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하루키에게 닿다

[도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

by 바리오

한 남자가 작은 철문을 열고 건물에서 나온다. 어두운 골목은 너저분한 정적뿐이다. 바닥은 붉은빛으로 젖어 있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하얀 입김이 천천히 그의 낯빛을 쓸어 올린다. 남자가 건너편 건물을, 아니면 그쯤 어딘가 허공을 본다. 그것도 아니면 그저 고개를 약간 든 것이다. 재킷의 왼쪽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다. 그러곤 그 안에 있던 라이터를 파내 불을 댕긴다. 금세 남자의 입에서 아까보다 더 진한 입김이, 아니면 그보다 더 뜨거운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남자는 불타고 있다.


나는 빌 에반스의 <Jade Vision>에서 처음 재즈의 열기를 들었다.



사실 난 재즈를 잘 모른다. 학창 시절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 덕에 재즈를 처음 접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재즈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렵다. 난 그때 메탈리카를 좋아했었다. 그러니 재즈에 별 감흥을 못 느꼈던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 재즈를 많이 듣는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해서 매일 재즈를 듣는다. 나는 오랫동안 재즈를, 클래식 음악이나 한국사처럼, 잘 모르는 것을 썩 마음에 걸려했다. 클래식과 함께 재즈가 현대 음악의 기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재즈의 진입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그 덕에 빌 에반스는 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재즈를 들었던 때보다 몇 해 더 일찍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상실의 시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내 방 한쪽 벽에 다리를 올리고 누워서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었다. 한 스무 페이지 정도 남았을 때, 나는 남은 책장을 통째로 잡고 빠르게 끝까지 읽었다.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비로소 그 책의 마지막 문장이 지났을 때, 난 책을 덮어 박 한쪽 구석에 툭 던져버렸다.

이 책, 『포트레이트 인 재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애호하는 재즈 아티스트나 앨범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많은 수사가 나온다. 그것은 마치 TV 프로그램에서 맛집의 음식을 먹고 나서 하는 맛표현과 비슷한다. 무슨 맛인지 알아 더 먹고 싶게 만드는 표현도 있고 접해본 적 없는 향신료의 맛처럼 전혀 가늠이 안 되는 표현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표현들이 재즈를 알던 모르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에 소개된 음악을 꼭 맛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이런 문체를 갖게 됐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물론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에도 자신이 재즈와 술과 담배 그리고 몇몇 작가의 소설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와있지만, 『포트레이트 인 재즈』는 하루키가 그것들을 어떤 음악과 함께 즐겼는지 나와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쭉 선을 그으면 그의 글투 언저리에 가 닿는다. 덕분에 그를 좀 더 알게 다.




포트레이트 인 재즈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김난주 옮김 / 와다 마코토 그림 / 문학사상 / 2013


x9788970128948.jpg 무라카미 하루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하루키의 따스한 문장과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와다 마코토의 그림으로 재즈를 듣는다!

『포트레이트 인 재즈』는 재즈 마니아 하루키의 따스한 문장과 일본의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와다 마코토의 경쾌한 일러스트가 어우러진 재즈 아트북으로, 재즈 뮤지션 그림에 자신이 애호하는 한 장의 앨범을 선정하여 그 음반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과 감상을 곁들여 소개한다. 어린 시절부터 재즈를 사랑한 두 저자가 엄선한 음악은 그들의 글과 그림에 멋스럽게 어우러져 재즈 마니아뿐 아니라 입문자들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번 책은 ≪재즈 에세이≫와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를 하나로 묶고, 아트 페퍼, 프랭크 시나트라, 길 에번스 세 뮤지션을 추가한 새로운 완전판이다.

수십 년간 재즈를 들으며 느꼈던 예리한 감각과 자신만의 음악적 편애, 그리고 마니아다운 해박한 음악 지식과 풍부한 음악적 감성을 하루키식의 필치로 매끄럽게 그려낸다. 악곡의 해설이 아닌, 재즈를 듣는 심정이라든가 그 재즈만의 매력을 시적인 문장으로 옮겨놓아 하루키의 음악성 짙은 작품 세계의 근원지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더불어 소박하고 따뜻한 선으로 인물의 특징을 잡아낸 와다 마코토의 그림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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