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화

by 수피

(본 내용은 소설입니다.)


이해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우리 가족들이 받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내 기억의 조각들이 잊고 있던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회상시키며 복잡 미묘한 감정이 심연 어딘가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다.

어떤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 아픔을 기억하고 극복하려 하지 않고 시간이라는 가벼운 구름 사이로 숨어드려 한다면 가벼운 바람에 금방 또 고통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 가족처럼.


내 기억의 조각들은 이미 시간이라는 달콤한 약에 변질되어 있었다. 그가 가족들을 위해 힘든 생활을 버텨온 나날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 것들. 하지만 난 그 달콤한 약에 취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기억하고 극복하며 증오했다.



아버지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가장 큰 하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


"책임"


누군가에게 인지되고 보여지는 그런 명함파기식 헌신이 아닌.

오로지 어떤 사람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부족했다. 그가 해 온 가족들을 위한 일은 모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이루어진 행동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로 하여금, 우리 가족들의 자유로운 행동들에도 타인에게 잘못 보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들에는 크게 제약을 받았다. 그의 '화'는 우리의 행동을 구속하기 시작했고 사라지지 않는 상처들이 마음 깊숙이 쌓이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의 책임감 없는 행동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양 일상이 되어버렸다. 염세주의로 물든 그의 세상은 어느 것 하나 잘 풀릴 일 없었다. 밖으로부터 가져온 칼날들을 엄마에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 채 마구 던졌다.


그에게는 자신이 받아온 아픈 일들과 상처들 그것을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책임'질 용기가 없다.

그것이 그가 저지른 '죄'다.


기억의 파편들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큰 거울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그때쯤 거울 앞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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