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자라고, 만나 온 5개월에 대한 감사
제가 브런치를 처음 만난 것은 눈이 따가울 만큼 쨍쨍히도 더웠던 지난 8월의 여름, 을지로 한복판에서였습니다. 처음에 이 하얀 원고지 같은 공간을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가장 먼저 읽었던 글만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lamome이라는 필명의 작가님이 쓰신 '어머니와 명란젓'이라는 에세이였는데, 사실 그냥 따끈한 밥에 촉촉한 명란젓이 올라가 있는 표지가 맛있어 보여서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lamome/26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따뜻하고 담백한 이 에세이는 처음 접한 순간에도 모락모락 '행복한' 기분을 지펴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브런치에서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 꼼꼼히 읽었습니다. 회사랑 집이 한~참 멀어서 거의 매일 3시간 정도는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글을 읽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시간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보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고 하지만, 뭐랄까 저 같은 경우에는 영상을 너무 많이 보면 생각이 굼떠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아마 어렸을 때부터 'TV 너무 많이 보면 바보가 된다'고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었던 것이 플라시보로 남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브런치를 읽기로 마음먹고 관심 있는 주제들을 찾아 찬찬히 읽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읽다 보니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들었습니다.
어떤 주제를 쓸지 고르는 데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공이었던 영문학에 대해 쓰자니 학부 4년 동안 고작 소설 몇 권 읽은 제가 '문학'을 논한다는 것이 하잘것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인문학에서 배운 것이라곤 '겸양과 성찰'인데 문학을 자랑하는 것이 너무 모순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일상 에세이를 쓸 자신도 없었습니다. 이미 너무나 밝고 따뜻한 태양들이 빛나고 있는데, 저 같은 화톳불이 글을 쓴다고 해서 누군가의 마음에 빛이 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는 평생 글을 못쓰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그래서 매거진들이 이렇게 중구난방입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글쓰기는, 지난 5개월간 30편 정도 결과물을 남겼습니다. 개중에는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 안에서 1시간 만에 후다닥 써낸 글도 있었고 며칠 동안 꼼꼼히 정리해서 꾹꾹 눌러쓴 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은 종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딴에는 나름 열심히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도리어 그다지 읽어주시지 않았고, 대충 슥슥 적은 뒤 너무 별로인 것 같아 '괜히 발행했다' 후회했던 글은 인기글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저는 감이 좀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작가분들도 이러신 지 궁금하네요.
제일 아끼는데 탄압(?) 받은 글
https://brunch.co.kr/@supernova9/57
별로였는데 예쁨 받은 글
https://brunch.co.kr/@supernova9/62
브런치를 하며 좋았던 점은 참 많았습니다. 먼저 글을 쓰는 작가로 좋았던 점은 제가 얼마나 자랐는지 계속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번 글을 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똑같은 내용을 다시 읽으면 그게 그렇게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말은 왜 했나', '어우 이건 너무 가식적인걸' 생각이 들게 하는 바보 같고 무의미한 문장들이 군데군데 보였거든요. 저에게 브런치란 어린애가 방 문틀에 얼마나 자랐는지 표시해두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적어두는 키재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작가분들의 정성이 깃든 소중한 글이나 댓글을 읽는 것도 좋았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가 한 명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요. 어른이 되면 친구 한 명 사귀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던데, 누군가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생경한 경험일 것입니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작가분들의 글이지만, 좋은 글을 보면 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진솔하게 녹아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일을 마치고 칙칙한 지하철에 몸을 싣는 순간 소중한 글 한편을 접할 때면, 작은 핫팩 하나 품속에 붙인 것처럼 온몸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글을 아껴가며(?) 읽었던 기억은 중학생 때 판타지 소설을 달고 살던 시절 이후 처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올해도 이제 거의 저물어 갑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2018년도 책장에 꽂히는 한 권의 수첩으로 남겠네요. 저는 내년이 된다고 해서 딱히 더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해파리처럼 둥실둥실 유영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갑자기 대단한 문필가가 되지는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도 매주 꾸준히 쓰겠다는 것, 그리고 최대한 진솔하게 쓰겠다는 것만은 스스로 깊이 다짐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을 읽어주신 한분 한분께 각각 그분들을 위한 특별한 마음을 담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