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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Oct 20. 2021

우울증이다

쉰, 삶은 여전하다

우울증이다. 외로움이 아니다. 그저께 밤에 깨달았다. 식욕이 유난히 없는 게 한 달 정도 됐다. 원래 식탐이 별로 없어서 가벼이 여겼다.


공황장애를 안고 살던 시기에 공장 2층을 사다리로 오르다 까무룩 정신을 잃은 일이 있었다. 1층의 기계들은 운 좋게 피해서 떨어졌지만 두개골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내부 출혈도 조금 있었고. 그때 미각과 후각을 잃었다. 의사는 옆의 다른 신경들이 서서히 대체를 할 거라고 했다. 단, 시간은 기대보다 오래 걸린다고. 한 1년 정도 지나고 미세하게 미각과 후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차츰 맛과 냄새를 느끼기는 했으나 내가 기억하던 그 맛과 그 냄새가 아니었다. 팔구 년이 지난 지금도 상세한 미각은 없다. 대략 느낀다. 가끔 몰아서 과식도 하지만, 엄청나게 맛있어서 먹는 건 아니다. 그런 연유로 식욕이 뚝 떨어진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보다 지켜보는 아내가 더 걱정을 할 정도로.


그제 밤 모임 자리에서 너무 안 먹는다는 타박, 그러니까 입맛이 유별나고 까칠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런 책망이 익숙하긴 하지만 무엇을 씹는다는 행동조차 너무 귀찮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예전 증상들이 생각났다. 공황장애 증상 중엔 우울증도 있다. 요즘의 나와 그때의 나를 생각나는 대로 비교하며 며칠을 지냈다.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 당시에는 내 병명은 몰랐지만 원인은 알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타는 사업, 늘어가는 빚. 지금은 증상으로 병은 짐작하겠는데 원인이 흐릿하다. 갱년기? 호르몬?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알약 하나로 한방에 해결이 될까?


마음은 늙지 않는다. 애를 써도 몸이 늙는 것은 막지 못한다. 뭐든 부조화는 힘들다. 깨진 균형이 병을 만들기도 한다. 호르몬 수치도 중요하지만, 그게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믿는다. 예나 지금이나 초조함이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될 만큼 되고 갈 만큼 가게 될 텐데, 더 크게 더 멀리의 욕심이 사라지질 않는다. 자전거로 자동차만큼 가기를 바라면 탈 나는데. 욕심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끼는 지금의 초조감이 더 크니까. 일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차분하고 느긋하게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될 일은 되고 볼 사람은 보게 된다.

욕심을, 조바심을 버려야 내가 살겠다.

그렇게 하려 한다. 최면이라도 걸고 싶다.


해는 지는데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게 또 괴롭다.


사진 : 이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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