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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Apr 04. 2023

선암매 접견기

유명하다는 매화를 보러 남쪽에 갔었다.

승주나들목을 빠져나오자 몇해 전 취재차 순천 근방을 돌던 기억이 새로웠다. 

쌍암기사식당 앞을 지날 땐 밥 먹는데  뒷방에서 취승들이 떼로 몰려나와 놀란 기억. 

조계산 그늘에 송광과 선암이 있는데 고민하다 송광사에 갔던 기억. 

산책중인 승려들을 멀리서 찍다가 손가락 경고를 받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기억. 

엄청난 사찰 규모에 압도된 기억 같은 것. 

그리고 송광을 찍는 바람에 유명한 돌다리를 못본 아쉬움 같은 것. 


그래서 선암을 내비에 찍으며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선암사는 천년고찰을 자처하는 절들이 으레 그렇듯 아도, 도선, 의천 같은 고승 이름들이 기원 스토리에 줄줄이 등장한다.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3천원 입장료를 내고 너른 비포장길을 걷는다. 

경내 통행이 허가된 차들이 왜이리 많은지 먼지를 풀풀 날리며 수시로 오가는 차들 때문에 조금 짜증스럽다. 그러다 처음 만나는 익숙한 풍경. 


승선교 . 보물 400호 무지개 돌다리. 

그리고 강선루. 으레 그렇듯 사진보다 실물이 못하다. 

그걸 아는 사진사 10여 명이 미화된 풍광을 담으려 대구경 렌즈를 눈에 대고 엎드려 있다. 


절집 구경은 건성. 송광에 비하면 조촐하고 허름하게 여겨질 정도. 

그보다 궁금했던 게 선암매였다. 

매화를 보기 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명성을 얻은 꽃나무들. 


선암매는 수령이 최소 350년에서 650년에 이르는 원통전 각황전 주변 50여 그루를 말하며 이 중 분홍매화, 흰매화 각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돼 있다. 


매화는 절정이 지나 있었다. 한주 전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650살 먹은 천연기념물 할아버지 매화나무는 아예 꽃이 싹 떨어지고 없다. 


한결 옅어진 감흥으로 사진 몇장 찍고 승선교 지나 내려오는데 급피로감을 느꼈다. 

믹스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 송광을 찍고 내려갈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올라갈 땐 못본 개울 건너 진달래 군락이 봄볕에 활활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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