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왕복 아홉 시간 반 가량 운전을 했다. 가고 오며 유튜브 즐겨찾기 음악 230곡을 거의 다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손발만 까딱 거리는 단순 노동을 긴 시간 하면 잡다한 생각이 든다. 송나라 사람 구양서가 말한 책 읽기와 생각하기 좋다는 삼상-침상, 마상, 측상- 중 마상에 해당하겠다. 요즘은 베개 위, 변기 위, 버스와 지하철 안도 모두 유튜브에 점령당해서 책은커녕 생각이란 걸 할 짬이 없지만, 장거리 운전은 그나마 옛말의 마상처럼 사유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운전 출장을 운전 명상이라고 칭하고 가끔은 기꺼운 마음으로 핸들을 잡는다.
갖은 생각을 했지만, 오늘까지 남은 건 큰 줄기 두 개다. 업무 출장이었으니, 일 생각을 했고 각각의 미팅을 복기하고 결과를 해석했다. 이 글에는 일 얘기를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내려오는 길에 젖은 솜이 돼가는 몸과는 달리 기분은 점차 가벼워졌던 걸로 봐서 보람 있는 출장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글쓰기에 관한 생각이다. 구체적으론 지난 10월의 브런치 북 공모전 응모작의 주제 '쉰, 삶은 여전하다'에 생각이 붙들렸다. 후회보다는 아쉬움에 가까운 느낌.
애초의 취지는 "여러분, 50대 나이를 겁내지 마세요! 뭐, 별다를 거 없고요, 여전히 살만해요"였다.
감성도, 체력도, 관점도 그리고 무엇도 무엇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나빠지지도 않으니 두려워 말라는 응원(?) 글을 쓰고 싶었는데, 과연 충족했을까 의심스럽다. 뒤로 갈수록 우울증이 어쩌네, 에세이라기보다 다이어리 쪽으로 기울었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미리 설계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했던 글, 그날그날 기분 따라 출렁였던 잡탕 글. 그나마 앞의 글 몇 개는 톤이라도 밝아서 다행이라고 느낄 만큼 아쉬웠다.
하행길에는 50대라서 좋은 것은 없을까를 의도적으로 생각해 봤다. 꼭 좋다고 단정 짓긴 어렵더라도 나이 든다는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을. 있기나 할까 했는데, 있기는 있더라.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쓴다면 원래의 의도에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공모전 응모작은 브런치 북 최소 발행 글수 10개만 겨우 채워서 마무리했으니, 같은 제목의 매거진으로 이어가면 되겠다. 후에 퇴고하며 제하고 합쳐도 좋겠고.
룩 엣 더 브라이트 사이드. 컵에는 물이 반이나 남았어.
물론, 오늘은 생각과 다짐만 한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