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페세 Aug 18. 2023

척 보면 압니다

한 번 보면 알 수 있는 게 차였으면 좋겠다. 사람은 말고.

왕년에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유행어가 있다. 

"척 보면 앱니다"였던가. 

한 번 보면 사람이나 상황이 다 파악된다는 뜻이었는데, 생각하면 별로 웃기지도 않은 말이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유행했는지 알 수 없다.


척 보면 알 수 있는 게 좋은 것인가.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을 거다. 한 번 보기만 해도 모든 게 파악된다면 그런 무미건조한 삶이 또 어디 있겠는가. 봐도 봐도 알 수 없고 생각하고 생각해도 모호하며, 확고한 예상도 뒤엎는 반전이 비일비재한 게 우리 인생인 것을.


그렇다 해도 딱 보면 알 수 있어야 좋은 것도 있다. 이를 테면 사람이 쓰는 도구가 그렇다. 

인류가 오래 사용한 도구들은 지극히 인체공학적(!)이라 보자마자 쓸 수 있다. 그런데 갈수록 복잡한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살펴보고 파악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도구가 많아졌다. 특히 전자제품, 기계제품들. 깨알같이 인쇄된 두툼한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야 기능과 사용법을 파악하게 된다. 

물론 복잡한 기능과 성능을 가진 제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가능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자주 쓰는 기능, 중요한 작동법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둔한 사람이더라도 눈치로 알 수 있게 만드는 게 제작사의 마땅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 주장을 펴는 건 조금 조심스럽다. 스스로 눈치 없는 올드 타이머라는 자백 같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르다. 금방 사용법을 알아챈다.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사용자는 눈썰미 좋은 젊은이가 아닌 어른들이다. 내 아이들은 어릴 때 스마트폰을 주면 바로 가지고 놀곤 했다. 사용법을 가르쳐준 기억이 없는데도 그랬다. 게임기는 그렇다 쳐도 스마트폰으로 아이 스스로 필요한(또는 재미있는) 걸 찾고 알아서 가지고 논다는 건 꽤 신기하게 여겨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 고장이라도 낼까봐 전전긍긍하는 나같은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조작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떠올려보면 아이가 돌이 갓 지났을 무렵 혼자 식탁에 올라가 전자렌지 타이머 스위치를 분해한 적도 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눌러보고 만져보다가 방법을 바로 찾아낸다. 

기기를 디자인한 사람이 일부러 복잡하게 기능을 숨겨놓았을 리 없기 때문에 사실, 조금만 시도하면 사용법은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두렵다. 찾아보고 맞다고 판단이 들 때까지 함부로 시도하지 못한다. 지금도 낯선 기기 앞에선 진땀을 흘린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대차를 받았다. 

같은 전기차인데도 차종이 달라 여러 가지 조작법이 달랐다. 복잡했다. 시동과 가속 페달, 브레이크 페달. 그리고 스티어링휠 조작법 말고는 모든 게 다르다 느껴질 정도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최신형 모델이라 할지라도 새로 발명된 기계인 듯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예컨대 내 차는 열선시트 통풍시트, 스티어링 열선을 사용하려면 전면 버튼 하나로 켜고 끄고 세기를 조절할 수 있었는데, 새 차는 모니터 메뉴로 들어가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이 기능을 작동할 수 있었다. 

한 번 알면 금방 반복하게 되지만 문제는 그 한 번을 알기 위해 관찰과 공부가 필요하고 모험적인 시도가 필요하다는 데 있다.


새 차는 내 차와 달랐다. 조작법은 까다로웠지만 모든 게 신세계였다. 

단순 스위치 조작으로 가능한 필요 기능만 있는 내 차와 달리, 사용자 편의를 위한 별의별 옵션이 다 포함돼 있어 복잡했다. 편의를 위한 불편이라니. 엄청난 모순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옆자리에 한 번 앉아보더니 당장 이 차로 바꾸면 안 되냐고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내 차 수리 기간이 되도록 오래 걸리길 조용히 마음 속으로 빌었다.


몸은 편리에 길들여져서 갈수록 쾌적함과 편안함을 원한다. 

하지만 뇌는 복잡함을 싫어하고 단순해지고 싶어해서 척 보면 알기를 원한다. 직관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신차 시승기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수사 중 하나가 '직관적' '직관성'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만드는 건 그만큼 사용자 편의성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노력을 응원한다.


딱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면이 보이는 게 사람이길 바란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반면 척 보면 알 수 있는 게 사물이면 좋겠다. 특히 자동차는 그렇다. 나처럼 오래된 사람, 둔감한 사람에게는 알고보니 괜찮은 제품, 쓰다 보니 나쁘지 않은 차는 선택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 Elnaz Asadi

이전 08화 그리운 단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