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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May 04. 2020

출산 일기 (3)

훗배 앓이. 왜 아무도 말 안 해줌?

알고 지내던 의사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제왕 절개는 꽤나 큰 수술이에요, 엄청나게 많은 절개를 필요로 하고, 또 출혈도 많고요. 주위에서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수술이 꼭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네, 적극 공감입니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 전까지, 이렇게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하긴, 배를 가르는데 쉽지 않겠지 당연히. 자연 분만과 제왕 절개가 고통의 선불, 후불 차이라고들 많이 하던데, 내 경우는 선불로 진통을 다 하고, 후불로 또 회복을 위한 진통을 하고, 사후 A/S 비용으로 훗배앓이까지 모두 결제한 케이스라, 고통의 지불선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뭐가 더 낫고 말고 가 없다. 그냥 아파요. 아프다고요.

양수에 퉁퉁 불은 신생아.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 얼굴!


제왕절개를 한 당일은 고개도 들 수 없었지만, 다음날부터는 밥도 먹고 걸을 수 있었다. (난 못 걸을 것 같았지만, 걸으려 노력했고 노력하니 되긴 됐다.) 앉아 있을 수 있게 되면서 드디어 아기를 요람 자세로 안고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다. 난 이미 진통을 너무 오래 했기 때문에 온 몸의 근육이 엄청나게 경직되어 있었다. 온몸을 때려 맞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기필코, 아기에게 먹이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아기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아기를 안고 모유수유와 씨름을 했다.


둘째 날 까지는 거의 수유를 하지 못했지만, 셋째 날부터는 점차 편안하게 수유를 할 수 있었다. 셋째 날 오후, 가슴 깊숙이 있던 젖을 아기가 쭉! 빠는 느낌이 났다. 와, 드디어 이렇게 할 수 있구나! 기뻤다.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젖이 있다는 사실에도 기뻤고, 이때만큼은 아기와 내가 다시 한 몸, 한 마음이 된 것 같았다. 그래, 이젠 아기랑 뭐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왜 나만 이렇게 아픈거야 증말..


그로부터 30분 후, 행복한 마음도 잠시. 나는 다시 지독한 통증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제왕 절개 이후 무통 주사가 제대로 안 먹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무통을 다시 꽂았는데도,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디가 아프냐는 의료진의 말에 나는 그냥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의료진은 제왕절개 부위인 줄 알았고, 나는 내가 아픈 부위가 저 깊숙한 자궁인 줄 몰랐다. 다시 아기를 낳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면서 울 정도로 아팠다. 진짜 아팠다. 선생님이 급히 와서 내 배를 만져보더니, 자궁 쪽이 딱딱한걸 보니 훗배앓이 같다고 했다.


네? 훗배 앓이요?


"아, 이건 아기가 젖을 빨면 자궁이 수축하게 되는데, 갑자기 수축이 빠르게 진행되면 통증이 오는 거랍니다." 훗배앓이.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왜 우리 엄마, 선배, 친구, 동생들 모두 훗배앓이를 얘기해 주지 않았던 거지? 선생님은 제왕절개의 경우, 훗배앓이가 더 심하게 올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생리통 정도로 지나가기도 하고 나처럼 극심히 아픈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결국 나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았다. 그날은 나도 울고, 젖을 물지 못한 아기도 계속 울었다. 그날, 너무 심하게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보니, 신생아실 선생님에게 오늘 밤은 모자동실을 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아니, 사정했다.) 이 병원의 원칙은 모든 산모의 모자동실이지만, 내가 앓는 것을 본 선생님은 그러라고 허락해주셨다.


그날, 나는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던 친한 동생에게 카톡을 했다.


"왜 나한테 훗배앓이 안 알려줌?"

"말했어요, 언니. 근데 언니가 귓등으로 들으시던데옄ㅋㅋㅋㅋㅋㅋ"

"그래.. 미안하다. 나는 내가 제왕절개 할 줄은 몰라서 제대로 안 들은 것 같다......ㅠㅠ"


왜 이렇게, 아픈 게 많은거야. 억울했다. 왜 나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거지?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남편은 그저 들어주는 것밖에 한 게 없는데, 그래도 묵묵히 들어주는 남편이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모든 아픈 것은 하지 않겠다고. (출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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