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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Oct 28. 2018

그래요, 인문학은 참 예쁜 장식품이에요

인문대 졸업생이 느낀 '인문학의 시대'


예전에 잠시 다니던 회사에서 '장그래' 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으레 그렇겠지만, 일단 조직에 들어간 뉴비는 '대빵'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이 철칙이다. 때문에 나는 당시 비슷한 처지에 있던 입사 동기들과 함께 남극점으로 향하는 펭귄들 마냥 쪼르르 복도를 나섰다. 으리으리한 임원실에 도착하고보니, 인자한 인상의 '대빵'께서는 우리 같은 아기 펭귄들 정도는 늘상 만나시는 것처럼 아주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한참을 긴장하며 대대장 훈시를 듣고 있는데 책상에 있던 책 한권이 시야에 들어왔다. 서머셋 몸이 쓴 '달과 6펜스'였다. 마치 수능 시험장에서 중학교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듯 어쩐지 안도 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전략 조직의 꼭대기에서 예술가의 삶을 읽는 임원이라니. 확실히 사회적으로 인정받으시는 분의 취향은 남다르구나 감탄하던 찰나였다. 그래서 그 어색한 자리에서, 평상시라면 절대 나서지 않는 성격인 내가 용기를 쥐어짜 자그만 개미소리를 한번 내었다.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던 책
'최근에 이 책을 읽으셨나보네요'


그때 내가 그분께 기대했던 답변이란 '그래 참 좋은 책이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지, 너도 읽어봤니?' 정도의 의례적인 반문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답변이 날아왔다.


'이런 책을 읽어야 사업을 잘하는거야, 인문학의 시대라구, 인문학'


당시 분의 말씀은 두가지 점에서 무척 놀라웠는데, 하나는 예술과 현실의 갈등에 대해 쓴 그 책을 보고 사업(?)을 생각하신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이었다. 인문학을 이렇게 '자랑'과 '쓸모'로서 설명하는 세상이 생경하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며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낭만주의 영시는 '가을맞이 빅세일'을 기획하는데 도움이 될겁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처럼 '대빵'께서 말한 '인문학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은 아마 '비즈니스의 신'으로서 열반에 든 '스티-브 잡스'께서 살아생전 전파하신 '사과 복음'의 위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잡-스께서는 2011년 애플 제품 발표회에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당신의 말은 아직도 너무 강력해요 잡스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문학(Humanities)과 결합된 기술만이 우리의 마음이 노래하도록 만들겁니다. PC 이후 등장하는 Post PC는 더 쉽고, 더 직관적이고, ... 더 무결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이런 인정(?)은 인문학에 '쓸모'를 담아주었고 동시에 인문학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자랑'을 심어주었다. 잡스는 대체 왜 이런 말을 남겼던 걸까? 그는 정말 소설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는 그런 '인문학도'들이 Post PC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잡스가 저런 말을 남긴 이유가 '인문학 그 자체'때문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에 담긴 콘텐츠는 막상 사업을 만들어가는데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콘텐츠 사업은 논외겠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저 '장신구'로서 '나는 이렇게 똑똑해요'혹은 '나는 이런 것도 알아요'라는 말을 시작하는데 좋은 단초를 제공해줄 뿐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공자의 논어가 아이폰의 기기에 녹아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로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가 말했던 인문학이란 사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일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와 철학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 그것이 잡스가 말했던 '인문학적 소양'이란 것이 아닐까. 잡스를 비롯한 애플의 오지랖 넓은 '인문학도'들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그들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갖고 싶은지를 말이다. 그렇게 '사람에 관심이 많은 인문학도'들이 플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 입장에서 놀라운 UI와 UX를 설계하며,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강력한 생태계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즐겁고, 편하고, 행복하게 해줄까?'라는 질문이 '기술에 담기는 인문학'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요즘 서점가에 범람하고 있는 '한입거리 인문학 콘텐츠'들은 잡스의 말을 오해하는 분들이 좋아하고 계신 것 같다. 책의 제목에서 부터 '얕은 지식'이라고 버젓이 자랑하고 있는 '인문학'이 과연 사람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을지, 아니면 '자랑'거리로 소비될지는 무척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장신구'들은 그저 인문학이 예뻐서, 그리고 고급스럽고, 있어 보여서 팔려고 하는 귀걸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이런 현상 때문에 '달과 6펜스'를 들고 상품의 혁신에 대해 말하는 이상한 '대빵'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인문학을 구매하고 인문학을 자랑하는 '장신구의 시대'가 아니라, 인문학이 재미있고 그 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개인들이 궁금한 시대, 그래서 '인문학 하는 마음'이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그런 '마음가짐의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예술에는 기교밖에 없고 기교는 기교가만이 안다고 생각하는 괴상한 오해이다.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서머셋 몸 - 달과 6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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