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21코스

올레를 걷는 이유

by 수피

제주 한달살이를 시작한 지 일주일.

서서히 제주도에 익숙해져 가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제 올레길 도전해 봐도 되겠다"

라고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제주도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올레'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은 있어도 정확히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서 올레에 발을 들이기 전 '올레'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부터 검색해 봤다.


<올레>: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


위와 같은 의미의 제주도 방언이었다.

제주도 사투리는 참 이해가 되지 않게 생겨먹었다. 마치 다른 나라 언어처럼...

그래도 자꾸 들여다보면 참 귀엽다.


일단 올레가 무엇인지 간파는 했고,, 길을 걷는 것이라는 것까지는 추론해 볼 수 있는데

그럼 과연 왜.. 올레길을 걷는 걸까?


올레는 27가지 코스로 이루어져 있고 총 437km로 모든 코스를 정복하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하는 거리다.

짧게는 10km- 길게는 20km까지 거리에 상관없이 완주의 난이도를 상, 중, 하로 나누어놨다.


나는 처음 하는 올레길이기에 가장 난도가 낮은 21코스 (하도-종달) 올레길을 골랐다.

사실 일부러 이곳을 골랐다기보다는 내가 사는 송달리에서 가장 가까운 올레길 안내소가 21코스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21코스를 선정하게 되었다.


나는 곧장 260번 버스에 몸을 싣고 해녀박물관에 있는 21코스 올레길 안내소에 도착했다.

특별한 준비는 하지 않았다. 선글라스, 햇빛가리개모자, 선크림, 카메라!

올레 간다고 신경 써서 준비한 건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안내소에서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챙길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꼼꼼히 봐주시고 지원해 주셨다.

물, 방울토마토(간식), 올레길 설명 등이 그런 것들이었고 추가로 올레길 여권을 2만 원에 구매했다.


올레길 여권이라 함은 코스 처음, 중간, 끝을 기점으로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되어있다.

뭐 자기만족이라면 그렇지만 이런 게 있어야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바로 구매했다.


그리고 곧장 안내소에서 나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올레길은 리본과 화살표로 길을 안내받아가게 된다.

_DSC4261.JPG 화살표

화살표는 파랑 주황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파랑은 정방향이고 주황은 역방향을 말한다.

일반 화살표랑은 다르게 '사람 인'자를 이용해서 화살표를 만들었다고 한다.


두 갈래 길이 나왔을 때 주로 저런 화살표로 올바른 길을 안내해 주는 고마운 녀석이다.


_DSC4162.JPG 리본

리본이 실제로 걸으면서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는 아주 중요한 녀석이었다.

모든 길에 평균 20m 거리마다 나무나 표지판 등에 걸려있다.


저 리본만 쭉 따라가다 보면 올레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리본이 안 보여서 당황스러운데 멍 때리고 가다가는 아무리 리본이 있다 해도 길을 헤매게 되더라..


_DSC4175.JPG 간세와 화살표

그리고 화살표 옆의 저 강아지 모양은 '간세'인데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간세다리'라는 제주도 방언에서 따온 말이다.

머리 쪽이 정방향이고 그 반대가 역방향이 된다.


IMG_2209.jpeg


이건 스탬프 간세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지점을 뜻한다.

머리 쪽 스탬프 칸을 열면 스탬프와 잉크가 나오는데 잉크통은 잘못 만지면 잉크가 손에 묻으니 조심하자.


이러한 기본 올레지식을 겸비하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체력전이 시작된다.


난이도 하라고 해서 나처럼 운동을 잘 안 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이었다.

내가 짐이 좀 많은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계속 멈춰서 찍는 행위가 나를 더 지치게 했다면 오히려 위로가 된다. (아직 체력이 부족한 나이는 아니니까 ,,)


다음 오름에 갈 땐 짐을 더 간소화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특히 5월의 날씨에 긴바지를 입고 갔더니 다리에서 폭포가 생길 뻔했다.

꼭 반바지 입기로 약속하자. 그리고 팔에는 토시를 착용하기로..




나는 계속 걸었다.

냄새와 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은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음식뿐 아니라 걸음도 물리는 게 있는 걸까.

한 시간쯤 걸으니 서서히 지루해지고 딴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퇴사했던 회사의 일, 사람들, 친구들, 가족 뭔가 애틋하면서 그립고 슬펐다.

지금 제주도에 와 나의 사람들과 나의 일을 뒤로하고 잠시 쉬러 왔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가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걸으면서 잡다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올레길만의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 싶었다.

다들 이런 생각에 하염없이 빠질 수 있기에 이 올레길에 오르는 걸까..


이런 잡다한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토끼섬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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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뻤다.

하지만 토끼섬 자체보다도 그곳에서 놀고 있는 얼핏 쉰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분들이 벗어 둔 양말을 손에 들고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그 장면이 나름 신선했다.


아마 제주 올레길을 천천히 걸어오며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즐기는지가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의 바다는 조금만 걸어가면 너무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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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가니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너무 부럽고 나마저도 기분 좋다. 세상모르게 노를 저으며 카약을 타는 사람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사 선생님, 그리고 멀찍이서 그 모습을 부러움과 흐뭇함으로 바라보고 있는 올레길을 걷는 나.

거리는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그들이 즐기는 방식은 천지차이였다.


난 올레길을 걸으며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수십 아니 수백 명의 사람들과 소통했다.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부끄럼 없이 자신이 즐기는 모습을 공유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부러워하고 감사해했다.


이게 이 자체로 올레길의 매력인가 보다.


아직 첫 올레길이기에 모르는 것 투성이겠지만 오늘 이 느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새로운 올레길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지미봉 정말 힘들었지만 올라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그 힘든 고난의 순간을 모두 잊게 해 줄 만큼 값진 풍경이었고

거기서 먹은 방울토마토는 제주도가 힘들게 올라온 나에게 선물해 준 단비 같았다.


_DSC4274.jpeg 지미봉에서 본 성산일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