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놀이터다. 유일하게 '목적 구매'를 하지 않는 곳이 서점이다. 할인점도, 옷가게도 일이십 분이면 구매 끝인데 서점은 시간이 넉넉한 날 간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고,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굳이 서점에 가는 이유는 발견의 기쁨 때문이다.
대형서점은 베스트셀러 위주 진열과 복닥거리는 사람들이 장벽이다. 독립서점, 개인 책방, 북카페는 대부분 소장 도서 규모가 작아서 잠시 훑어보면 끝. 대안으로 찾아낸 곳이 예스 24 중고서점이다. 신간이 없어서 오히려 어떤 책을 만날지 기대되는 공간. 대구 동성로점은 규모는 제법 크지만 사람은 적다. 혼자 놀기 제격이다.
올해는 소설을 자주 읽겠다고 마음먹었다. 엽편이라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다. 소설과 에세이는 다른 스킬이 필요하다. 잘 쓴 작품을 교과서 삼아 봐야 할 이유다. 장강명 작가는 한국은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책만 팔린다고 아쉬워하던데, 무명 소설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곳이 드문 것도 유명 작가 쏠림 현상의 이유 중 하나지 싶다. 언론과 인플루언서도 유명 도서를 주로 다룬다. 관심을 끌어야 하니까. 덜 알려졌지만 내게 맞는 소설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문예지로 반가운 신예 작가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까다로운(?) 취향 탓에 한국 소설을 선뜻 구매하기가 어려웠다. 서점에서 노닥, 뒤적거리면 뜻밖의 횡재도 기대할 수 있어서 좋다.
예스 24 대구 동성로점은 바로 옆에 대형 카페가 있다. 커피와 책이 한 공간에 있으면 좋으련만 두 집의 운영 주체가 다르다. 며칠 전 늦은 오후, 편하게 오래 머물 작정으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서점에 갔다. 역시 직원이 손님보다 많다. 이러다 없어지면 어쩌나.
일단 한국 소설 코너로 직행. 가판대에서 바로 만난 책이 2021년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3천8백 원. 새책이나 진배없는데. 감사히 챙긴다.
낯선 이름의 작가 소설 몇 권을 뽑아 들고 바닥에 앉아서 훑어본다. 이런 재미를 느끼는 게 얼마만인지. 소설은 시작하는 한두 문장이 좋으면 중간쯤 펼쳐서 한두 단락을 더 읽고 살지 말지 결정을 한다. 오늘 소설책은 한 권으로 만족해야 할 듯.
실용서는 목차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제목에 끌려서 뽑아 들었다가도 대부분 다시 꽂는다. 눈길을 끌어야 하니까 디자인도 중요하다. 그래도 화려하기만 하다거나, 제목이 내용의 전부이거나, 분량을 늘리려고 꼼수를 부린 책, 알맹이 없이 시류만 쫓는 책은 고이 다시 꽃아 둔다.
소설집 한 권, 알고 싶은 분야이긴 하지만 살 생각까지는 없었던 책 두 권, 전자책으로 읽으며 이건 사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하던 책 한 권까지 기쁘게 발견한 네 권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사기만 했는데, 괜히 뿌듯하다. 이걸 책의 힘이라고 해도 될까?
서점 밖은 벌써 캄캄했고 도시의 조명들은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