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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Oct 10. 2021

거울을 보듯

쉰, 삶은 여전하다

어떤 술은 증폭제다. 헛웃음 칠 일이 박장대소가 되고, 코끝 찡하고 말 일이 대성통곡이 된다. 희미했던 감정이 확장되니, 돋보기로 보듯 관찰하여 분별하기 좋을 때도 있다. 가리지 못한 부끄러움이 남기도 하지만.


가깝다고 믿는 친구 둘과 술을 마셨다. 나이 차이가 있어도 중년에 들면 위아래로 5년 정도는 친구라 칭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젠 빈속에 마시는 건 피해야지 하는 다짐은 습관에 질 때가 많다. 기분과 감정 통제를 하며 마셨는데, 2차 자리가 문제였다.


기분이 가라앉는 이유는 많다. 체력일 수도 있고 날씨일 수도 있다. 요즘 다운되는 일이 잦다. 원인의 큰 부분은 일이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코로나로 인한 매출 저하, 계획 수립의 어려움 등. 해는 기울고 갈 길은 먼데 돌발변수에 길게 발목 잡히는 것은 기운 빠지는 일이다. 나는 내 감정의 원인을 그렇게 해석하지만, 지인들의 질문은 다르다. 갱년기나 가을 탓 정도는 일반화된 질문이라 웃어넘긴다. '외롭지요'라고 했을 땐 강하게 부정했다. 내가 왜? 뭔 소리냐고. 아니라는 증거를 여러 개 댔다.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이 많다는 변명도 그중 하나다. 외로움의 종류는 많을 텐데, 왜 가까운 사람 숫자로 '아님'을 증명하려 했을까.


일찍 시작한 술자리라서 코로나 통금까지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었다. 간단히 캔맥주로 입가심을 하자고 한다. 그러자. 한두 캔에 갑자기 뻗겠냐. 그래도 술기운이 살살 올라와서 입은 닫았다. 행여 말실수라도 하면 내일 아침이 호러가 된다. 친구 둘이 얘기하는 것을 보며 들었다. 불현듯 한 친구의 외로움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이가 처한 상황을 조금 알어서일까. 한 번 든 생각은 점점 강화되기 시작한다. 내 편이라 믿는 사람에게 보이는 맹목적이기까지 한 이해의 말 정도는 선한 리액션이라고 봤다. 내 편인 사람의 어떤 것이던 감싸 안으려는 논리의 비약은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지푸라기를 통나무처럼 붙드는 절박이 짠했다. 짠함은 화로 번졌다. 표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 표정이나 단어 선택에서 놓친 부분이 있었지 싶다. 들켰을 게다. 그이에겐 느닷없었을 내 화를.


다음 날 아침. 무거운 머리를 베개에서 떼기기 힘들었다. 일단 후회. 좀 더 감추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고 복기. 왜 화로 증폭됐을까. 출근을 해서 일을 했고 해장국을 먹었다. 일은 진척이 더뎠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며 답을 생각했다. 거울을 본 것. 그래, 나는 어젯밤에 거울을 봤었다. 나에게 외롭지요 했던 그 친구가 많이 외로워 보였다. 무조건적으로 감싸안는 이해의 말, 비약하는 억지 논리. 그이의 증상을 보고서야 내 병을 알아챘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잦은 술자리는 엄폐였고 부정이었다. 열심히 자기편을 엄호하고 있는 친구에게, 비약하지 말라고 했다. 맥락도 없이. 그이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기분이 태도가 된 날. 감정의 민낯을 본 밤.

알아채서 다행일까. 며칠 째 마음이 불편한 것으로 보아 잘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술이 배려를 마셔버렸다.


이제 뿌리를 찾아야겠다. 뿌리에 공허가 있으면 당황스럽겠다. 단지 호르몬의 이퀄라이징이라면 슬프겠고. 은폐물 사이로 나를 살피는 일은 어렵다. 살피기가 어려우니 보살피기도 어렵다. 여전히.


사진 : 이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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