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버거 Dec 22. 2021

문득 돌아보니 -맥연회수 (驀然回首)-

쉰, 삶은 여전하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출간 작가를 목표로 정했다. 외로이 쓰는 골방 작가보다는 소설가 장강명의 권유대로 책을 낸 저자가 돼보자 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뛰어들어 내가 배운 사업은 차가운 목표지향의 세상이다. 목표, 계획, 실행, 평가. 성과의 세계.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습관처럼 목표를 세우고 이루기 위한 계획과 전략을 짰다. 책을 내고 이름을 알려야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될 거라는 목표만 보였다.


8회와 9회 브런치 북 공모전 응모를 하고 결과를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특히 올해 선정 작가들의 브런치 북을 보면서, 내 목표가 꼭 출간이 아니어도 괜찮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기울었다. 수상작 제목만 봐도 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특별한 경험, 흔하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직업 이야기, 여자라서 또는 여자로서의 삶 같은 트렌드를 반영 글이 상을 받았더라. 독자의 눈길을 끌어야 팔리니까, 출판사는 사업이니까, 나도 동의한다. 수상자들의 글과 노고를 깎아내리려는 뜻은 없다. 오히려 그런 글감이 없는 내가 안타깝고, 트렌드 분석의 노력을 하지 않은 내가 한심할지언정 폄하의 의도는 1도 없다. 나의 생각이 변한다는 뜻은 글쓰기에 대한 내 지향이 달라지고 있음에 있다.


공모전 당선을 목표로 글을 쓰며, 딴에는 심사위원과 출판사, 브런치팀이 좋아할 만한 주제를 고른다고 골랐다. 게으른 탓에 벼락치기로 써서 글 개수가 수상작에 비해 많이 적지만, 목표란 건 있었다는 얘기다. 응모 버튼을 누르며, 이렇게 당일치기처럼 응모해선 안된다는 걸 두 해 째 거듭 깨닫고 기대를 접긴 했지만.


미협 가입 축하를 위해 만났던 이 작가(화가)와 차를 마시'오십이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나이일까', '살아보니 똑같지 않아요?'를 얘기하다가 나온 주제가 "쉰, 삶은 여전하다"이다. 브런치 북 공모전 응모를 생각하던 즈음이었다.  

초반 글은 이 작가의 사진에 내 글을 붙이는 방식으로 다. 쓰다 보니 주제가 맞춤옷 같았다. 글을 쓰며 마음이 평온해지는 경험 몇 번 했다. 글도 나도 조금씩 완성돼가는 느낌이 좋았다. 글감도 비교적 쉽게 떠올랐고. 내 나이의 이야기라서 그랬으리라.

이 주제는 계속 쓰려한다. 형식은 바뀔 수 있겠다. 다시 이 작가와 같이 할 수도 있겠고, 만화 위해 그림 배우는 후배와 함께 해도 재밌겠다.


맥연회수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몇 년 전 도올의 칼럼에서 본 구절인데, 중국 남송시대 작가 신기질의 시에 나온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백 번 천 번 찾아 헤매던 그녀가, '문득 머리 돌려 보니 (맥연회수 驀然回首)' 희미한 등불 아래 있더라"는 '청옥안·원석(靑玉案·元夕)'이라는 한시의 구절이다.


종종 쓰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요즘이다. 재밌게 쓰다 보면 쌓이는 글 숫자도 많아질 테고, 많이 쓰면 좋은 글도 가끔 나올 게다. 그렇게 오래 쓰면 호칭만 (브런치) 작가인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글쟁이가 되지 않을까. 본 (브런치) 매거진의 앞 글에 썼듯이 사업도 그렇게 하려 한다. 큰 목표는 잠시 잊고 내일 재밌을 일, 이번 달 마감하며 만족할 일에 집중하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한 해라도 그리 살아보려 한다. 임인년은 재미와 만족의 경험이 쌓이는 1년이면 좋겠다.


내년 이맘때 문득 머리 돌려 보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반갑겠다.  

무엇을 바라고 그리 살아보겠다는 의도는 지만, 김중혁 작가의 싱거운 산문집 제목처럼 '뭐라도 되겠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결한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