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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Dec 03. 2021

빈 잔

쉰, 삶은 여전하다

술은 팔고, 안주는 근처 가게에서 배달켜서 상차림비를 받는 작은 술집이 있다. 그냥 술만 사서 마셔도 된다. 주인장은 50대 남자인데, 기타 치며 노래도 한다. 음악 신청을 하면 본인이 부르기도 하고 찾아서 틀어주기도 한다. 가게 안의 조그만 무대는 손님에게도 개방다. 연주를 하며 부르거나, 사장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도 된다. 레트로 감성. 80년대 선술집 같다.


얼마 전에는 대학교 연합 보컬 동아리 20대 초반 학생 셋이 번갈아 노래를 했다. 각기 다른 음색들. 푸릇한 무대를 보며 흐뭇했다. 잠시 뒤, 불콰하게 취한 내 또래 아저씨가 무대 의자에 앉았다. 양해를 구하는 멘트를 하고 전주가 흐른다. 걸쭉한 목소리. 우리 또래에 익숙한 선곡. 김현식과 임재범 노래였던 듯. 두 곡을 연달아 불렀다. 젊은 친구들과는 또 다른 느낌.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은 손님들은 당연하게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물론 모두가 즐긴 것은 아니다. 시끄럽다고, 뭐 저런 노래를 하냐고, 저 실력에 왜 나서냐는 작은 수군거림도 들었다. 뭐 어떠랴. 박수와 환호에 도취되어 열창을 하는 아저씨의 흐뭇한 표정이 내 눈에는 좋아 보였다. 그이는 뿌듯하고 행복했을 게다. 그럼 된 거다. 그의 노래로 인해 다친 사람 없고 아픈 사람 없다.


어차피 우리는 각자의 노래를, 각자의 연주를 하며 하루를 산다. 오늘 나의 기쁜 일이 모두에게 기쁜 일일 리는 없다. 오늘 나의 뿌듯한 행위가 누군가는 눈살 찌푸리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런들, 저런들, 해를 끼치겠다는 의도는 없었으니까. 잘해보겠다고 하루를 살았고, 잘했다고 흐뭇한 표정으로 퇴근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고 누가 돌을 던지랴.


남진의 노래처럼.

당신도 나도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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