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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Apr 11. 2021

은유의 말들

#11. 쓰기의 책들 (브런치 오디세이)

내 글은 약하다. 기본이 약해서 쉽게 흔들리고 꺾인다. 많이 쓰면 나아질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쉬이 휘청인다.


김훈 작가의 글과 유시민의 글로 인해 단문 강박이 있었다가 김영하 소설가의 책으로 해제가 된 경험이 있다.
이게 문제였다. 이유는 후에 짐작하게 됐지만, 김영하 작가처럼 길게 써도 되겠네라는 생각은 내게 독이 되어 엉망인 내 글은 더 엉망이 되었다. 횡설수설로 그칠 글에 이젠 중언부언까지 보태고 있었다. 길고 쓸모없는 글. 재미, 감동, 정보, 메시지 중 뭐하나 뚜렷하지 않은 모호한 글. 어떤 날은 기껏 써서 저녁에 발행한 글을 자다 깬 새벽에 황급히 지우기도 했다. 너무 부끄러워서.


은유 작가를 좋아한다. 구조와 내용은 간결하지만 사유는 묵직한 그이의 글이 좋다. 구독하는 밀리의 서재에서 '쓰기의 말들'을 발견했다. 밀리 공모전에 낼 글을 쓸 때 마중물로 읽으려 했다. 웬걸, 읽을수록 낯이 뜨거워졌다. 내 글이 너무 하찮았다. 비교가 민망하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이처럼 못 쓸 거라는 생각. 여태 읽은 글쓰기의 책들에서 이렇게까지 의지가 꺾인 적은 없었다. 노트북을 엎었다.


밀리 공모전 마감은 4월 11일 자정. 은유의 책을 읽고서 한 글자도 못 쓰게 된 게 3월 20일 무렵. 하필 쓰고자 했던 주제를 막 갈아엎었을 때.


거의 보름 동안 한 자도 쓰지 못했다. 커피숍에 가서도 노트북을 켜고 커피만 마시다가 껐다. 밀리 공모전은 훠이훠이 물을 건너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의기소침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었다.

책이고 노트북이고 다 멀찌감치 밀쳤다. 공모전도 포기하려 했다.


브런치의 알림이 잦아졌다. 전자책 공모전 응모 독려 알림.

이렇게 포기하는 게 맞나. 방법이 없을까.

블로그에 던져둔 예전에 쓴 리뷰 몇 개를 읽었다. 마음에 들고 말고는 제쳐두고 그냥 읽었다. 원래 내 글쓰기 성향이 어슴프레 보였다.

누구를 따라 쓴다고 갑자기 그 작가처럼 되지는 않는다. 모방도 훈련이지만, 갑자기 발전하는 일은 없다. 최소한 글쓰기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래 성실하게 쓰면 도약의 순간은 오겠지만.  


포기할 건 포기하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지금 내 수준껏 열심히 쓰자. 가랑이 찢어지지 않도록.
쉬운 답을 긴 고민 끝에 마주하는 일은 흔하다. 특히 내겐 자주 있는 일이다. 어쨌든 그 날 이후 은유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응모 마감이 임박하지만, 다시 쓰기 시작했다.

끝까지 이렇게 헤맨다.


내겐 혹독한 독서였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 중에는 발군이다.

일대일 과외를 받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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