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풀리지 않았다. 꿈이라는 주제는 정했고, 방향도 잡았는데 시작을 못하는 게 이틀 째다. 매일 쓰려고 마감도 샀건만 어제는 펑크. 이대로는 오늘도 위험하다. 퇴근시간까지 맴도는 생각을 좇아 허공만 바라보고 앉았는데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보며 글의 실마리를 찾을 것을 예감했다.
이 작가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이 글의 매거진 '쉰, 삶은 여전하다'를 함께 시작한 화가이고, 10개 정도의 글에 사진으로 참여해 준 분이다. 본 매거진 첫 글에 썼듯이 그이는 늦게 시작한 비주류, 지방 화가에 여자라는 몇 겹의 핸디캡을 뚫고, 편견과 텃세와 배타의 벽을 넘어 한국미술협회 가입까지 한 강단 있는 사람이다.
'요즘 어떠세요'라는 인사에 '너무 좋아요'라고 답한다. 여전히 밝다. 참여하고 있는 공동 전시회에서 반응이 좋고, 그림도 기대 이상으로 팔렸으며, 갤러리의 초청도 쇄도하고 있다는 반가운 근황을 들었다. 나는 의례적인 축하인사는 빼고 진심으로 부럽다고 말했다. '아니요, 뭐가요, 별말씀을요.' 같은 겸양의 말 대신 '진짜 눈물날만큼 기뻐요' 한다. 솔직한 표현이 고마웠고 부러움은 커졌다.
어디까지? 얼마큼? 이란 질문에 대한 답을 꿈으로 여기며 살았다. 업이 엎어지는 고된 경험과 '인생의 의미는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조셉 캠벨의 말은 꿈과 목표에 대한 나의 질문을 바꿔 놓았다. 질문을 바꾸면 답을 위한 생각의 출발점과 경로가 달라진다.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싶은가?'란 질문의 답을 꿈으로 삼으려 한다. 좋은 감정의 라벨을 달고 기억으로 저장될 경험은 어떤 것일까.
매출 천억 원 같은 숫자가 내 꿈일까? 회장이란 직위가? 잘 팔리는 작가가? 누군가의 꿈일 수 있지만, 더 이상 내 꿈은 아닌 것 같다.
이 작가에게 그림 몇 점이나 시집보냈는지 묻지 않았다. 호 당 얼마를 받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그이의 '눈물 날 만큼 기쁜 상태'의 크기가 알고 싶었고, 언제까지 지속하는지 궁금했다. 인정과 박수의 기쁨을 겪고 있는 그이가 많이 부러웠다.
꽉 찬 하루를 살아낸 날 밤의 뭉근한 흐뭇함, 회사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준 한 달의 마감 날 느낄 뿌듯함, 행복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어 삐져나오는 아내의 환한 미소를 보는 뻐근한 만족감, 샌프란시스코 소살리토 마을을 가족과 함께 걷는 아련한 행복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상상을 한다. 무엇을 꿈으로 삼아야 할지 알 것 같다.
긴 시간이 걸리는 큰 꿈만 그런 경험을 하게 하지는 않을 게다. 당분간은 작고 짧은, 간결한 꿈으로 살아도 충분하겠다.
올 해의 마지막 날, 브런치 발행을 위해 엔터 키를 치는 순간을 생각한다.
한 달짜리 매일 쓰기 마지막 글을 올리겠지. 내돈내산 마감이지만 무엇을 잘 마무리했다고 느끼며 뿌듯할 12월 마지막 밤을 이 글을 쓰며 미리 겪는다.
올해 많이 지쳤지만, 마지막 글쓰기로 나 자신이 조금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휴지통(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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