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로 밥 짓는 얘기
#5. 나는 왜 쓰는가 (브런치 오디세이)
뻔한 말을 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누구라도 그럴 테지만.
뻔한 말을 하지 않으려면 뻔한 생각을 피해야 한다. 말은 생각이다.
뻔한 생각을 피하려면 관점을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하다.
훈련의 방법은 여럿 있겠지만, 책 읽기와 경험만 한 게 없을 듯하다.
책은 고구마 줄기 같다. 읽다가 좋으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찾게 되고, 인용된 모든 책을 찾아보게 된다. 책이 책을 부른다.
이 책과 저 책을 읽고 따라가다 보면 관점이 벼려진다.
반드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관점을 갖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흔해빠진 통속성은 벗어나게 된다고 믿는다. 거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는 독서의 경험은 직접 체험으로 채울 수 없는 영역을 메워준다.
경험을 넓고 깊게 하는 것도 관점 훈련에 큰 도움이 된다.
그중에서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일부러 찾아 할 필요는 없지만, 관점 숙성에는 크게 작용을 한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좋은 훈련이 된다면 좋다. 대개 고통과 고독이 훈련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무거운 압박과 압력의 시기엔 어쩔 수 없이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몹시 아프지만 좋은 약이 되기도 한다.
한때는 섹시한 노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지금은 귀여운 68세 형님이 된 배철수의 배캠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뻔하지 않은 그의 멘트가 있다. 문자 사연 하나에도 식상하지 않게 말해주는 그의 삶의 축적이 좋다.
양희은 누님도 마찬가지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내용부터 실소가 나는 사연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여성시대 편지에 보태는 그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손을 꼭 잡아 주는 듯 깊고 따뜻해서 참 좋다. 녹록지 않았던 삶의 무게를 이겨낸 그이의 당당한 다정을 따르고 싶다.
글쓰기를 위한 안테나에 걸린 어떤 생각을 글로 쓰기 위해선 클리셰 같은 표현을 걸러내야 한다. 쌀로 밥 짓는 얘기를 누가 읽으랴.
참으로 뻔한 사람인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그 과정이 조금이나마 편해지고 익숙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
관점을 바꿔봐야 하고 낯선 것들과 조합을 시도해야 한다.
글을 쓸 때는, 삶의 어두운 터널을 터덜터덜 걸었던 내 경험도 공허하지만은 않다고 믿는다.
운전석에서, 화장실에서, 침대에서 걸어 올린 생각 하나를 붙들고 온종일 이리저리 굴려보는 맛도 괜찮다.
아직은 쌀로 밥 짓는 얘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뻔하지 않은 글로 완성하는 일도 가끔 있다. 자주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태도로 계속 살고 싶다. 그래서 쓰고 싶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