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메모 앱이나 이면지에 단어 하나, 글 한 줄 쓰면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거창할 것 없다. 글쓰기에 대한 지금 생각은 그렇다. 당장 써라 바로 써라 같은 말을 왜 하는지 이젠 안다.
창업이라도 하듯 호들갑을 떨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쓰기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그랬다.
운동은 장비와 폼이라 했다. 글쓰기도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노트북을 사서 조금 쓰다가 큰 애 주고, 또 사서 쓰다 막내 주고,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서 써보기도 했다. 당근 마켓에서 사서 쓰다가 고장 나서 처박아둔 노트북까지 합치면 지금의 글쓰기 장비, 노트북이 네 개째다.
미디어 속의 작가들은 죄다 카페에서 쓴다. 음. 폼난다. 내게 맞는 분위기의 카페를 찾는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카페 유랑 끝에 겨우 한 곳을 정해서 앉아도 남의 글을 읽으며 예열만 하다가 나오기도 했고, 첫 문장 고민만 하다가 집에 가기도 했다.
글 한 줄 쓰는 게 그리 어려웠다.
대부분의 브런치 발행 글을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썼다. 나만의 루틴이라 여겼고 법 아닌 법이 됐다. 웃긴 건 카페에 갈 짬을 못 내는 날은 아쉬운 척하며 깔끔하게 포기하기도 쉬웠다. 바빠서 못쓰는 걸로. 이런 좋은 핑계가 있나. 그래서 3년 동안 달랑 50개의 글을 썼다.
마감은 부담이다. 자초한 압박이랄 수도 있겠다. 매일 쓰기 프로그램에 가입하여 쓴 두 달간 21개의 글을 브런치에 올렸다. 이 글까지 포함하면 22개. 역시, 마감의 힘.
의무감으로 매일 쓰는 글은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매일 쓰자고 작정한 이유는 근육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한 줄, 세 줄이라도 쓰는 글쓰기 근육. 좀 붙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한 달 더 써봐야겠다. 우선은 질보단 양이고 백 일이 습관 근육 생성의 최소 기간이라고 하니까.
주 5일 매일 뭐라도 써야 하니 아침부터 뭘 쓸지를 생각한다. 종일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은 자기 전에 급하게 일기 쓰듯 써서라도 세 줄은 채워야 한다.
노트북? 카페? 다 필요 없더라. 급하면 화장실에서라도 쓰게 된다.
루틴? 그런 건 하루키나 김영하처럼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하루 천 원 꼴이다. 내가 산 (매일 쓰기 프로그램) 마감의 금액을 주말 뺀 한 달로 나누면 대충 그렇다. 천 원의 행복 같다. 뭐라도 쓰면 잠시는 뿌듯하니까.
창의력의 원천은 데드라인이라더니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