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맨 (First Man, 2018)
보기와는 다르시네요
딸을 잃었다. 그는 조용히 혼자 방으로 와서 소리 없이 오열한다. 긴 시간은 아니다. 그는 딸의 병마와 싸우던 책상 위 흔적을 덮어 치우고, 딸아이의 팔찌를 서랍에 넣어 닫는다. 다음 날부터 닐은 다시 출근을 한다. 조금 더 쉬라는 동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목표를 위해 궁리한다. 놀랍다.
영화에서 목표만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닐의 모습에 감정은 제거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닐에게도 인간적인 구석이 있다. 자신이 꾸린 가족에게만큼은 평소 회사에서의 모습보다 조금 더 따뜻하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와이프와 로맨틱한 피아노곡에 춤을 추고 동료들과 모임을 갖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렇다. 가족에게 닐은 가정적인 가장이다. 회사에서 보다 조금 더 많이 웃고 조금 더 많이 말하며 조금 덜 경직되어 있다.
닐 암스트롱은 흔히 사람들에게 아폴로 11호의 선장이자 인류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우주인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영화 <퍼스트 맨>을 통해 그동안 잘 보여진 적 없는 닐의 내면과 그가 달에 착륙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라이언 고슬링도 드문 닐의 내면에 대한 감흥을 키우기 위해 대부분 적당히 한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화를 내고,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즐겁다.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적당히 눈을 뜨고 있고, 적당히 말을 하며, 적당히 경직되어 있다. 스스로의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잘 정제된 닐의 외면과 잘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절묘하게 연기한다.
데이미언 셔젤
데이미언 셔젤. 그는 데뷔작 <위플래쉬 (Whiplash, 2014)>와 아카데미 역대 최연소 감독상 수상 기록을 쓴 <라라 랜드 (La La Land, 2016)>를 통해 순식간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감독이 된다. 인물을 다루는 능력과 위트 있는 음악 선곡, 편집을 통한 템포의 조절이 뛰어난 셔젤은 분명 위대한 감독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일찍 얻은 명성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은 아니다. 주체할 수 없는 소재는 주제를 모호하 만들고 영악하게 조립한 화면은 되려 영화를 식상하게 만든다. 과도한 자신감과 욕심이 미숙함과 만나 영화에 불필요한 피로감을 만든다. 그의 영화는 마치 입에 넣으면 그 맛에 눈이 뿅! 떠지지만, 도통 무슨 맛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추파춥스 같다.
자넷 암스트롱
영화에서 닐 암스트롱만큼 중요한 인물은 그의 부인인 자넷 암스트롱이다. 그녀는 목표에 몰두하는 닐이 가정을 갖고 유지할 수 있도록 가족 사이에서 모두를 돌본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넷을 달부터 부엌까지를 이어주는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자넷은 닐을 언제나 지지하고 자식을 꼼꼼히 돌보며 가정에 균형을 맞춰 가족을 꾸려나간다.
자넷은 닐에 비해 내면과 외면이 좀 더 비슷하다. 그녀는 자신의 감성을 적당히 표현하고 다스리며, 닐에 비해 훨씬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자넷 암스트롱을 연기한 클레어 포이의 검은색 짧은 쇼트커트과 야무진 표정은 닐이 왜 자넷을 믿고 사랑하는지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퍼스트 맨
영화 <퍼스트 맨>은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한창인 때, 닐 암스트롱의 1961년 X-15 파일럿 시절부터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 착륙에 성공하고 귀한 할 때까지 시간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 오프닝은 시작하자마자 효율적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고, 사실적인 지구에서의 묘사와 환상적인 우주, 달의 풍경은 영화의 보는 즐거움을 만든다. 영화는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닐 암스트롱의 모습보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닐 암스트롱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에 갇힌 것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얼굴과 표정, 호흡, 눈동자를 가득 담은 카메라는 더 깊이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서 개인의 내면을 더욱 공감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목표와 러닝타임의 제약은 영화 속 시간을 닐이 달에서 껑충껑충 점프하는 것처럼 만들게 하지만 그의 일관된 캐릭터는 영화의 이야기 흐름을 부드럽게 만든다.
제임스 R. 핸슨의 동명 전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와 <더 포스트>의 조시 싱어가 각본을 맡았다. 영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캐릭터다. 보통의 다른 영화와 다르게 주인공 닐과 자넷의 성격은 고정되어있다. 대신 그들의 내면과 외면의 대비와 비교를 통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그것들은 이야기의 연료가 되어 영화를 쏘아 올린다. 각각의 인물들은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는 닐 암스트롱을 균형 잡힌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해주며 그의 감정을 드믄드믄 적절히 드러날 수 있게 해 준다.
데이미언 셔젤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꿈을 이루기 위한 젊은이의 진일보와 희생을 담고 있는 <퍼스트 맨>은 특유의 음악적 위트가 적절히 연주된다. 하지만 보여주려는 것이 너무 많아 영화의 주제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 또한 여전하다. 다행히 전작처럼 감독 자신의 욕심으로 캐릭터와 주제를 모두 흐리게 만드는 만큼은 아니지만 감독이 말하려는 요지를 생각해보면 과한 부분들이 있다.
대비
땅에서 본 하늘은 한없이 넓어 보이지만 막상 하늘로 올라가면 그 층은 너무나도 얇다. 우주선을 쏘아 올린 지구인들의 감정은 분주하게 분출되지만 우주에 있는 우주인은 꾸역꾸역 올라오는 감정을 입술로 야무지게 덮는다. 결국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은 우주에 있는 우주인들의 몫이다. 무인 우주선과 도킹하거나 연료가 부족한 달 착륙선을 착륙시키는 긴박하고 중요한 상황에서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다 우주인이 해야 한다. 지구인에게 그저 흐르기만 하는 시간도 우주인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너무 더디다. 제미니 8호 귀환 기자 회견이나 아폴로 11호 발사 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과 아폴로 11호 탑승을 압둔 닐에게 묻는 아들의 질문은 참 많이 비교가 된다. 우주의 모습이 우주와의 거리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다.
닐은 우주와 닮았고 자넷은 달과 닮았다. 닐은 멀리서 보면 차분해 보이는 것을 넘어 냉정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를 품고 있다. 자넷은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항상 같은 곳에 떠있다. 닐은 그런 자넷을 사랑한다. 그리고 닐은 달에 가고 싶어 한다. 결국 닐은 자넷에 닿는다. 자넷과 함께 집에 있을 때 닐의 부드러운 표정과 NASA에서의 차가운 표정은 닐의 마음이다.
영화에서 누구보다 가장 대비되는 인물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다. 하지만 알려진 대로 함께 착륙선을 타고 달에 착륙한 것은 이 둘이다.
희생과 진일보
“We need to fail down here so we don’t fail up there.”
"여기서 실패해봐야 저 위에서 실패가 없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것은 그들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닐 암스트롱의 도전이고 미국의 도전이며 인류의 도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이 실패로 무기력하게 희생됐다. 프로젝트는 언론에 조롱당하고 정치인들에게 훼손됐다. 그들은 많은 돈과 시간이 희생됐다며 프로젝트를 압박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와 압박에도 닐 암스트롱은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 지구에서의 실패가 우주에서의 모든 실패를 대신할 거라고 믿는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실패에 고립되지만 집요하게 도전한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실패에 동요하지 않는다. 동료들의 희생에 인간적인 분노가 스며 나오기도 하지만 절대 흘러넘치는 일은 없다. 그는 아폴로 11호 발사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희생자들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비로소 닐 암스트롱은 '고요의 바다'에 닿는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나이가 좋다
보이기와는 다를 것이고 보기와도 다를 것이다. 그에게도 항상 목표가 있었고 목표가 닿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후로도 계속 나아갔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또 닿았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직 나이가 좋다
발군의 실력으로 나이에 비해 많은 것을 이룬 닐 암스트롱과 데뷔부터 큰 명성을 얻은 데이미언 셔젤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비록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그들은 독보적인 영민함을 통해 스스로의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나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그에게 기대했고, 앞으로도 그에게 기대를 한다. 그들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은 아직 나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