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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May 21. 2019

<데이비드 호크니展> 호크니, 미술의 한계를 뛰어넘다

[전시]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展

  초등학교 때 나는 미술 시간이 참 난감했다. 아무래도 도저히 그림을 잘 그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야 할 때부터 4절지와 8절지에 수채화를 그려야 할 때도 화선지에 수묵화를 그릴 때까지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선생님에게 가벼운 칭찬도 들어본 적이 없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릴 때는 색이 섞여서 그림이 어두웠고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색이 번져서 그림이 우중충했고 먹물로 그림을 그릴 때는 화선지에 구멍이 났다. 분명 선생님수업시간에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준 것 같은데, 나는 그림을 잘 그릴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반에는 놀라운 그림 실력을 갖은 친구들이 꼭 몇 명씩 있었다. 그들의 그림 내 것과는 달리 배경이 많이 없었다. 입체감과 질감이 느껴졌고 다양한 색을 사용한 묘사도 좋았다. 내 입장에서 수업 시간 40분 동안 그린 그림이라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 친구들의 그림은 항상 교실 뒤에 걸려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내 그림은 연습장의 낙서도 못다. 나는 내 그림이 너무 창피해서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누가 볼까 봐 아예 스케치북을 덮어다. 나는 미술 시간이 정말 싫었다.



  <데이비드 호크니展>의 도슨트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아이 같은 시선'이었다. 아이 같은 시선! 나 역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걸려있 그의 작품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茶) 그림>과 <달라 붙어있는 우리두명 >을 보고 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근데 아이 같은 시선이란 것 도대체 무얼 말하는 것일까? 아이 같은 것 무엇일까? 편견이 없다고? 순수하다고? 사랑이 넘친다고? 욕심이 없다고? 그렇다면 아이 같은 시선으로 그린 그림은 뭘 말하는 걸까? 편견 없이 대상을 보고 꾸밈없이 그린 그림일까? 실력이 좀 덜 익은 것 같은 그림일까? 화려한 색을 사용한 그림일까?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일까? 그럼 상상을 많이 하는 어른은 아이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아이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일까? 어릴 때 능숙하게 그림을 그리던 친구는 아이 같지 않 것일까? 도슨트의 말처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정말 아이 같은 시선으로 그린 그림까?



  나는 바로 다음에 전시된 회화 작품을 보고 나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시선이 전혀 아아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미술을 보는 시각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 진지했다. 호크니는 <더 큰 첨벙>을 비롯한 자신의 대부분의 회화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회화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2차원 평면인 캔버스에 3차원 공간과 4차원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茶)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그 사각 캔버스의 틀마저도 넘어서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미술의 형식과 재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영국 왕립미술학교 출신인 데이비드 호크니는 엘리트 미술 교육을 받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작업에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를 비롯한 다른 회화 작품에는 카메라가 활용되었고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는 사진측량프로그램이 사용되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미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해 표현의 자유를 이뤄낸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시선이 나는 전혀 아이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 같은 시선'이라는 말은 마치 그가 갖은 고유의 기질을 단순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어 철자에 약한 것을 제외하면 자신의 작품에 있어서는 어떠한 미숙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미술에 대한 고차원적인 고민을 했으며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 세계 최고의 가치가 매겨지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림을 잘 못 그린다. 몇 번 배워보려고 했지만 선을 똑바로 그리기도 어려웠다. 그림을 그릴 때 어깨를 사용하라는데, 내 어깨에 문제가 좀 있나 싶다.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보면서, 앞으로 좀 더 자신 있게 그림을 그려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여전히 괴상한 그림을 그리겠지만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그림이든 고민에 대한 자신 있는 표현이라면 더 이상 스케치북을 엎어둘 필요는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보다 그 기질이 부족했고, 이제는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데이비드 호크니展

기간 2019년 3월 22일 (금) ~ 2019년 8월 4일 (일)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展 출처 : www.davidhockneyseoul.com


서울시립미술관은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으로 2019년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기획전 <데이비드 호크니> 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호크니의 뮤즈와 주변인을 그린 초상화를 비롯하여 로스앤젤레스 시기의 작품과 호크니의 예술에 있어서 가장 풍요로웠던 60년대 중반의 작업들은 물론, 80년대 이후 좀 더 실험주의자에 가깝게 변모한 호크니의 작품세계 등 호크니 전생애에 걸친 시기별 주요작을 통해 호크니를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고전과 현대, 정통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서사가 담긴 작품으로 전세계인을 매료시키는 현대 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세계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출처 : www.davidhockney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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