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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Jan 12. 2022

딸을 인터뷰하다

만 스무살 딸에게 인터뷰를 청했는데 응해주었습니다.

너무 잘 아는 관계인데, 그래서 너무 모를 수도 있습니다. 실은 가족이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사랑하는데도 말이지요. 몰라서 좋은 것도 있지만, 알게 되면 더 좋습니다. 어떻게요?

모르는 척, 타인에게 말하는 척 대화하는 방법이 있어요. 의외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알게 됩니다. 

가족 인터뷰. 더 사랑하게 되는 한 방법이라고, 저는 요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딸의 아빠 인터뷰에 이은 아빠의 딸 인터뷰입니다. 

녹음한 내용을 고치지 않고 거의 그대로 푼 구어체 문장이라 오문도 있을 수 있고 읽기에 약간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게 좋습니다. 소중한 기록이니까요.




“힘들 땐 그냥 모른 척합니다”


장소: 인천국제공항 주차장 차 안

일시: 2022년 1월 9일 저녁 10시~11시 20분

에디터: 이땡땡 54세

인터뷰이: 이땡땡 20세




에디터: 갑작스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준: 저도요. 인터뷰는 늘 갑작스럽죠. 하하.


에디터: 지난번 인터뷰가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오늘 역할을 바꿔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는데 기분이 그때와 또 다르고 새롭네요. 먼저,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어떤 이야기부터 하나요?


준: 보통 학과를 먼저 얘기하는 게 제일 무난해서 어느 과를 다니는지를 제일 먼저 얘기하는 편입니다.


에디터: 영상을 전공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그걸 하게 됐나요?


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수행평가로 영상을 처음 만들어 봤는데, 그때 이걸 전공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엄청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것을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에디터: 단지 이유가 재미있어서였나요?


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고민해서 결정을 내리는데 가끔은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이 ‘이건 꼭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게 있거든요. ‘이걸 왜 하고 싶어?’라는 의문을 갖다 붙일 틈도 없이 ‘이건 해야 돼, 그냥 그래야 돼’ 이렇게 느낌이 강렬하게 오는 게 있는데 영상이 그런 거였어요.


에디터: 영상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안 해봤나요?


준: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고 뭔가 기획하는 것도 좋아하고 이런 저의 장점이나 특기, 하고 싶은 일이 복합적으로 맞는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상에서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하는 게 피곤하고 싫을 때도 있지만

그건 뭐, 무슨 일을 하든 마찬가지니까 아직까지는 영상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목표는 뭔가요? 예를 들면 영상을 통해 뭔가를 이루고 싶다거나 보여주고 싶은 것.


준: 저는 바다를 좋아하고 고래를 좋아해서 고래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 게 개인적인 목표이고, 직업으로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찍고 싶습니다.


에디터: 영상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갈등은 없었나요?


준: 오히려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기억 왜곡인가? 하하


에디터: 최근 한 달 이내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경험을 말해 주세요.


준: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갔었는데, 어떤 책방에 가게 됐어요. 시골 마을인데도 다양한 책이 구비돼 있고 주인의 애정이 엄청 묻어 있는 책방이었어요. 그런 시골에 책방을 여는 마음이 뭔지 궁금해졌고 그래서 책방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참에 책방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에디터: 독서 모임을 한다고 들었는데요. 독서 모임에 대한 설명과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준: 처음 시작할 때는 사소한 이유지만 책을 다양한 사람에게 추천받고 싶어서였어요.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으니까 다양한 장르를 읽고 싶은데 아무거나 읽고 싶지는 않아서 여러 사람에게 책을 추천받고 싶어서 시작한 거죠. 지금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는 분이 체계적으로 잘 이끌고 있고 지금 시스템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생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고 있어서 요즘 제 삶의 질을 크게 높여주는 것 중 하나입니다.


에디터: 요즘 무슨 책을 읽나요?


준: 전에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소설보다 비문학을 많이 읽어요. 구술사도 즐겨 읽고요. 그리고 제가 몰랐던 분야의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에디터: 독서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준: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이 나만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고,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책에 잘 정리된 문장으로 만날 때가 있잖아요. 전에 나도 분명히 느꼈는데 알아채지 못한 것을 누군가 먼저 알아채고 멋진 문장으로 정리한 부분을 만나면 반갑고 그럴 때 희열이 큰 것 같아요.


에디터: 독서가 영상 공부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요?


준: 맞는 대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영상이나 독서 그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영상과 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라든지 영향에 훨씬 더 매력을 느끼는 편이에요. 제가 관심을 가진 다큐멘터리는 사실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이고 촬영 조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주제를 찍고 말겠다. 그 주제의 당사자들과 함께 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찍지 않고는 불가능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책도 그 분야의 것을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최근 읽은 책에 ‘다큐 하는 사람과 시인은 어떤 지점에서 굉장히 닮아 있다’라는 구절을 읽었는데 무척 공감했어요.


에디터: 영상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나요? 저는 넷플릭스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이란 다큐멘터리를 두 번 봤어요. 중년 주인공 남자와 상황이 비슷해서인지 무척 공감했던 것 같아요.

대상이 문어이고 다큐멘터리인데도 드라마틱한 감동과 공감이 있더라고요.


준: 제가 좋아하는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인데 그가 이런 말을 했어요. ‘큰 이야기에 맞서는 작은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하고, 그 작은 이야기들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라고요. 그래서 저도 블록버스터 같은 상업영화나 커다란 이야기보다는 개개인의 작은 삶에 더 집중하고 싶고요. 사람들은 다 각자 다르게 살고 있지만 사실 공감하는 부분은 비슷할 수 있고 어떤 한 지점에서 모이게 되는 정서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말이 잘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최승자 시인이 쓴 시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이 글귀에 70대 할머니도 밑줄을 그었고 서른 살도 못된 사람도 그랬는데 보통 70대 노인과 20대 청년이 현실에서 만나 공감할 얘기는 별로 없을 거잖아요. 근데 시 구절 하나에 같이 모일 수 있다는 게 저는 되게 멋지게 느껴졌어요. 그래서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말처럼 작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그 작은 이야기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면 우리 삶이 좀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에디터: 이제 다른 걸 물어볼게요. 좀 고차원적인 질문이에요.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선택하고 싶나요? 눈앞에 50억 개의 공이 들어있는 통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내가 가진 공은 그 안에 넣을 수 없고 다른 공만 집을 수 있어요. 그럼 내 공을 던지고 다른 공을 집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준: 질문이 별로 고차원은 아니네요. 저도 가끔 다른 공이 탐나긴 하지만 진짜로 내 공을 버리고 다른 걸 가질 마음은 절대 없죠. 왜냐하면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그러니까 선택하지 않았던 조건에는 대체로 만족하고 있고, 제가 갖지 못해 부러워하는 것들은 노력하면 대체로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보기 때문에…. 네, 저는 절대 안 합니다.


에디터: 좋아요. 그러면 자기 자신을 타자화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준: 꿈이 많은데 그에 비해 게으른 것 같아요. 하지만 게으른 건 요새 많이 고쳐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자주 듣나요?


준: 쑥스럽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고요. 하하. 그리고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잘 챙겨준다, 그냥 좋아 보인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보통 사람들은 저에 대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이렇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주는 편인데, 가까운 친구들은 좀 다르죠. ‘알고 보니 가리는 것도 많고 호불호가 되게 확실한데 그걸 별로 티를 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어떤 친구가 최근에 말해줬어요.

그리고 가족들은 저에게 예민하고 까칠하다고 말합니다.


에디터: 그리고 본인이 실패했거나 실수했거나 뭔가를 못 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좀 싫어하는 것 같고요.


준: 맞습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감추려고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에디터: 그렇게 하는 건 약간의 연기일 수 있잖아요. 그런 건 좀 힘들지 않나요?


준: 근데 뭐, 사람들은 다 하나씩은 참고 사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가끔 피곤하다고 느끼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에디터: 좋아하는 상황과 싫어하는 상황에 대해 말해 주세요.


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좋고요 누가 저를 훈계하려고 할 때 싫어요. 그러니까 누가 저를 막 교화하려고, 바꾸려고 하는 게 싫어요.


에디터: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나요?


준: 예를 들어 나는 이 영화가 별로였는데 옆에서 자꾸 ‘아니야. 이렇게 생각해서 보면 좋잖아’ 이렇게 계속 얘기하는 상황. 누구라도 안 좋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것에 유독 화가 나는 것 같아요.


에디터: 상대방의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때?


준: 제 의견을 자꾸 바꾸려고 할 때.


에디터: 자신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뭐가 있나요?


준: 음….


에디터: 생각나는 게 없으면 다음 질문. 최근 뭔가를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나요?


준: 있죠.


에디터: 그것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나요?


준: 말하면 에디터님이 글로 써서 사람들이 다 볼 거니까 말할 수 없습니다.


에디터: 그냥 에둘러서 얘기할 수 있지 않나요? 누구나 도전은 하는 거고 그 도전의 결과는 실패일 수도 있고 성공일 수도 있는데. 성공했다면 좋은 것이고 실패했다 해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유익한 거잖아요.


준: 원래는 성공하지 않으면 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심했는데. 왜냐하면 과정보다 결과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과정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 과정이 얍삽하고 비효율적이고 대충이더라도 결과만 잘 나오면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근데 최근에 한 실패에서는 그 과정에서 정말 배운 게 많고 얻은 게 많아서 처음으로 실패해도 후회가 없다는 게 뭔지 알게 됐어요.

그렇지만 실패해서 슬픈 건 슬픈 거니까 조금 슬퍼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힘들 때 보통 어떻게 해서 이겨내나요?


준: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저는 모른 척합니다.


에디터: 모른 척한다. 그게 효과가 있나요?


준: 어느 정도는요.


에디터: 아빠가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포겟 어바웃 잇(Forget about it.)’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떤 일에 도전했거나 시도했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기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드는 좌절감. 어차피 지나간 거니까 ‘잊어버려’라고 머리로는 할 수 있지만, 자꾸 과거가 현재의 생각을 발목 잡고 이미 지나간 것인데 현재의 나에게 충격을 계속 주기도 하잖아요. 물론 교훈이라면 골똘히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 크든 작든 데미지가 있단 말이죠.


준: 그렇죠.


에디터: 유익하든 아니든 실패는 몹시 슬픈 일이고 좋지 않은 감정의 연속인 거잖아요. 빨리 국면 전환을 해야 되는데 보통은 잘 안 되거든요. 그래서 겉으론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지나가길 바라겠지만.

실제 그걸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해요.


준: ‘잊어버려.’ 그 말을 항상 생각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아빠한테 자주 들었기 때문에. 근데 잊어버리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 그냥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른 척을 하고, 뭔가 다른 것에 정신을 집중할 만한 걸 찾는다든가 그러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지론이 ‘조금만 기다리면 반드시 다시 행복해진다’이기 때문에,

그냥 기다립니다.


에디터: 혹시, 수긍이나 인정을 잘하지 못하는 편 아닌가요?


준: 완전 맞습니다.


에디터: 그러면 외부 상황에 대해 흔들림도 많이 있을 거고 또 감정적인 데미지, 갈등 상황 이런 것들이 많이 있지 않나요? 어떤 가수는 <그러라 그래>라는 책을 냈던데, 인정이 안 되는 부분을 넘기는 좋은 방법, 그러니까 남들의 생각이 어쩌고 어쩌고 해도 그냥 그러라 그래 하는 건 쿨하게 인정하는 태도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준: 뭔가 기대하시는 대답은 사실 딱히 없고 그냥 잘 인정을 못 합니다. 아직 거기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에디터: 그런 걸 좀 배우거나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준: 수용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야 한다는 걸 최근 경험한 실패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에디터: 인정한다는 게…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상황에 대해 수용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준: 네. 그렇죠.


에디터: 그러니까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해 인정 못하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는 좀 뭐랄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런 걸 유연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준: 물론이죠. 아니, 그런데 왜 자꾸 저를 교화하려고 하시죠? 제가 방금 싫다고 했는데.


에디터: 아니, 교화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그런 건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이었을 뿐이에요.


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죠. 근데 생각을 한다고 다 고쳐지는 건 아니니까.


에디터: 그렇군요. 그러면 최근에 이건 정말 즐거웠다, 좋았다 이런 경험이 있나요?


준: 음…. 슬픈 거랑 별개로 저는 거의 매일 즐겁습니다.


에디터: 아하, 좋은 태도네요. 가족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준: 섬세한 엄마가 있고 그리고 모범적인 아빠가 있고.


에디터: 좋네요.


준: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오빠가 있고요.


에디터: 에? 표현이 좀 모호하네요. 실제로는 안 좋은가요?


준: 실제로 안 좋은 건 아닌데. 사람들이 오빠만 너무 좋아하니까 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입장에서는 좀 그렇습니다.


에디터: 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옆에서 20년간 지켜본 입장에서는.


준: 그래도 뭐. 저와 오빠를 같이 더 오래 본 사람은 저를 더 좋아해 주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ㅋㅋ


에디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야 이건 정말 내가 좋다’ ‘이렇게 럭키하다’ 이렇게 여기는 것들이 있나요?


준: 어떤 부분에서요?


에디터: 모든 부분에서요. 누구든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내가 행운이이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는 툭하면 ‘나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야’라고 가족들에게 뻐기거든요. 건강이나 가족관계, 일이나 환경 같은 거.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굉장히 럭키한 거잖아요. 내가 원하거나 노력하거나 착한 일을 해서 보상으로 얻어진 것도 아니니까. 완벽히 감사할 수 있는 거거든요.


준: 저도 무조건 내 편이라고 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전에는 사실 이해를 잘 못했거든요. 제가 뭐든 옳고 그르냐로 생각이 많이 흘러가는 편이라 가끔 엄마랑 이야기할 때 엄마 편을 들기보다는 제 생각에 더 옳은 쪽의 편을 들었는데 그때 엄마가 엄청 서운해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엄만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냐고 그러셨죠. 당시에는 전혀 이해를 못했는데 최근에야 그때 엄마가 많이 서운하셨겠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면서 무조건 가족 편이라는 게 뭔지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전 어릴 때부터 좋은 가족이 늘 옆에 있었으니까 몰랐는데 주변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사람은 어디 마음 놓을 데를 찾지 못해 외롭다는 얘기를 듣다 보니까

가족들이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됐어요.


에디터: 가족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이해관계로 모인 집단도 아니고 우연히 만나서 서로 좋아하게 된 관계도 아니고, 그저 가족이니까 용인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이제 좀 다른 질문으로 이제 넘어가 보죠.

요즘 몰두하고 있는 취미가 있나요?


준: 요새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재미에 빠졌고요. 위빙이라는, 뜨개질 비슷한 걸 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이어리 쓰는 것을 좋아해서 오랫동안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근데 그런 취미를 꾸준하게 할 수 있는지 저도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이 멋지다고 말해줘서 나름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칭찬에 굉장히 약하네요.


준: 맞습니다. 남들이 좋아해 주면 너무너무 좋아하죠.


에디터: 그래서 남들이 관심을 안 가져주거나 약간의 비난을 하면 좀 서운하거나 뭐 토라지거나 그러나요?


준: 완전 그렇습니다. 너무너무 그렇습니다.


에디터: 로망이나 버킷 리스트가 있나요?


준: 로망… 버킷 리스트….


에디터: 그런 거 있잖아요. 야생 고래를 본다. 다큐 찍고 싶다면서요?


준: 일단 인생 버킷 리스트는 말씀하신 대로 바닷속에서 고래를 보는 겁니다. 근데 쉽지 않을 것 같긴 해요.

어쩌다 보면 이루게 될 수도 있겠지만요.


에디터: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늑대인 줄 알고 있었는데 고래로 바뀌었나요?


준: 늑대도 여전히 좋지만 늑대는 좀 무서우니까. 하지만 늑대에 대해서 찍는 것도 좋겠네요. 그리고, 책방에서 일을 해보고 싶고요. 핀란드에서 오로라를 꼭 보고 싶습니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 세 가지는 이렇고요. 올해는 책방 여행을 갈 거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엽서집을 만들고 싶고. 하나가 더 있었는데 잠시만요.

적어 놓은 게 있었는데… 하나가 생각이 안 나네요.


에디터: 생각나면 얘기해 주시고요. 여행을 좋아하나요?


준: 좋아하죠.


에디터: 가본 여행 중에 제일 인상적인 여행은 언제였나요? 기억에 남은 여행 경험…


준: 중학교 3학년 때, 아빠랑 제주도를 갔는데 그때는 좀 많이 힘들 때라 제주도가 되게 우울하게 느껴졌는데 고1 수학여행으로 또 제주도를 갔을 때는 너무 행복했어요. 얼마나 행복했냐면 나중에 내가 이 순간을 계속 그리워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여행지 인상이 바뀌는 경험 자체가 인상적이었죠. 그리고 몇해 전, 가족과 일본 큐슈 여행을 갔을 때 숙소가 고산지대에 있었는데 날이 어두워질 무렵 안개가 주변에 짙게 깔렸어요. 그 높은 곳에서 아래에 깔린 안개를 보는데 기분이 너무나 이상하더라고요. 그 순간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에디터: 기억나요. 그때는 자신이 엄청 ‘위함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나요? 생일이었고 외국이었고 온 가족이 한 사람을 위해 일부러 멀리 가서 맛있는 치즈 케이크를 사 와서 예쁜 숙소에서 똑같은 노란 옷을 입고 생일 파티를 했던, 생각하면 되게 따뜻해지는 기억인데.


준: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살짝 사춘기여서 제대로 못 즐긴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감사한 줄을 몰랐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엄청나게 잘 즐길 수 있으니까

부디 아빠가 한 번 더 데려가 줬으면 좋겠습니다.


에디터: 응… 네??


준: 제발입니다.


에디터: 본인도 이제 성인이니까 그런 계획은 좀 스스로 짤 수 있지 않나요? 효도여행이랄지. 보은여행이랄지.


준: 아닙니다. 성인이 됐다고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디터: 저도 그런 좋은 여행 경험이 있거든요. 세 살이던 딸과 1박 2일 동해안 7번국도 여행을 했던 기억, 유치원 다니는 아들과 산간벽지 오지에서 하룻밤 지내고 왔던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거든요. 장소도 중요하지만 여행은 누구랑 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디터: 그러면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준: 사실 뭔가 거창한 목표라든지 이런 것보다 그냥 저 나름의 약속은 지금의 제 생활을 계속 잃지 않고 지속하겠다는 것입니다. 일기를 계속 쓴다든지 취미생활을 대충 넘기지 않고 꾸준히 한다든지, 책을 많이 보고 인터넷 기사를 분석하고…. 그리고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기록하고요. 지금은 시간이 많은 편이라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데 나중에 시간 여유가 없어지더라도 이런 것들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에디터: 그러면 이 순간, 가족들에게 한 마디 전하고 싶은 말은?


준: 일단 엄마는… 옛날에는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마음이 훨씬 컸는데 지금은 미안함보다는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커졌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밖에 있으면 엄마가 많이 보고 싶고. 엄마랑 얘기를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감사드립니다. 옛날에는 그냥 당연하다고 느껴서 감사한 줄 몰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여기저기 많이 데려가시고 크면서 여러 가지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 언제나 제 말을 잘 들어주셔서 저의 생각이나 감정이 많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가진 감정이 많으니까 더 다채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이 참 감사하고요. 오빠는… 오빠는, 그냥 파이팅! 헤헤. 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지금 내가 10년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리고 1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준: 10년 전… 그때는 ‘앞으로 더 힘들 텐데. 그런 삶이 지속되면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해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그때가 제일 힘드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일기장에 쓴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정말로 해주고 싶네요. 그때가 제일 힘드니까 걱정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에디터: 지금의 나한테 미래의 내가 뭐라고 얘기할까요?


준: 저는 지금의 시간이 저를 좋은 방향으로 가게 하고 있다고 믿는데, 정말 그게 맞았다고

얘기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에디터: 좋아요. 그러면 마지막 질문 하나 더 생각났어요. 요즘 기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준: 요즘 저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지금처럼 지켜주셨으면 좋겠고 제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에디터: 인터뷰가 이제 슬슬 마무리돼 가는데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나요?


준: 인터뷰를 해놓고 보니 약간 부끄럽네요. 이 대화가 다른 사람이 보는 곳에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니…


에디터: 노련한 프로페셔널이 정리를 잘해보겠습니다. 걱정 마시고요. 그럼 인터뷰를 이만 마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준: 저도 감사합니다.


끝.


사진: Alvaro Serrano, unsplash

괜찮아서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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