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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Feb 28. 2019

<어느 가족>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영화]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사랑하는 부모님께...’로 시작하는 편지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한 학기에 한 통 씩 썼던 효행편지가 그랬다. 한 번도 부모님께 말해본 적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효행편지에만은 겨우 썼다. 웃긴 게, 그마저도 어떻게 편지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다 시간에 쫓겨 옆 짝꿍 것을 슬쩍 베껴 쓴 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로 모든 효행편지의 시작은 ‘사랑하는 부모님께…’였다. 직접 말로 했다면  좋았겠지만, 쑥스러워서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도 역시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사랑한다'는 말이나 칭찬 대신 국그릇에 고봉밥을 퍼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포옹을 해주는 대신 흰 양말을 항상 새하얗게 빨아줬다. 나는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이겠거니 하고 믿었다.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출처 : 다음


  그리고 어느새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우스갯소리가 우리 가족에게는 진지한 가훈이 된 것 같았다. 가끔 효행편지 위에 글자로나마 전했던 나의 진심은 중학교 이후 완전히 없어졌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어쩌다 오는 부모님의 전화도 바쁘다는 핑계로 무뚝뚝하게 금방 끊어버렸고, 어렵게 온 문자에는 아예 답장도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을 사…사… 위하는 마음만은 언제나 진심으로 갖고 있었다. 비록 말한 적은 없지만 부모님도 나를 믿어줄 거라고, 나는 믿었다.


할머니, 하츠에 시바(키키 키린 분)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출처 : 다음
다들, 고마웠어

                                                                                              

남자아이, 쇼타 시바타(죠 카이리 분)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출처 : 다음
아빠


  나는 <어느 가족>에서 하츠에 할머니가 멀리 해변에서 놀고 있는 가족들에게 입모양으로만 겨우 읊조린 “다들, 고마웠어”라는 말과 남자아이, 쇼타가 아저씨,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의 배웅을 받고 혼자 올라탄 버스 안에서 뒤늦게 한 “아빠”라는 혼잣말에서 그들이 여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진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츠에 할머니와 쇼타가 한 그 말이 내가 평소에 부모님께 잘 하지 못하던 '사랑한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가슴속에는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나의 진심처럼, 그들은 자신을 어떻게 여기던 자신과 무엇으로 이어져 있던 상관이 없이 다른 가족들을 정말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닿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그 말을 입밖에 냈다. 하츠에 할머니와 쇼타의 진심은 어떻게든 말을 하고 나서야 밖으로 드러났다. 비록 다른 가족들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알아차린 것이 나뿐이었지만 말이다.


  아마 나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애정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자식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도, 이곳 '부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라고 써봤자, 부모님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하츠에 할머니나 쇼타처럼 뒤늦게 듣지도 못하는 혼잣말을 하고 싶진 않다. 코앞에서 놓친 버스 꽁무니를 보며 아 '조금만 더 빨리 나설걸'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아쉬워하 싶진 않다. 그러니 아무리 소리쳐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더 늦기 전에, 이쯤에서 한 번쯤 나의 진심을 보여야 한다. 명백히 가 닿을 수 있게 가까이서 또박또박.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연출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키키 키린,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출처 : 다음


하츠에 할머니의 연금에 빌붙어 물건을 훔쳐가며 살아가는 가족. 그들은 가난한 살림에도 화목한 분위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우연히 밤 길에 나와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되는데…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출처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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