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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03. 2019
치명적인 과거의 기억
[영화] 콜드 워 (Cold War, Zimna wojna, 2018)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2008)에서 정지오(현빈 분)는 “새로운 사람 만나 우리 새로운 사람하고 새롭게 좀 살자"라고 일갈한다. 그는 과거에 얽매여 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답답하다.
나 역시도 과거에 얽매여 산다. 그것은 아마 내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칼에 손을 베어봤기 때문에 칼을 쓸 때는 조심하게 되고, 천도복숭아를 먹어봤기 때문에 여름을 기다린다. 한여름 바닷가에서 있었던 추억은 파도소리에 낭만을 갖게 하고, 산 정상에 올라 보았던 세상은 또다시 산을 오를 수 있게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던 기억은 마음을 조금은 열어두게 만들고, 누군가와 이별했던 기억은 머리를 굳어버리게 만든다. 눈으로 본 물체와 귀로 들은 소리. 코로 맡은 향기와 입으로 본 맛. 피부로 느낀 촉감과 머리에 든 생각.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억이 쌓였고,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억들이 쌓이고 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변함이 없을 것이고, 난 영원히 그것들에 칭칭 얽매여 살 것이다.
콜드 워 (Cold War, Zimna wojna, 2018) 출처 : IMDb영화 <콜드 워> 속 빅토르와 줄라도 과거에 얽매여있다. 폴란드 민속음악단에서 단장과 신입 단원으로 만난 그들의 사랑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지리하게 계속 이어진다. 과거에 불행하게 헤어진 그들은 이후 매번 비슷한 재회와 이별을 반복한다. 처음처럼 솟아난 애틋한 마음으로 끊어진 사랑을 다시 이어보려 하지만, 헤어졌던 이유는 여전하고 그러므로 그 끝은 항상 이별이다. 그들의 이별 이야기는 구구절절하지만 결국은 매번 같은 이유다. 빅토르와 줄라는 다시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를 하나씩 입히고 헤어진다.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나쁜 길로 빠져들어 망가지는 <비열한 거리>(2006)의 유하를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과거의 기억은 스스로 노력한다고 쉽게 바꾸거나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 사이의 인연은 다른 두 가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콜드 워> 속 빅토르와 줄라처럼 불행하게 헤어졌던 인연이 다시 만나면 그때의 불행이 계속 이어진다. 당장은 예전에 감정이 되살아나 좋겠지만, 헤어졌을 때 각자의 기억과 그 이유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것은 언제든 다시 이별의 이유가 된다. 분명한 해결 없이 시간만 흐르면 그 기억은 점점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알코올이 다 날아가 버린 와인 자국처럼 처음에는 그럴듯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거슬리는 얼룩이 되어간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헤어진 때부터 이어서 계속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게임에서 자동 저장과도 같다.
콜드 워 (Cold War, Zimna wojna, 2018) 출처 : IMDb하지만 빅토르와 졸라의 불가항력적인 사랑처럼 사람 마음이란 것이 어디 뜻대로 되겠는가? 사랑의 기억 또한 어찌할 수 없다. 그들도 아마 자신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을 것임 각자의 기억 때문에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내가 그리 생각하는 것도 나의 기억 때문이다. 그 덕에 마치 거대한 폭발이나 치명적인 질병과도 같은 흑백 화면 속 그들의 사랑을 나는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남은 인생은 그것들의 후폭풍과 후유증처럼 답답하고 지독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너와 누군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콜드 워 (Cold War, Zimna wojna, 2018)
연출 파벨 포리코브스키
출연 요안나 쿨릭, 토마스 콧
콜드 워 (Cold War, Zimna wojna, 2018) 출처 : 다음불가능한 시대, 불가능한 사랑
사랑만이 전부였던 그들의 클래식 러브스토리
1949년 폴란드, 그와 그녀가 음악으로 처음 만났다
1952년 베를린, 함께하려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1954년 파리, 영원한 이별인 줄 알았는데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다
1959년 폴란드, 처음 만난 이곳에서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콜드 워 (Cold War, Zimna wojna, 2018) 출처 : 유튜브 구구 채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