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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Jan 30. 2020

인생에 위트가 필요한 이유

웃을 준비가 된 사람을 웃기는 일이란 손쉽고도 재미 없는 일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글을 쓸 땐 기분이 약간 울적한 상태가 좋다. 

단지 내 생각인데 써 보니 그렇다. 조금 지나치게 말해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를 넘어 약간은 슬픈 감정에서 글이 술술 풀어진다. 이런 이유로, 글을 막 시작한 지금은 웃음, 유머, 위트와 관련한 글을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또한 글이란 써야만 할 때 비로소 써진다. 안 써도 될 때, 놀아도 좋을 때, 한껏 여유를 만끽할 때 뭐 하러 글 같은 걸 쓰겠는가. 귀찮게.


어쩌다 보니 행사나 모임의 사회를 맡을 때가 가끔, 자주 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무대를 바라보는 마음은 모두 기대로 들떠 있어서 무대에 오르는 누구든 약간의 액션만으로도 관객을 반응시킬 수 있다. 물론 수업이나 강연이 아닌 공연 무대라면 말이다. 그러니 무대 뒤에서 벌벌 떠는 대기자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언제든 자신 있게 소근거려줄 수 있다. “이봐, 저들은 지금 잔뜩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네가 실수해도 다 그런 줄 안다니까.”


웃을 준비가 된 사람을 웃기는 일이란 손쉽고도 재미 없는 일이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 시간의 스냅이다. 흔하고 미지근한 일화. 방송 개그 프로그램의 빤한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것이다. 왠지 웃어야 할 것 같으니까 따라 웃는. 웃으면 복이 온다니까 할 수 없이.


전에 어느 토크쇼 자리에서 뻔뻔한 낯으로; “나는 잡지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잡지에는 쓸모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거든요. 단연코 쓸데 없는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생각해 보세요. 필요한 것들로만 가득 찬 세상이라면 너무도 루즈하고 보링해서 숨이 막힐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런 주장을 ‘솔’ 옥타브로 떠든 적이 있다. 청중들은 생의 진리를 그제야 깨달은 얼굴로 감탄을 터뜨리며 고개를 주억거렸고, 어여쁜 진행자는 멘트를 잊은 채 하트가 가득 그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은 부정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나는 유머와 위트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하려고 한다. 모두가 웃고 싶어 죽을 타이밍이 아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지점에서 명치를 툭 건드리는 위트는 정말로 고상하고 품위 있으며 인생의 가치를 고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때 나는 심각한 지경에 있었다. 실직했고 아내는 병이 들었다. 괴롭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답답한 마음에 둘이 동네 야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마음이 한껏 뾰족해져서 입 밖으로 나오는 말마다 가시가 돋았다. “아무래도 내가 일을 해야 할까 봐.” “아니, 됐고. 몸이나 잘 챙기고 어서 씩씩해지라고.” “그러니까 씩씩해지려는데 당신이 지금 겐세이를 놓고 있잖아.” 뭐 이런 얘기를 하다가 대화가 끊어졌는데 걷는 동안 마음이 점점 지옥 같아졌다. 산꼭대기까지 올라 철봉에 매달리는데 갑자기 ‘겐세이’라는 말이 생각나 킥,하고 웃음이 났다. 그러다 킥킥. 팔에 힘이 빠져서 철봉을 놓고는 배를 부여잡았다. 아이고, 겐세이라니. ㅋㅋㅋㅋ. 그건 십대 애송이들이 짜장 내기 당구 칠 때나 쓰는 일본말이 아닌가. 아내는 영문을 모르고 눈이 동그래졌다. 이 사람이 급기야 생활고로 인해 정신이 나가버렸구나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킥킥깔깔.


산을 내려오는데 세상이 바뀌었다. 인생은 과연 살 만한 것이며 세계는 감사할 것들로 가득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기분이 180도 달라졌다. 기적의 현현이었다. “교양 있는 당신이, 겐세이라니.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물을 필요도 없었다. 같이 있었어도 상황이 설명되지 않을 거니까. 그때 알게 된 건 어떤 문제든 철봉에 매달아보면 그리 무겁지 않다는 것. 가끔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떠올린 일본말 하나로 전복될 만큼 고난은 가볍고 가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청소년 딸은 내가 가끔, 아니 틈만 나면 시전하는 아재개그에 몸을 떤다. “아유, 부끄러워.” 몸을 저리 피한다. “아재라서 아재가 아니고 아재개그를 해서 아재라고요.” 어디 가서 절대 그런 개그는 하지도 말라고 진지하게 충고한다. 그래, 그러려고 한단다. 아주 가끔만 하겠어. 아재개그도 급이 있지. 뻔한 연결이거나 말장난에 불과한 비틀기는 안 하는 게 낫다. 예를 들면 재벌 총수의 이런 퇴임사; “그 동안 금수저 물고 있느라 이에 금이 다 갔습니다.” 하하. 가신들이나 일제히 웃게 하는 경직된 회장님 개그.


유튜브에 명연설이 많다. 대개 졸업식 축사인데 대사가 끝내준다. 인생의 숙성에서 나오는 통찰과 반성, 비전에 대한 조언을 어쩌면 그렇게 멋지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지. 금수저에 대한 유머를 하고 싶다면 루 홀츠처럼 멋지게 해야 하리라. 미국 풋볼코치의 영웅으로 불리는 노장은 이렇게 연설한다. “힘들다고 하지 마세요. 아홉은 관심 없고 한 명은 기뻐할 겁니다.” 위트는 아무리 짧은 것이어도 그저 웃고 끝나게 하지 않는다. 그게 통찰이든 반성이든 비전이든 교훈이든 간에 음미할 무언가를 남긴다. 그러니 내 말이 옳다. 위트가 인생을 확실히 풍요롭게 한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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