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우리는 단체생활에 익숙해져있다.
하지만 그 이후 사회에 혼자 내던져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스스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 혹은 일을 시작해 직접 돈을 버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즉, 지구에 존재하는 수십억 인구들 한 명 한 명은 각자 인생 스토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나 또한 사회에 나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나쁜 일, 기쁜 일, 억울한 일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나가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다정다감한 사람들로 가득해 따듯한 이야기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사랑받은 경험이 부족하고 미움, 질투 등으로 가득해 차가운 이야기일 수 있다.
이렇듯 각각의 이야기마다 고유 색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색감은 곧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결이 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말투, 표정, 분위기, 행동들에서 그 사람의 결을 알아볼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그래" 혹은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와 같은 말은 이러한 사람의 말투, 표정, 분위기,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결을 느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를 수 있지만 '결'은 꽤나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
말투, 표정, 분위기, 행동은 누군가와 닮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 온 친구가 있었다.
정해진 루틴 즉, 등하교부터 시작해 수업 듣고 밥 먹는 것까지 의무적으로 같이 해왔기에 어느 정도 친구와 유대감을 쌓고 지내올 수 있었지만 진정 그 친구의 '결'을 온전히 느끼고 공감하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부재를 느끼게 된 건 이 친구를 알게 된 지 8년쯤 됐을 때부터였다.
사회에 홀로 나오게 됐을 때, 각자의 길에 들어서고 의무적인 만남을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자유의 상태가 돼서야 깨닫게 됐다.
전에 허락되던 친구의 장난도 이제는 용납이 되지 않는 내가 정해놓은 선에서 한참 벗어난 장난이 되었고,
이해하려 했던 친구의 행동도 이해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것도 여러 사람과 부딪히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 친구와 만나면 이상하게 불편했다.
시기와 질투가 많고 항상 재는 행동.
사소한 걸로 되려 나를 쪼잔한 사람으로 만드는 모든 행동들이 나를 지치게 했다.
분명 그 사람의 좋은 점도 있고 같이 잘 지냈던 추억들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감정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자기 객관화를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
결국 결론을 내렸다.
그 누구도 사람을 나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나눌 수 없다.
단지 '결'이 다를 뿐이라고
결이 다른 사람과 있으면 둘 다 스스로를 갉아먹게 된다.
조금 이기적이라도 관계를 끊어내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이미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다시 심을 수 없듯이 빠지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
(탈모인이 계신다면 정말 죄송한 비유였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나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의 이야기에 같이 적어가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것이며 그들의 말투, 표정, 행동, 분위기는 내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더 돋보이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