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또는 그런 일
- < 출처 : 네이버 사전 >
유명 작가들도 작법서에서 글 잘 쓰는 방법을 전할 땐 전반적으로 어조가 조심스럽다. 그래도 확신 가득하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팁은 있다.
"글은 고쳐 쓰면 무조건 좋아져요."
금년 사업 계획의 두 번째 산을 넘고 있다. 예상보단 오래 걸렸지만 첫 고비를 간신히 넘기니 어느새 초여름이었다. 두 달가량 존폐의 기로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마침내 긍정의 결과를 받은 당일은 홀가분했지만, 다음 스텝을 생각하니 곧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제는 시간이다. 갈길은 먼데 벌써 여름이다. 길게 끈 첫 단계의 여파를 상쇄할 무엇이 절실했다.
아무리 덥다 덥다 해도, 가을 금방 온다.
마음이 서늘해졌다.
두 번째 고개를 함께 넘을 파트너 업체가 가진 핵심은 두 가지다. 포장 장비 개발과 원단 생산.
장비 개발을 일임한 건 투자 비용 분담 문제와 생산에서 포장으로 이어지는 공정의 효율을 고려한 결과였다. 그 업체가 이익을 더 갖게 해서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낼 심산도 있었다.
문제는 장비 개발에 너무 긴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 코로나 전부터 착수한 플랜인데 아직도 붙들고 있다니. 모든 것이 멈췄던 코시국 2년을 뺀다 해도 과하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급하니 남의 사정은 작아 보인다.
이 장비가 상품 개발의 키(key)이기에 그 업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기도 하고, 해당 업체의 (독점) 이익률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이걸 내가 한다면? 빠른 개발을 장담하긴 어렵지만 성공만 한다면 시간은 확실히 줄일 수 있다. 단, 파트너 업체의 오해를 살 수 있고, 반발이 클지 모른다. 기껏 아낀 시간을 업체의 비협조로 제품 양산 단계에서 더 길게 까먹을 수도 있다. 리스크다. 그러나 업체만 믿고 있다가 겨울 성수기를 놓칠 확률도 크다. 해를 넘길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장고 끝에 리스크를 안기로 결심했다. 해명과 설득은 나중 일이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아직은.
앞서 드라이브를 소재로 본 브런치 북의 글 두 개를 썼다. ‘3:41 pm’과 ‘드라이브처럼'
훌쩍 나선 길에서 떠올린 단상을 이 책의 목차(의 소주제)와 연결하여 썼다. '오후 세시 사십일 분' 은 '늦음'으로 글을 열고 '아직 늦지 않음'으로 글을 닫았다.
'드라이브처럼'은 정해진 내 위치를 벗어난 길 위에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본 내 자리, 내 포지션에 관해 썼다.
여유로운 드라이브는 생각을 풀어주는 효과가 컸다. 자유 주제 에세이였으면 쓰기가 조금 더 편했겠고, 몇 개 더 쓸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북은 목차에 따른 소주제가 정해진 글을 써야 한다. 일정이 많이 밀려있기도 하고. 앞의 글 두 개는 몇 번을 쓰고 버리기를 반복했던 글제였는데, 다행히 두 번의 드라이브와 연계해서 마무리하고 발행했다. 쉽지 않았다.
원고지 600매 쓰기를 시작하기 전의 내 글은 드라이브 같았다. 쓰고 싶을 때 쓰는 글. 불쑥 생각나면 훌쩍 쓰는 글. 동서남북도 상관없고, 거리와 경로도 개의치 않고 썼다. 어차피 목적지가 없으니까. 자유롭게, 쓰거나 혹은 말거나. 그래서 자주 안 썼나.
이 책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참으로 에세이스러운 글만 썼다. 글과 글의 연관성은 쓴 사람이 나라는 것 밖에 없다. 이런 류의 독립적인 글의 퇴고는 말 그대로 (가볍게) 고쳐 쓰기다. 불쑥 든 생각이라도 어느 정도 꼴은 갖추고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풀어서 쓸 수 있다. 다 쓴 후 한두 번 다시 읽으며, 순서 또는 조사, 부사, 서술어를 바꾸고 고쳐 발행했다. 퇴고에 크게 시간과 품이 들지 않았다. 생각 가는 대로 따라가며 쓰고 고치고 다듬고, 끝.
서울, 부산처럼 주제라는 목적지가 생기면 경로의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국도로 가도 되고, 고속도로로 가도 된다. 자전거로 간들, 오토바이크로 간들 누가 뭐랄까. 산 넘고 물 건너 걸어가도 된다.
목차를 갖춘 책 쓰기(원고지 600매 쓰기)는 목적지가 있는 여행, 출장처럼 느껴진다. 거기에 도착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고 다양하다. 길이 다양하면 쓰기 쉬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외려 어렵다.
이 글의 주제는 ‘퇴고, 고쳐 쓰기'다. 도착지는 선명한데, 썼던 글을 대여섯 번 완전히 갈아엎었다. 생각을 쥐어짜서 쓰고 보면 선택한 소재와 주제의 연결이 억지스럽거나, 내용이 너무 감성적이거나, 결론이 헐거웠다. 그러면, 새로 쓸 밖에 도리가 없다. 소재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일주일에 두 개의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물 건너 간지 오래다. 갈아엎고 새로 쓰다 보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는 일이 잦았다.
주제가 있는 글은 결론을 생각하는 일이 출발지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렇다. '퇴고'란 무엇일까, '고쳐쓰기'란 내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퇴고는 고쳐 쓰기라는 정해진 답이 나와있음에도 막상 첫 줄을 시작하면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써도 되는가, 빗대어 생각할 것은 없는가, 재삼재사 고심한다.
정의와 결론이 정리되면, 어떻게 하면 읽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까를 또 고민한다. 소재는 주제와 결론으로 향하는 경로다.
내가 필명 높은 작가라면 '퇴고가 필요한 이유 5가지', '고쳐 쓰기 비법 강의' 같이 정보 나열형 글로 써도 되겠지만 초보가 그렇게 쓸 수도 없고, 억지로라도 그리 쓰면 큰일 난다. 브런치에는 글쓰기 강의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이야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내가 그러면 누가 신뢰하겠으며, 누가 읽어나 줄까. 그렇다면 내 생활과 삶에서 주제와 어울릴만한 글감을 찾아서 글제와 결합하여 독자가 자연스레 체감하는 에세이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욕심? 맞다. 내 능력을 넘는 욕심이다. 안다.
직접적인 전달의 문장보다는 읽으며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르게 하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매우 아팠다 보다는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찧은 듯 아팠다로 쓰고 싶은 욕심 같은 거.
이 책은 나 같은 글쓰기 왕초보 아저씨도 책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어요, 여러분 용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에세이라고 (나 혼자) 정의했으니까.
고쳐 쓰고 다듬는 퇴고의 과정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무더운 어느 날 오후에 다시 가창댐으로 차를 몰았다. 양쪽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는 이 길이 좋아졌다. 지난번 드라이브를 할 때 지났던 국도 길이다. 가창댐까지만 갔다가 회사로 돌아오면 30~40분 정도 걸린다. 가볍게 바람 쐬기 좋아서 요즘 가끔 간다. 초록 사이로 시원하게 달리면 막혔던 생각이 곧잘 뚫리기도 해서 좋다.
노견 쉼터에 차를 세우고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장비 개발에 도움 될만한 정보를 가졌을 가능성이 1%라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이런 장비를 만들려고 합니다, 혹시 추천할만한 업체나 사람 있나요?' 돌리고 또 돌리며 설명을 반복했다.
콜럼버스가 달걀 끝을 깨서 탁자에 세웠을 때 주변 사람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험블 하지만, 어쨌거나 생각보다 빨리 장비를 손에 넣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자동' 부분은 많이 생략되어 수동 기계가 돼버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인건비는 대폭 늘겠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 시도를 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과 이게 이렇게 쉽게 풀린다고? 하는 조금은 어이없는 마음이 교차했다. 달걀을 세운 느낌.
파트너 업체엔 아직 알리지 않았다. 그 업체의 심경은 어떨까?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달력은 아직 8월이다.
1차 테스트는 장비가 적합하게 작동하는지 여부. 괜찮았다.
돌파구를 여는 힌트를 줬고, 조립하도록 공방도 빌려준 후배와 생맥주를 마셨다. 들떠서 말이 많았다. 후배에게 미안하고 조금 부끄러웠다.
2차는 소재 적합도 테스트. 두 가지 두께의 소재를 하나로 좁혔다. 0.05mm 차이가 이리도 크다니.
3차 테스트. 상품 조립부터 장비 통과까지 일괄 공정을 시험했다. 반나절이 걸렸다. 다 끝나고 테스트 결과를 엑셀에 정리를 하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한때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업이 엎어졌을 때 그랬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서기로 하면서 ‘일단락'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실패는 실패로 인정하자 그리고 지난 일은 이제 그만 덮고 잊자, 그래야 내가 산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어쩔 수 없이 회고를 하게 돼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썼다. 남의 일처럼, 남이 만든 드라마처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실패를 초래한 '나'를 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었다.
내 삶의 일단락. 마침표를 꾹꾹 눌러 선명하게 찍었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한다.
- <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중에서
올해 계획의 실행과 수정을 반복하며 새삼 내 태도에 놀라고 있다. 노심초사의 시간이 길었는데, 쉽게 달뜨지 않고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마음속은 복닥거려도, 차분하게 계획을 고치고 새로 보강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예전의 나는 이러지 않았지 싶다.
지금 내가 하는 사업은 망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일이다. 마침표를 찍고 봉인까지 했던, 돌아보기 싫은 그 시간들.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내가 바뀐 건 알고 있었는데, 그 폭이 제법 많이 큰 것 같다.
성공, 실패, 재기 같은 명사로 구획하고 고정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와닿는다.
글은 고쳐 쓰면 '무조건' 좋아진다.
퇴고는 욕심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
지난 팔 개월간 예전보다 자주 글을 쓰면서 체감하고 있다.
글은, 고쳐 쓰면 반드시 좋아지더라.
금년 1월부터 오늘까지, 계획을 고쳐 쓰고 다시 실행하며 예까지 왔다. 어느새 가을의 초입이다.
'고쳐쓰기'라는 동사로 1년의 삶을 여러 번 다듬으면서 지금까지는 꽤 잘 해왔다고 자평한다. 속은 많이 탔지만.
삶도 고쳐 쓰면 '무조건' 좋아질까?
연말에 '그렇다'라고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