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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Jul 30. 2019

오해가 좀 풀렸나요?

[영화]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오미자. 나도 영화 <나랏말싸미> 속 스님처럼 오미자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오미자청을 사다 놓고 수시로 물에 타 마신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는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탄 오미자청 한 잔이면 더위를 상큼하게 가실 수 있다. 어디서 오미자가 피로회복에 좋다는 말을 듣고 처음 먹기 시작했는데, 꾸준히 먹어보니 정말 피로가 덜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아침에 좀 수월하게 일어나면 그것이 모두 오미자 덕분인가 싶다. 달콤하고 새콤하고 씁쓸한 맛이 나는 오미자, 원래는 짠맛과 매운맛도 난다는데 설탕으로 만든 으로 먹어서 그런지 아직 그 맛을 분명히 느껴보 못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미자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맛있는 오미자청은 나에게 여름나기 필수품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 오미자차가 나온 것을 보고 내심 반가웠다. 시원한 극장 안에서 더위를 느낄 리 없었지만, 장마철 이불처럼 눅눅하고 답답해진 머릿속 때문에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오미자청 한 잔이 정말 간절했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원한 물에 얼음을 넣어 탄 오미자 청 한 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자 그제야 영화를 보며 들었던 텁텁함이 좀 가셔졌다.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출처 : 다음


  여름나기에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선풍기다. 요즘같이 덥고 습한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 두 대쯤 틀어놓으면 그나마 좀 수월하게 잘 수 있다. 살랑살랑 몸에 스치는 선풍기 바람은 덜 덥게 잠들 수 있도록 해주고 덜 찝찝하게 잠에서 깰 수 있도록 해준다. 아직 선풍기에 대한 오해가 해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찜찜하지만, 그것도 선풍기의 회전 버튼과 미풍 버튼을 누르는 찰나뿐, 금세 잊은 체 잠이 든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선풍기 괴담’이 파다했다. 선풍기 바람에 산소 부족이나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는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그것을 믿 잘 때는 선풍기를 꼭 껐다. 정확히 말하면, 믿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어렸을 때부터 “선풍기를 틀고 자며 큰일 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에 으레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자라서도 선풍기 바람이 자는 동안 숨을 막고 체온을 떨어뜨린다는 그 이유가 그럴듯했다. 선풍기를 세게 틀고 얼굴을 가까이 대면 숨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어쩌다 깜박 잊고 선풍기를 켜둔  잠들었다 일어니면 ‘아! 내가 운이 좋았어!’라며 다행스러워했다.

  그러다 몇 해 전 '선풍기 괴담'을 논리적으로 반박한 설명을 보고 금세 선풍기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그 설명은 대략 선풍기 바람이 호흡을 방해할 수 없으며 저체온증에 걸릴 만큼 체온을 내릴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여태 선풍기 괴담을 믿고 미련하게 더위에 고생했던 스스로가 참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근거로 선풍기에 대해 오해했던  자신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출처 : 다음


  영화 <나랏말싸미>의 조현철 감독도 내가 선풍기에 대해 그런 것처럼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감독은 영화에서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의 시작'이라며 신미스님이 훈민정음 창제에 결정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언론시사회에서 신미스님의 한글 창제를 확신하며,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이라는 자막을 넣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독은 신미스님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낭설을 사실이라 믿는 것이다(영화에서 사실이라고 할 만한 것은 송광호가 왕 연기를 했다는 것과 박해일이 머리를 밀었다는 것과 조현철 감독이 영화 <나랏말싸미>를 만들었다는 것 정도다).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출처 : 다음


  세종대왕께서 국민을 어여삐 여기셔서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다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등의 많은 사료를 통해 증명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초등학교 1학년, 혹은 그 전부터 수도 없이 배우는 우리나라의 자랑이며, 만 원짜리 지폐의 가치만큼이나 상식적이고 상징적인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감독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오해하고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 대신 터무니 없는 낭설을 믿는다는 것은 영화의 여러 장점마저 그 의미가 퇴색될 만큼 굉장히 의아스럽다.


  내가 ‘선풍기 괴담’을 믿고 선풍기에 대해 오해했던 것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선풍기 괴담'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으로 당장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조현철 감독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도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영화 <나랏말싸미>가 자신이 품고 있는 오해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란 점이다. 분명 <나랏말싸미>가 공개된 이후 감독은 자신의 오해에 대한 많은 논리적 반박과 세종대왕이 직접 한글을 창제하셨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근거들을 보고 듣게 될 것이니 말이다.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출처 : 다음


  근데 만약 내가 아직 선풍기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면 어떨까? '선풍기 괴담'이 터무니없음을 밝히는 논리적이고 명백한 설명을 보고도 그것을 믿지 않은 채 고집스럽게 한여름에 선풍기 하나 틀지 않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생스럽게 자고 있다면 말이다. 물론 그것은 나의 자유겠지만, 그때부턴 내가 스스로 미련하고 우둔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자처하는 것이다.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연출 조철현

출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출처 : 다음


“이깟 문자, 주상 죽고 나면 시체와 함께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1443,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8) 출처 : 유튜브 megabox.plusm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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