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편함에 던질 수 있는 용기
나는 가장 편할 때 퇴사했다.
참 힘든 결정이었다. 지금 딱히 그만 둘 이유가 없는 그런 애매한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카페에서 1년 반을 일했고 서비스업 특성상 한 곳에서 1년 정도 했으면 잘 버틴정도였다.
이젠 일도 알아서 척척 해냈고 사장님과 직원들과의 트러블 없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나름 다양한 일들을 해봤다고 자부하는데 이렇게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이 일에 진심이었고 열심히 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젠 특별한 이벤트 없이 평소 해오던 나의 일과를 노련하게 해내다 보면 30일 뒤 알아서 월급이 통장에 숙박을 하고 있다. (들어오고 얼마 있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기에 숙박이라고 표현해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얼마나 좋은가.. 스트레스 없이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며 돈을 축적할 수 있다니 말이다.
이렇게 2년.. 3년만 열심히 일하고 창업을 하자고 생각했었다. 그게 아무 탈 없이 평탄한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같았다. 뭐 창업이 망할 것이라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들로 나를 그려나가고 있을 무렵 두 달 후였나.. 사장님께 퇴사의사를 밝혔다.
나를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 내던졌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했기에 의미가 있었다.
나도 정말 힘들어서 퇴사하고 싶던 적이 수 없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 힘든 시기를 견디고 가장 편할 때, 나가고 싶지 않을 때 퇴사하겠다' 이렇게 다짐했다. 나의 오기가 나만의 퇴사 기준을 세운 것이다.
왜 내가 힘들 때는 죽을힘을 다해 견뎌내고, 가장 나가고 싶지 않을 때 퇴사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는지 각각의 시기가 내게 어떤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었는지 말하고 싶다.
거창할 것 없이 사람이 가장 힘들 때는 '도피'가 가장 큰 목표가 된다.
그리고 '도피'의 가장 무서운 점은 뒤의 미래가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아픔과 고통들을 참을 수 없어 도망가고 싶은 감정만 앞설 뿐이다. 정말 죽고 싶을 것이다. 너무 아프고 수치스럽고 괴롭고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같고..
그런 고통들을 난 주변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겪어봤다. 그들에게 "그건 도피밖에 안돼! 견뎌봐" 이런 말들로 위로 아닌 위로 혹은 조언 아닌 조언을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무시할 뿐이었다.
사실상 자신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건 그들의 마음에 수많은 생채기가 남겨진 뒤일 것이다.
나는 그런 상처들이 남겨지기 전에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을 남겨주고 싶다. 물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이 말만 남긴다면 모두 외면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뒤에 '그 시간은 도피 뒤의 미래를 그려가며 보내봐'라고 덧붙이고 싶다.
다시 말해, 자신이 너무 힘들어 '도피'라는 목표가 설정되었다면, '도피'가 실행된 뒤 미래를 그려보며 '도피'의 목표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퇴사라는 도피가 행해진 뒤 자신이 할 것 즉,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고 높은 가능성으로 도피라는 목표자체가 사라져 있을 수 있다.
다음으로 사람이 가장 편할 때는 '불편함'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불편함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3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 그런 불편함이 아니다.
'편함'과 '불편함'의 대조를 위해 사용했지만 사실상,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더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현재 일하는 그곳에서 불편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그것 나름대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편함'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편해한다. 살짝 긍정적인 시선을 더해보자.
불편함은 나의 부족함에서부터 시작된 당연한 결과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인 것이다. '불편함'을 사랑하고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이미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면 그 일에서 불편함(나의 부족한 점)을 찾고 더 발전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불편함'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퇴사를 통해 새로운 '도전'이라는 불편함에 던져보는 것이다.
편함은 나에게 불안함을 주지만, 불편함은 나에게 설렘을 준다.
불안함에서 벗어나 설렘을 쫒기 위해 나는 가장 편할 때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