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버거 Feb 16. 2022

이제 광야가 기다립니다. 어서 오세요.

남부도서관에 잠시 들렀다. 글쓰기 모임에서 좌장 역할을 하시는 분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책, 나무처럼 살아간다(리즈 마빈 저)를 빌릴 생각이었다. 여긴 주차가 항상 문제다. 정문을 지나 우회전을 하면 큰 원을 그리며 건물 입구를 지나 다시 출입구로 나오는 구조다. 빈 주차 칸을 찾아 두 바퀴를 돌았다. 도서관 입구에서 제일 멀고 비좁은 칸에 전진 후진을 몇 번 하여 간신히 차를 댔다.


책은 금세 찾았다. 달랑 한 권만 빌리니 주차한 노고가 아까웠다.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 책을 하릴없이 검색했다. 제목은 가물거리는데 다행히 이름이 불쑥 떠올랐다. 손 현 작가(https://brunch.co.kr/@thsgus#info). 저자명 검색으로 나온 결과는 손현수, 손현옥... 두 번째 검색  페이지에 손현이 나온다. 찾아봐야지 했던 책 보다 먼저 출판된 작가의 다른 책에 눈이 갔다.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서고에서 찾은 책은 생각보다 두껍고 글보다 사진이 많다. 기록을 남기려고 작정을 했구나 싶었다. 평생에  번  하기 힘든 여행이니 그럴 만도 하다.

퇴사를 하고 생애 첫 모터사이클을 사고 동해항을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유럽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빌릴까 말까, 사라락 훑어보는데, 어라, 가슴이 살짝 두근거린다.


늘 그렇듯 한 권 빌리려다 세 권을 빌렸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메일 한 통을 써 보내고, 3월 프로모션 제안 메일을 검토하고 담당자와 긴 통화를 했다.


이제 잠깐 딴짓 타임. 뭐부터 읽을지 정해야겠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건 무게를 늘리는 일이니까 당장 읽지 않을 책은 빼야 한다.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생각보다 많이 얇고 작은 판형이다. 침대 머리맡에 두면 딱이겠다. 집에 가져가자.

다음은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몇 장만 읽을 요량으로 책을 펼쳤다. 간결한 문체가 마음에 든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며 드라이브하 내용 술술 읽힌다. 잠깐  두 꼭지를 읽었다. 의외로 글보다 사진들이 눈길을 오래 붙든다. 한 장, 한 장 확대하듯 한참씩 봤다. 아, 이런. 또 가슴이 두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낮 12시 30분에 출발하여 양평, 횡성, 강릉을 지나 6시쯤 동해항 근처 관광호텔에 도착했다. 날 배웅하러 멀리서 온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영배다. 묵호항에서 저녁을 들고 숙소까지 걸었다. 영배가 이십 대 중반에 캐나다 토론토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의 첫날, 그 막막했던 기분을 이야기해 줬는데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피로가 제법 누적됐고, 심경은 여전히 복잡했다.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 손현 저> 중에서


책의 첫 꼭지에서 배웅 온 친구의 말을 빌어 대장정에 나서는, 설레면서도 막막한 작가의 심경을 짧게 내보인다. 영배의 말을 알 것 같다는 손현의 기분이 뭔지 나도 알 것 같다.


지난 연말부터 연초까지 금년에 하고 싶은 것과 해내야 할 을 길고 깊게 고민하고 추려 두 가지를 남겼다. 둘 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고, 어느 지점까진 홀로 가야 하는 일이라 생각다. 그리 길진 않겠지만 자발적 고립이 불가피하다.

220여 킬로미터를 달려 옵티머스팀과 함께 숙소를 잡았다. 캠핑카팀은 차량 자체가 숙소라서 쉬엄쉬엄 오는 중인 것 같다. 덕분에 저녁으로 라면을 얻어먹고 빨래를 하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자는 동안 나보다 일주일 가량 앞서 모터사이클로 출발한 다른 여행자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쯤은 바이크를 받으셨겠군요. 이제 광야가 기다립니다. 어서 오세요."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 손현 저> 중에서


2022년, 나는 나의 광야의 초입에 섰다.

어떡하든 갈 것이고, 어떻게든 도달할 것은 예감했다. 그래서 가슴은 설레고, 그래서 마음은 아득하다.


집에 가면 이 책부터 읽을 것 같다. 느닷없이 다음 목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모터사이클을 검색하고 지금 나이의 내 몸이 견딜만한 여정인지를 상상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화이트 아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