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물성(物性)

제목 붙이기

by 수필버거

밤새 비바람이 몰아쳤다. 태풍이었다.

다리에 선뜩한 냉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아직 어둡다. 빨간색 숫자로 표시되는 LED 시계를 흘끔 봤다. 5시. 상체만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당겨 다리까지 덮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과 함께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 9월 초구나. 궁할 때 비상금 발견한 기분이다. 안도하며 까무룩 다시 잠이 들었다.


출근해서 공장 문을 열고 고양이 밥을 채우고 물을 갈고 똥을 치우고 컴퓨터를 켜고 믹스 커피를 탔다. 아직 7시 반이다. 글을 쓸까. 열흘 넘게 발행하지 못하고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처박아 둔 글을 불러냈다. 문단과 문단의 어색한 이음새. 그리고 또 이것저것,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컴퓨터 화면에서 고칠까 하다가 프린트를 했다. 종이에 인쇄하면 글의 전체 흐름이 좀 더 일목요연하게 보일 것 같은 기대. 조망하며 덜어내고 고쳐 쓸 부분을 잡아내려 했다.


브런치 글을 출력하면 사진은 나오지 않고 글만 인쇄된다. 처음 알았다. 폰으로 볼 때는 글이 길어 보이지 않았는데 3장이 나온다. 물론 단락 사이에 빈 공간이 많아서지만.

마지막으로 고쳐 쓸 때의 생각과 의도가 떠오른다. 그날, 구부정하게 노트북 앞에 앉은 내가 보이는 것 같다.

손에 쥔 빳빳한 종이의 질감은 산뜻하고, 까만 글씨와 흰 여백은 말쑥하고 단정하다. 브런치에 쓴 모든 글을 종이에 출력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점차 가늘어지던 비가 그쳤다. 산책을 가도 될 것 같다. 비 핑계로 빼먹으려 했는데. 걷는데 비가 다시 오면 어쩌나, 진흙에 신발 버릴 텐데, 오만 생각이 엉덩이에 주렁주렁 무겁게 들러붙는다. 늘 그렇듯 운동화를 신기까지 한참 걸렸다.


코로나 전까진 아침 운동으로 자전거를 주로 탔다. 자전거와 산책의 비율이 7:3, 8:2 정도였다. 라이딩 코스는 10개가 넘었다. 동서남북 중 산으로 막힌 서쪽을 뺀 세 가닥 큰 방향 줄기에 요리조리 돌아 우회하는 길의 숫자를 곱해서 그렇다. 코스가 많은 건 같은 길을 매일 타면 지겨워서다. 빠른 속도가 주는 상쾌한 바람의 쾌감만큼 풍경의 세밀함은 놓치게 된다. 나무가, 신천(川)이, 도로가 뭉텅뭉텅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 코스를 바꿨다. 단조로운 풍경은 운동을 노동으로 만든다.


앞산 산책 코스는 달랑 세 개다. 그것도 40분, 50분, 1시간으로 나눠서 그렇지, 방향으로 보면 두 개다. 왜 산길은 매일 가도 지겹지 않은 걸까.


산책로 초입의 나무 계단을 오르면 맨발 산책로와 블록이 깔린 길이 나온다.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다. 밤새 분 큰 바람에 날린 잔가지가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길 옆 언덕에는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태풍이 이름값을 한 모양이다. 그래도 하늘은 점차 갰다.

물기 머금은 짙은 나무 냄새, 비에 씻긴 깨끗한 초록잎, 나무 사이로 보이는 갠 하늘, 올 들어 제일 많은 물이 콰르르 소리 내어 흐르는 계곡. 코와 눈과 귀로 동시에 산이 쏟아져 들어왔다.

걸으면, 천천히 자세히 오래 보게 된다. 나태주 시인의 말대로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오늘의 산은 어제의 그 산과 같지 않다.





글을 쓰고 나면, 몇 번 고치고 발행 직전에 제목을 붙인다. 제목부터 정하고 쓰는 일은 거의 없다. 고쳐 쓰다 보면 제목이 국건더기처럼 스윽 떠오른다.

단골 설렁탕 집의 메뉴는 설렁탕, 특 설렁탕, 양탕, 도가니탕처럼 들어가는 고기 부위에 따라 몇 개 되지만 육수는 한 가지다. 내 글이 이 집 탕 같다. 육수, 즉 글의 베이스는 거의 같아서다. 사람의 관점, 생각의 경로, 태도 같은 건 쉽게 바뀌지 않는 글의 육수에 비할 수 있다. 글감, 소재, 결론이 건더기고, 숟가락으로 휘저어 떠오르는 것을 제목으로 삼는다.

삶의 특정한 시기에 제목을 붙인다면, 3분의 2가 지난 금년 8개월의 건더기는 무엇일까.


애 끓인 시간은 길었지만 성과로 볼만한 것은 두 개 정도로 추릴 수 있다. 앞의 글에서 밝힌 대로다.

자전거 라이딩을 할 때, 집을 나서 도로를 달리다가 신천을 만나면 풍경이 바뀐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던 대로에서 물길 따라 달리는 자전거 전용도로로 접어들면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라이딩을 두 시간, 세 시간 해도 변화는 고작 몇 번만 기억에 남는다. 빠른 자전거로 달리면 그렇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살았으면 지금쯤 벌써 가을이라고 화들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두 개의 성과만 기억에 남았기 십상이다.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고심과 노고는 잊혔으리라.


앞산 산책로 나무 계단을 오르면 오늘처럼 꼬물거리는 지렁이를 보는 날이 있고, 분주히 오가는 개미를 보는 날도 있다. 겨울에 잿빛으로 앙상하던 나뭇가지가 금세 초록색으로 덮였다가 다시 빨간 단풍으로 바뀐다. 꽃들은 차례로 계절에 불려 나와 피고 진다. 며칠 산책을 빼먹고 산길에 오르면 그 짧은 새에도 그림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천천히 살피며 새기게 되는 속도의 선물이다.





아침에 브런치 글의 퇴고를 위해 프린트를 하면서 앞에 쓴 글들의 목록을 훑듯 읽었다. 60여 개.

제목만 봐도 그날의 풍경, 그러니까 상황, 상태, 마음, 생각, 의도가 자세히 떠올랐다.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던 어떤 날, 세찬 비를 우산 없이 맞은 어느 날, 노랑꽃처럼 희망이 몽글 피던 날, 노트북을 켜고 이런저런 생각을 글자로 바꿔 한 자 한 자 흰 화면에 박아 넣었다. 그런 글 육십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출력 버튼을 누르면 사각거리는 하얀 종이 위에 선명한 검정 활자의 모습으로 내 손에 잡힐 것이다. 지난 여덟 달의 시간 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던 나를 물화(物化)할 수 있다. 기억을 만질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자세히 오래 볼 수 있다.


한걸음 한걸음 자박자박 걸어온 나를 글로 썼다. 어떤 날들의 나를 차곡차곡 브런치에 쌓았다.

시간을 마디게 느낀다. 연말까지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아직 시간이 있다. 다행이다.


자칫 큰 기억만 듬성하게 남았을 여덟 달을 글로 쓰며 촘촘해졌다.

자주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랜선 글쓰기 모임에 신청을 하던, 지난겨울의 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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