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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Oct 24. 2021

걸어가다 몇 번을 울지라도

쉰, 삶은 여전하다 (사진 : 이상희 작가)

'버드'는 작은 재즈 카페다. 생긴 지 1년 정도 됐다고 한다. 백종원 대표는 먹고 마시는 가게의 주인은 눈썰미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한 번 보고도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게 장사의 기본이라고. 

버드는 두 번 갔다. 지난주 토요일 그리고 어제. 예매가 늦어서 바 자리를 받았다. 

"그날 잘 들어가셨어요?" 앉자마자 내 또래의 사장님이 한 말이다. 

흠칫했다. 내가 취해서 뭔 실수라도 했었나? 

지난주 박재홍 밴드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흥겨웠다. 뮤지션도 오버하고 관객도 오버를 했지만 내가 실수 한 건 없다. 

사장님의 밝은 눈과 좋은 기억력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인사를 받았다. 

우드 베이스의 버드 인테리어처럼 사장님도 따뜻하다고 느꼈다. 혹은 장사의 신이거나. 편안해서 단골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자기 일을 잘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어젯밤은 ADD9의 공연. 젊은 재즈팀이다. 

첫 곡 연주는 따로국밥이었다. 각 악기의 소리가 제각각 뛰어다닌다. 나는 막귀인데도 그리 들었다. 

보컬의 소리도 자신 없는 듯 약하다. 멘트는 다음 곡 소개만 겨우 한다. 

연습실에 놀러 온 기분. 

사진 재즈밴드 ADD9 by 수필버거


지난주 토요일 공연을 떠올렸다. 박재홍 밴드는 40대와 50대 남자로 구성되어있다. 세션맨도 그 나이대다. 

연주는 능숙하고 멘트는 능란하다. 

무르익었다는 느낌과 능글맞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객석을 쥐락펴락 한다.

관객 입장에선 편하다. 그들의 포인트대로 오르내리며 즐기면 되니까. 그들의 공연은, 그들의 일을 익숙하게 잘한다는 느낌으로 남았다.

그들의 낮을, 생계를 생각했다. 지방 뮤지션들의 페이를 알아서일 게다. 

그들은 꿈을 이룬 것일까. 본인들만 답을 알겠지.   

사진 박재홍 밴드 by 수필버거


우리 자리를 제외하면, 버드의 관객은 젊다. 예쁜 청춘들. 내가 평균 연령을 높여서 미안할 지경이다. 

청춘은 풋풋하다. 세상에 나온 지 오래지 않은 이들 특유의 쭈뼛거리는 태도도 파릇해 보인다. 

ADD9 팀은 연주도, 멘트도  머뭇머뭇 주저주저하는 모습이다. 아직은 무대가 부끄러운가 보다. 

연주의 질과 공연의 즐거움을 생각하면 ADD9팀의 점수는 낮다. 그렇지만 파트별로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은 예뻤다. 또래의 관객들과 수줍게 소통하는 모습도 귀여웠다. 꿈을 좇아 이제 막 길을 나선 사람을 본 것 같다. 이들은 성장을 하고 있으니까.  


우울증은 온갖 우울한 생각을 달고 온다. 이것도 저것도 거슬리지만 게 중 제일 무거운 것은 인생 부정이다. 내 삶이 통째로 후회스러운 기분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이겠지만, 틀린 방향으로 죽도록 열심히 달리기만 한 것 같은 이런 기분은 엿같다. 요즈음의 내 상태가 그렇다. 

난 잘못 산 걸까. 


어젯밤 공연에서 막 시작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그 길이 그들에게 잘 맞는 길이길 바란다. 

그 길이 그들이 행복한 길이길 바란다. 

긴 세월 걸어가다, 

그 길에서 울더라도. 


창업을 하던 서른의 내게도 말해주고 싶다. 

가보라고. 걸어보라고. 

비록. 그 길에서 몇 번을 울지라도. 


연주는 어디 가고. 글만 남았다. 


* "그 길에서 울더라도" 밤토리 작가님의 매거진 제목에서 인용했습니다. 

짧은 표현으로 제가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밤토리님의 매거진 - https://brunch.co.kr/magazine/holydayonthe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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