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바꿀 때가 되면 이런 생각을 한다
이별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평생 그럴 것이다. 누군들 이별에 익숙할까. 아닌 척해본들 힘든 일이다. 이별은 익숙함을 떼어버리는 일이다. 감정 없이 말한다면 그러하다. 보고 느끼고 손에 익은 존재가 어느날 사라지고 말 때의 공허와 상실감을 우리는 두려워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이런 정의가 옳다고 느낀다.
쓰던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이사를 가거나 이직해서 말끔한 새 사무실, 새 방에서 새 생활을 시작해도 어느새 공간은 물건으로 쌓인다. 잡동사니라고 퉁칠 온갖 물건이 나를 포위한다. 아내는 옷방에 내 옷이 절반이라고 구시렁댄다. 언젠가는 내 옷을 한보따리 현관에 내놨길래 화를 냈다. 다 입는 거다. 그걸 언제 입냐 지난 3년 간 입는 걸 못 봤다. 그래도 아끼는 거다. 이런 옥신각신 끝에 옷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16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나니 물건이 이삿짐 상자로 다섯 개쯤 되었다. 대부분 책이었지만 소품이며 문구, 각종 기념품과 자잘한 장신구들이 수백 개였다. 집으로 주문하면 눈치보일 캠핑용품도 있었다. 집에 가져오니 아내가 입을 딱 벌렸다. 이삿짐인가.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작은 것도 버리지 않는다. 쓰일 날이 있을 거야. 아쉬울 때가 있을 걸. 이런 말 중얼거리며 서랍 안에, 창고 깊이 넣어둔다. 그러면서도 안다. 다시 꺼낼 날이 있긴 할까. 내 물건 아닌 것도 못 버린다. 큰아이가 쓰던 디지털피아노와 농구공, 야구 글러브. 둘째가 미대 준비하며 쓴 화구와 물감, 스케치북도 그대로 있다. 정작 임자들은 버리세요 단호히 말하는데 이걸 왜 버려? 싶어 도로 넣어둔다. 요즘은 당근에 파세요 하는데 몇 푼 받자고 아이가 쓰던 걸 내다 버려? 하는 마음. 미련이다.
미련은 손에 찐득히 눌어붙은 젤리처럼 번거롭고 떼내기 힘들다. 그러므로 일단은 눈에서 치워놓고 싶은 마음. 잠깐만 널 잊는 걸 용서해. 버리는 건 아니야 하면서. 누군가는 쓰레기라 불러도 되는 것을 모아두는 미련은 어디서 왔을까. 과도한 감정이입, 뭐든 아까워하는 쪼잔함일 수 있지만 본말은 불안 때문이 아닐까.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몰라. 이걸 찾을지도 몰라. 없으면 크게 곤란할 거야. 그때의 후회와 당혹감을 감당할 수 없을 걸. 있을지도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보험 같은 것. 그래서 아무 것도 버리지 않는다. 결코 이별을 택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버리지 않길 정말 잘했어 한 적이 있었냐 하면 없었다. 어디다 둔 것 같은데 찾다찾다 포기한 적은 있어도 말이지. 알지만 태도를 못 바꾼다. 심지어 생수병도 가지런히 모아놓은 내게 아내는 오늘도 한숨 짓지만 모른척한다. 화초 분갈이할 때 쓸 거니까.
지금껏 차를 6대쯤 바꿨다. 30년 남짓 운전했으니 그럭저럭 5년씩은 탄 셈이다. 첫차 에스페로. 와인색 차체가 멋졌다. 미션을 갈고 차 값보다 더 많은 수리비를 들였어도 추억이 많았다. 달콤한 연애와 신혼시절을 차와 함께했다. 차를 팔고는 돌아서 조금 울었다. 승용차와 미니밴, 해치백을 거쳐 SUV와 전기차를 타기까지 매번 차와 헤어지는 건 쉽지 않았다. 차마다 구구절절한 서사가 달라붙어 그랬다. 쉽지 않았어도 이내 잊었다. 헌차는 서랍에 보관할 수도 없고, 새차는 금방 옛정을 뗄 만큼 늘 쌔끈했으니까.
다양한 차를 타보며 알았다. 감정은 얄팍하다는 것. 속일 수 있다는 것. 타던 차와 이별 따위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안 된다면 전혀 다른 종류의 차를 맞이하면 된다는 것. 이런 생각을 미리 하는 건 지금 타는 차와 관계정리가 예정돼 있어서다. 미리 약을 쳐두는 일이라 할까. 전에 없던 미래를 경험하겠다며 과감히 시도한 전기차 라이프는 비교적 고달팠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모르던 사실을, 글로 배우던 지식을 몸으로 알아가는 일은 희열이 넘쳤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공자도 새 수레를 타며 그런 생각 했겠지.
이별은 괴롭지만 언제나 새로운 관계와 이어진다. 왕좌의 게임에서 바리스가 말했듯,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법이니까 실연의 아픔은 새 애인이 말끔히 도말한다. 그러니 무엇에든 과도한 의미 부여는 하지 않는 걸로 하자. 세상에 차는 많고 모르는 즐거움이 아직 많이 남았을 테니. 놓아줄 건 그대로 놓아주기로 하자. 그까짓 이별 따위.
사진: Karim MANJRA,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