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버거 Jan 21. 2022

다 잘할 수 없어서

생각 마중 글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 이십여 년 전엔 류의 인지도가 더 높아서 늦게 데뷔한 하루키가 카피캣 필명이란 오해도 받았다고 한다.

유명해진 후 둘의 선택은 달다.

아래 인용문은 소설가 장강명(인터뷰이)과 정용준(인터뷰어)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장강명 : 무라카미 류가 그렇게 외도를 많이 했더라고요. 영화도 연출하고, 토크쇼 사회도 보고, 라디오 진행도 맡고, 미식 탐방도 하고, 만능 문화평론가 비슷하게 일을 많이 했어요. 그걸 다 어느 정도 잘했으니까 계속 여러 군데에서 호출을 받았겠죠.

반면 하루키는 어느 날 갑자기 남유럽으로 가버렸죠. 『먼 북소리』에 그 얘기가 나와요. 대담 요청, 인터뷰 요청, 짧은 잡지 원고 청탁을 받다가 지쳐서 떠났다고. 그렇게 그리스랑 이탈리아에서 다른 일 안 하고 원고를 써서, 『노르웨이의 숲』이랑 『댄스 댄스 댄스』를 들고 돌아왔죠.
저는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을 쓴 때부터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 악스트 Axt 2019.01&02, 악스트 편집부 (지은이) > 중에서


코로나로 잃어버린 2년의 상황을 타개 회사는 회복과 성장을 해야 한다.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팩트다.

퍼스널 브랜드와 부캐 사이 어디쯤 도달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글쓰기가 유일한 통로로 보인다. 내 삶의 질을 위해서도, 장년 이후의 시간을 위해서도 이루고 싶다. 목표다.   

나는 다재다능하지 못하 천재도 아니다.

이것저것 손에 다 쥐고서, 한해 더 느슨하게 살면? 달성은 요원해진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작년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는 여전했고 몸과 마음은 지친 상태였다. 반추하면 그때의 우울증은 몸과 마음의 경고였구나 싶다.

몸의 신호는 늘 놓치기 십상이니까 왜 또 이지 하며 견디며 지나기만 바랐다. 겨울이 닥치고 코로나 제약이 다시 강화될 즈음 우울증의 근원을 깨달았다.

두렵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구나.

핑계를 대며 고개를 모로 돌리고 주저앉아 있구나.

결단이 필요했다.


장강명 : 제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한 것 같은데 소설은 한 줄도 못 쓴 날이 있어요. 메일 답장을 하고, 추천사를 쓰고, 올해의 책을 고른다든가, 그런 일들. 놓치기는 아까운데 소설가의 본업과는 상관없는 기회 같은 것들도 있죠. 방송 출연 같은 것들. 그러면 고민이 돼요.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 악스트 Axt 2019.01&02, 악스트 편집부 (지은이) > 중에서


내가 3년을 꾸렸던 음악 모임엔 100여 명의 회원이 있었다. 파레토 법칙은 어디나 적용이 되는지,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은 이삼십 명 정도였지만 마음 쓰이는 일은 종종 생겼다. 즐거움도 크지만 속 시끄러운 일도 비례해서 늘었다. 시간과 품이 들었다. 사람이 모이면 당연한 일이다.


재능 없는 사람이 무엇이던 성취하기 위해선 무엇을 희생해야 한다. 지나친 일반화일까. 여하튼 나는 그런 사람이다. 꼭 놔야 한다면 소중한 것을 놓아야 결심의 상징성과 효율이 크겠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즐기고 저것도 취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손에 쥐는 일은 내겐 늘 없는 일이니까.


모임에 대한 애정이 컸다. 정든 사람들과 이별도 섭섭했다. 해체 후에도 만나면 된다는 말은 대개 구호로 그친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우리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몸 뜨면 마음 뜬다. 흔한 일이다. 공통의 화제가 사라지는 이유가 크다.

그렇다고 결정을 더 미룰 수도 없었다. 언제가 됐던 코로나 시국이 영원 할리는 없으니까. 시장이 꿈틀 하는 것도 느껴지고. 만사 타이밍이 중요하다.

연말까지 종지부를 찍겠다는 결심은 반발과 원망, 아쉬움의 토로를 외면할 수 없어서 1월 첫 주로 미뤄졌다. 아무튼 마침표는 찍었다.


코로나로 무산된 프로젝트가 있었다. 되살리기로 했다. 타개책은 이것이 유일하다고 판단했다.

일이 엎어질 땐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코로나로 시장이 얼어붙고 그 끝이 안보인 탓이 제일 크기는 했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았었다.

재개(再開)는 시작보다 어렵다. 당시 해결하지 못했던 장애물부터 넘어야 한다. 제법 크다.

 

모임을 해체하고 카톡도 잠잠해지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날마다 생각을 거듭했다. 엊그제쯤 어쩌면 장애물을 기회로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기 투자는 늘어나겠지만. 얼개와 경로가 연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한동안 일에 몰두해야지 싶다.


장강명 : 제가 이십 대일 때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가 동급이었어요. 두 무라카미라고 하면서 일본 언론도 한국 언론도 라이벌처럼 맺어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라이벌이 아니잖아요.

정용준 : 그런가요? (잠시 생각) 그렇네요.

장강명 : 하루키는 이제 노벨문학상 후보잖아요.
< 악스트 Axt 2019.01&02, 악스트 편집부 (지은이) > 중에서


잘 되는 회사와 여유로운 가정엔 특유의 질감이 있다.

생동감과 활기, 구성원 간의 배려와 존중,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 같은 것들.

내 노벨상은 이런 것이면 좋겠다.    


두 달 째의 랜선 매일 쓰기 프로그램의 압박으로 요즘 글을 자주 쓴다.

이 글을 쓰며 느끼는 작은 뿌듯함이 내가 기다리는 아닐까.

어쩌면 나는 이미 상을 받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중에 읽으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