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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Aug 08. 2018

[백인보④] 혁명적 낙관에 대하여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그녀에게 드리는 착란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중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여름 방학에 서해에서 조개를 주웠다. 진흙 뻘을 뒤적이는데 검지 손가락에 찢어지는 통증이 번쩍였다. 바닷물에 대충 씻어낸 상처는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피를 쏟아냈다. 용인으로 돌아온 뒤, 여름 방학의 일과는 손가락의 밴드를 가는 일이었다. 조심스레 끈끈한 접착면을 제거해 보아도 곧잘 상처가 벌어졌다. 그 선연한 분홍빛 몸의 틈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일은 지루하지 않았다. 그날도 내 방 침대에 걸터앉아 허벅지 위에 밴드를 올려놓고 밴드를 갈고 있었다. 거실에는 나이 든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오셔서 구역예배를 보시는 중이었다. 익숙한 찬송가 멜로디가 그치고 설교 말씀이 피난민의 라디오처럼 웅웅거렸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이지요.” 단 한 마디가 방문을 넘어 귓속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당연한 사실이 말갛게 뻔뻔했다. 다음 예배가 돌아올 때 즈음, 갈라졌던 손끝은 아물었고 나는 더 이상 밴드를 갈지 않아도 되었다. 갑자기 생긴 공백의 시간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그동안 내가 열 며칠을 죽음을 향해 걸어갔고, 그 시간 동안 손가락이 나았다는 사실만 심심하니 생각할 뿐이었다.



     권사님 말씀은 옳았다. 그 후로 내가 아는 몸이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을 통과해서 죽었다. 학교 정문 앞에서 산 병아리는 열흘을 지나서 그랬고, 기루어하던 강아지는 아홉 번의 가을을 지나서 그랬고, 병으로 뜨거운 손으로도 내 손을 잡아주시던 이모는 스물몇 해를 지나서 그랬다. 나도 몸 있는 자로서 그럴 것이다. 지금 나는 죽음과 스물일곱 해만큼 가깝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나는 그동안 내가 죽어온 것인지 자라온 것인지 분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스물일곱 해 동안 내 몸은 생겨났고, 쓰다듬어졌고, 부딪혔고, 멍들었고, 나았고, 베어졌고, 아물었고, 뜨거웠다가 얼어붙으면서 커졌고, 단단해졌다. 가까이 보면 자라나고 살아온 것 같은데 멀리서 보면 죽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삶은 가깝게 보아야 할까, 아니면 멀리 보아야 할까? 산에 올라본 바로는 절망은 가깝고 희망은 멀다. 나는 이것을 산을 오를 때 차오르는 호흡과 잔뜩 긴장한 근육의 떨림으로 안다. 아직 봉우리는 먼데, 한 발자국도 더 내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온몸을 육박할 때 안다. 이러고 보면, 가까이에서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일과 절망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이고 멀리에서 보면 죽어가는 일과 희망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이다. 어쩐지 모든 삶은 녹록지 않았다. 절망이 없이는 자라날 수 없었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오래 우울증을 앓아온 친구는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포근하게 느꼈다. 중단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서 도망칠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를 왜 낳는지 모르겠어요.” 폭염이 아직 들이닥치기 전, 적당히 더운 여름밤을 힙하다는 브루어리에서 보내는 중에 들은 말이었다. 나는 함께 몇 권의 책을 읽어 본 인연으로 그녀가 장례식에 틀고 싶은 음악이 트레비스의 경쾌한 음악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자라나느라 지친 것 같았다. 유난히 향긋한 오렌지 계열의 IPA를 석 잔째 마셨을 때였다. 우리는 모두 그 맥주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에게 ‘내 아이가 태어나서 이 맥주를 마셔봤으면 좋겠어’, 라는 것은 아이를 낳을 충분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며 살아가는 그녀조차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일에 반대한다면, 이 세상에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 같았다. 새콤한 중국식 돼지고기 튀김을 집어 들며 어쩐지 나는 언젠가 티비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했다.      



- 오랫동안 떠도는 백구가 있었는데요, 누가 목매달아서 잡아먹으려고 했었던 걸 도망쳤었나 봐요. 철사가 목을 파고 들어서 상처엔 구더기가 꼬여 있는데 계속 상처가 깊어져서 피가 솟아요. 얼마나 철사가 조여들었던지 음식도 삼킬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세상에, 그 개가 배까지 불렀던 거예요. 얼마나 불쌍해요. 자기 영양도 모자라는데 새끼까지 가져서 비쩍 마른 모습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차라리 안락사하는 게 낫지 않나, 이런 생각이 막 들고, 눈이라도 꽉 감아버리려는 참에, 화면에서 그 비참한 개가 낳은 새끼들이 비치는 거예요, 그런데 왠 걸요, 그 희고 작은 새끼들의 목에는 줄이 없더라고요. 그냥 그게 너무 믿기지 않았어요.      


나는 이런 얘기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그녀의 까만 눈이 좋았다.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난 뒤의 쑥쓰러움을 핑계로 슥 내 뒷목을 어루만졌다. 만일 내게 목줄이 걸려 있다면 나는 나와는 다른 것을 낳아야 했다. 내게 목줄이 없다면, 나는 목줄이 걸려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비참과 기아 속에서 건져낸 새로운 시도일지도 몰랐다. 누군가가 전부를 걸고 준 자유라면,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 위해 해발 1335미터의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유난히 나쁜 일들이 겹쳤던 산행이었다. 녹초가 되어 물집이 터진 발을 추스르고,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를 널어놓은 딱딱한 마룻바닥에서 불편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고 누웠는데, 느닷없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맘에 들고 좋았다. 형편없는 몰골이나 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날 밤의 눈 감고 누운 나는 그날 오후 내내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울 때 그것을 견디며 올라온 내가 낳은 셈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정상에서 본 해는 푸르고 붉은 운무에 휩싸여서 떠올랐다. 새롭게 떠오르는 해가 비스듬히 비치자 모든 것이 빛났다.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도, 너도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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