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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Jul 31. 2018

[읽고쓴다①]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상에서의 이야기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을 읽고

1.  역사는 소설이 아니어서 인물이 곧 작가가 된다. 행동하고 말하는 자가 이야기를 써나가는 것이다. 작가는 30여 년을 변호사로서 말하고, 싸우고, 행동해왔다. 그러는 동안 독재 정권은 각본에 맞추어 사람을 죽였고, 어떤 동네에서는 재개발로 인해 이웃의 뱃가죽을 찔렀고, 어떤 망루는 불탔고, 광화문은 불빛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너무나 많은 인물이 제각기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써댔으므로 세월은 읽기 어려운 텍스트가 되고 말았다. 작가는 이 어려운 텍스트의 서술자가 되어준다.


2. 소설이라면 좋을텐데, 모두 실화이다. 한 꼭지를 읽고 나면 쉬어야 했다. 역사책의 건조한 한 줄이 돌연 살갗과 체온을 가진 사람의 통곡이 되어 소리치고, 목 매달린 젊은이들의 돌아올 수 없는 붉은 뺨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시대라든지, 역사라고 하는 거대한 말은 낱낱의 인간의 행복과 슬픔, 위대함과 졸렬함을 모래알을 파도가 휩쓸어 가듯 휩쓸어 갔다. 나는 역시 모래알 된 자로서 먹먹할 수밖에 없었다.

3. 우리는 모두 모래알이어서 파도가 휩쓰는 대로 모였다가 흩어진다. 아내와 남편은 부부로 만났다가, 이름도 불러보지 못하고 1분을 스쳐지나갔다가 영원히 헤어졌다. 영원히 헤어졌으므로 영원한 만남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외롭다는 말이 언어도단이 되고 만다는 그 영원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은 망연하다. 이 책은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비망록. 잊지 않도록 쓰는 책. 왜 그 영원한 슬픔을, 그리고 사람이 산 채로 불타는 이 시대의 '지옥도'를 잊지 않아야 할까.


4.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미 부처님과 예수님이 다녀간 곳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구글검색만 해도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년을 주기로 망루는 불타고, 배는 가라앉고, 광화문은 촛불로 가득찬다. 다투고, 다치고, 죽고, 속이고, 배신당하는 비슷한비슷한 이야기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쓰이기엔 그 이야기의 인물이자 작가인 인간들은 빨리 죽어 버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들은 아무런 기억을 갖지 않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사람보다는 오래 살아남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 지옥도라고 부를지언정, 벌거벗은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삶들에게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 시작되는 일상에서 작가이자 인물이 되어 싸우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면하고 싶은 책을 가까스로 완독했는지도 모르겠다.  


5.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이라는 제목은 이미 스러진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지상에서는 이름도 못 불러 보고, 얼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쓰다듬어보지 못하고, 안아보지 못하고, 입 맞춰 보지 못한 짧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지상에서"의 이야기이다. 지상이 아닌 어느 곳에서는 그것이 영원한 만남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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