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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Dec 10. 2021

캠벨을 만난 날. 수프 말고.

쉰, 삶은 여전하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같은 말은 믿지 않았다.

구호라고 생각했독서의 효능을 강조하는 수사로 여겼다.


나의 동굴은 책이다. 복잡한 상황, 맹렬한 스트레스가 닥치면 맞서 싸우다가도 틈을 만들어 책으로 도망가 숨을 고른다. 상황을 객관화할 시간을 벌 수 있어서 좋고, 책마중물 삼아 탈피책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컴컴한 삶의 긴 터널을 지나던 시절, 팩트의 세계인 물리학 책으로만 숨다가 딴에는 균형을 잡겠다고 가끔 인문서를 읽기도 했다. 조셉 캠벨(혹은 조지프 캠벨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의 '신화의 힘'. 대담집이다. 노학자 캠벨의 통찰 못지않게 인터뷰어 빌 마이어스의 질문도 훌륭하다. 잠시 현실을 잊기 위해 읽기 시작했으나 아래의 문장을 만나며 크고 차가운 파도에 몸이 흠뻑 젖는 경험을 했다.

"인생이란 원래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살아있음 바로 그것이고, 그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신화의 힘 중에서, 조셉 캠벨/신화학자)

후련고 시원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통쾌함까지 느꼈다. 그의 말에 기대어 인과를 잠시 밀쳐내고 상황만 볼 있어서였을까. 왜 캠벨의 말에서 힘을 얻었는지는 아직도 분명치 않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터널은 벗어났다. 그러나 그 터널 끝에 더 지독한 복병을 만났다.  

후회란 괴물. 꽤 긴 시간 동안 괴물과 씨름했다.

인생은 시간인데, 잃어버린 시간은 어쩌나. 어쩌자고 그때 그런 결정했을까.   꼴이 뭐야.

통째 지우고 싶은 시간 붙들고 무수한 밤을 끙끙 새웠다.


캠벨의 말을 정리하면, 인생의 의미는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것이겠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 다시 쳐다보기도 싫은 지난날들 돌아봤다. 캠벨의 관점으로.

지금의 결과 말고 과정을. 내가 경험한 삶의 순간들을.

많은 기쁜 순간의 점이 보였다. 쾌재를 불렀던 순간도 있었고, 성장과 성찰의 순간들도 있다. 나쁜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는데 뭉뚱 거려 쓰레기통에 던졌었구나.  

비록 그 점들을 이은 선이 우하향 곡선 됐더라도.   


심한 소리도 서슴지 않는 가까운 친구들은 말한다. 내가 망하고서 인간 됐다고.

그럼 그전에는?이라 되물으면, 기고만장, 건방 같은 단어들이 돌아온다. 친구들이 그리 생각했도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나 잘난 맛에 살기도 했으니.  


캠벨의 관점을 받아들였다. 관점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라고 한다. 인생은 태도이니,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인생은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많은 것들이 달리 보인다.

내가 나이 들어 좋다고, 과히 나쁘진 않다고 하는 것들의 주춧돌이 캠벨의 말이다. 캠벨에 빚진 바가 크다.


책 한 권으로 내 관점이 바뀐 이야기가 선행되어야 다음 글부터 보일 내 관점이 설명이 될 터이다.

이 글에 캠벨을 소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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