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이라는 가면

#7. 장비와 폼 (브런치 오디세이)

by 수필버거

마크 트웨인, 조지 오웰, 루이스 캐럴, 오 헨리, 이상, 이육사, 박경리, 신경림, 이문열, 황석영, 다자이 오사무, 에도가와 란포... 모두 필명이다. (책 한 번 써봅시다 / 장강명 저)


브런치에도 필명을 쓰는 작가가 태반이 넘는다. 필명을 쓰는 작가는 개별적인 이유가 있겠고 쓰지 않는 사람도 각자의 이유가 있겠다. 나는 필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면이 필요성이 가장 크다. 글을 쓰고 싶은 만큼의 크기로 내 글이 부끄럽기도 하다. 쓰고자 하는 마음이 부끄러움을 겨우 이긴다. 매번 그렇다.

쓰고 난 직후는 괜찮다 생각하고 공개하지만, 며칠 지나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한 달쯤 지나면 세상에 내놓은 글 거의 전부가 부끄럽다. 이런 보잘것없는 글을 세상에 보탤 필요가 있을까 회의한다.

그래도 쓰고 싶고 써야겠으니 가릴 것이 필요하고 숨을 곳이 필요하다.

필명을 갖자.

이왕 쓸 가면이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도 나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유명인 중에서 선호하는 한 명 또는 두세 명만 꼽아보라는 질문을 종종 본다.

누구를 가장 좋아하세요?

누구를 제일 존경하세요?

누가 롤모델인가요? 같은 질문들.

모든 질문에 답을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질문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답을 생각하게 된다.


있다. 내가 따르고 싶은 인물은 있다.

획을 긋는 사람, 그 사람의 출현으로 세상의 전과 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업적을 만든 사람을 좋아한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결합하여 20세기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만든 헨리 포드를 마음에 담았다.

스티브 잡스도 좋아한다. 모든 책상마다 개인용 컴퓨터 한 대씩을 꿈꾸고 만들어 일하는 방식을 바꾼 사람. 이제는 사람들의 손에 컴퓨터 한 대씩 쥐어주고 또 한 번 사는 방식을 바꾼 사람이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있다. 상업영화의 문법을 새로 쓴 사람.


글은 문화의 영역이다. 산업에서의 내 자리는 실명으로 미미하게나마 차지하고 있으니, 문화로서의 글쓰기를 하는 '나'는 필명으로 스필버그 감독을 오마주 하고 싶었다.


'수필버거'를 연상했고, 의미를 끼워 맞췄다.

모든 글은 자전적이라고 한다. 장르와 형식으로 나누기 전에 글의 기본은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맛있는 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글맛.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 맛있는 햄버거처럼, 글을 맛있게 쓰자라는 지향을 담은 '수필 버거'.


필명이라는 가면이 필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가면은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역할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나'와 업무회의를 하는 '나'의 역할은 다르다. 아빠일 때 다르고, 남편일 때도 다르다. 역할에 따라 '나'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산다.


분리하고자 했다. 일을 하는 나로부터, 생활인으로서의 나로부터 글을 쓰는 수필버거를 따로 떼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내 속에 작은 칸막이를 쳤다. 노트북을 펼치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동안은 수필버거로 지낼 테다.

부캐 놀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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