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페세 Aug 09. 2023

그리운 단순

세상의 모든 복잡함은 단순함을 위한 것이다

#1


언제나 세상은 뜨겁다. 한 순간도 차갑거나 미지근한 적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챗지피티(Chat GPT) 이슈로 열기 후끈하다. 맞다. 대화형 AI(인공지능) 챗봇 말이다. 세태에 쉽게 휩쓸리는 얇은 귀의 소유자로서 나도 얼른 경험해 보았다. 아직 공짜이고 내 앞에 인터넷이 연결된 성능 좋은 노트북이 있으니까. 생각보다는 놀랍지 않았고(왜냐면 유튜브 영상들에 따르면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했다) 긴장했는지 좀 버벅거렸다. 인터넷 속도 문제인지 모르나 꽤나 둔하고 멍청하다고 느꼈다. 


다행이다,라고 안심하려는 순간 새로운 걸 또 알았다. 챗봇이 멍청한 게 아니라 질문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걸. 좋은 대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 즉 입력이 좋아야 출력이 좋아진다는 말. 변치 않는 만고의 원리가 여기서도 적용될 줄이야. 그래서 질문과 요청을 최적으로 설계하는 전문직도 있단다. AI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역할,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그들이다. 뉴스에 따르면 이런 직업 연봉이 최소 3~4억 원 정도인데, 없어서 못 구한다고 한다. 너무 일찍 태어난 걸 통탄한다.


그런가 했더니, 또 한쪽에서는 빙(Bing) AI 이야기로 불타오른다. 입력된 정보로만 학습해 오류가 있을 수 있는(또는 의도적 거짓말을 지어낼 여지가 있는) 챗지피티와 달리 인터넷 검색을 기반으로해 최신 정보까지 이용해 질문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답을 찾아준다. 구글에 밀리던 MS의 반격이다. 놀라운 건, 질문과 대답 형식의 대화뿐 아니라 PPT, 액셀 등의 문서를 이용해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문서까지 단 몇 초만에 만들어준다는 것. 게다가 AI 챗봇과 영상 제작앱을 활용하면 필요한 영상 클립까지 뚝딱 만들어준다. 이런 세상에! 지난 사반세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국회 도서관에서 자료를 복사하고, 원고지에 글을 써서 편집장에게 제출하던 시절 이야기는 이제 다시는 안 하기로 하자.


몇 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당장 내년에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을까. 작년 이맘 때의 핫 이슈는 단연 메타버스(Metaverse)였다. 그리고 NFT. 모두가 가상세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처럼 쫓기듯 허둥거렸다. 메타버스 아니면 비즈니스 세상이 망할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과 1년 전이다. 이런 배신감이라니. 아무도 가상을 언급하지 않는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버렸다. 단지 포스트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도무지 원인을 분석할 역량이 내게 없으니 그저 세상이 이렇구나, 탄식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매번 그랬듯 무섭게 변하는 복잡한 세상을 무서워하면서.


#2


자동차 세상도 그렇다. 무섭게 변한다. 다같이 입맞춰 미래차라 부르던, ‘아직은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단언하던 칼럼니스트들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 전기차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터를 쓰든 엔진을 쓰든, 고성능 컴퓨터와 첨단 IT가 선사하는 온갖 기능과 사양, 엄청나게 복잡하고 전자화된 자동차를 우리는 단순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이 구현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원고지에 글을 쓰던(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지만) 그 시절 칭송하던 굉장한 차들은 어땠나. 올드카가 아니라 클래식이야, 말장난을 해봐야 그저 구시대 유물.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 아니다. 그저 어지러워 잠시 생각을 단순히 멈춰 본다. 나는 어떤 차를 원했나. 


이런 차를 원했다; 넓고 커다란 차. 올라 앉으면 구름에 얹힌 듯 포근하고 승차감이 좋아 아무리 거친 길도 매끈하게 달려 주는 차. 넓은 보닛과 위로 열리는 뚜껑. 누가 봐도 감탄사를 터트리는 차. 사방의 시선을 압도하는 차. 우렁찬 엔진음으로 지구끝까지라도 단숨에 도달할 것 같은 차. 기분에 따라 실내 온도를 자동 조절해주고 말로도 온갖 기능을 제어하는 차. 콘서트홀에서 듣는 것처럼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려주는 하이엔드 오디오가 달린 차. 지루하면 말도 걸어주고 마사지도 해주며 온갖 질문을 다 받아주는 차. 잠깐 졸아도 차선을 잡아주고 누가 끼어들면 자동으로 멈추고 터치 몇 번으로 목적지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차….


아니다. 실은 이런 차를 원한다; 계기판 두 개. 속도계와 RPM 게이지. 오디오 버튼 두 개. 그리고 에어컨 버튼. 장식 없는 스티어링 휠. 창문 여닫는 도어 손잡이. 클러치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그리고 가속페달이 나란히. 시트는 좀 딱딱해도 몸에 꼭 맞고, 울퉁불퉁 길을 달리면 고스란히 바닥이 느껴지는 차. 내가 온전히 핸들링하는 기분이 드는 다소곳한 차. 이런 차를 원한다.


지금 보고 있는 차가 꼭 그렇다. 1974년에 나온 골프 1세대 실내 사진이다. 이렇게 심플할 수가 있나. 요즘 차에 비하면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차나 마찬가지다. 가고 서고 도는 데 필요한 기능만 달려 있다. 물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버튼과 창문 여닫이는 필요하지. 그 외엔 정말이지 심플 자체다. 아무 것도 없는데 매력적이다.

이런 차를 타고 싶다. 지금 차들은 무섭다. 무언가 너무 많다. 나를 위하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나를 안전하게 해주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기능이 많아도 너무 많다. 과잉도 이런 과잉이 없다. 차를 번쩍 들고 툴툴 털어 필요한 기능만 남기고 싶다. 그래서 가볍게 골목을 벗어나 바람과 길을 느끼며 천천히 달리고 싶다.


글을 쓰려고 받은 폭스바겐 1세대 골프 실내 사진을 들여다보다 문득 상상을 펼쳐본다. 자꾸 더하고 더하여 온갖 과잉으로 넘쳐나는 욕망의 시절에 떠올리는 낭만적인 생각. 구시대 유물, 타 본 적도 없고, 있다 해도 이제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사진: Volkswagen AG


이전 07화 반전 매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