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은 일요일이었다. 1월 1일이 훅 들어오는 월요일인 것보다는 백 배 낫다는 생각을 했다. 준비운동 같은 느낌이랄까, 완충재 같기도 하고.
해도 바뀌고 했으니 뭔가 각오를 다지는 마음으로 출근은 했지만 하고자 했던 일은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애꿎은 커피만 두 잔 째 마시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제 시작할걸. 사무실 의자에 앉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좁은 내 사무실을 좌우로 훑고만 있었다. 젠장, 견적이 안 나오네. 전날밤에 대충 손으로 슥슥 그려 봤을 때랑 줄자로 실측하는 거랑 이렇게 다를까.
회사 내 방에 있는 침대를 없애기로 결정 한 건 며칠 전이었다. 오래 썼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1인용 평상 같은 건데, 거기에 토퍼를 깔고 그 위에 다시 홑겹 요 한 장, 그리고 담요와 베개가 있다. 너무 늦어 퇴근을 해도 잠깐 자고 바로 나와야 하는 날은 그 침대에 세수도 하지 않고 잤다. 사업이 엎어지고 재기의 칼을 갈며 며칠씩 회사에서 자던 생각이 났다. 월말에 작업이 몰려 정신없이 일하다가 피곤에 못 견딜 때면 잠시 누워 쪽잠도 자고 그랬었다. 정이 들었달까,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달까. 그리울 세월은 아닌데. 아무튼 한 번씩 사무실 가구 배치를 새로 하면서도 왠지 버리지 못한 침대다. 글 쓰고 책 읽는 책상을 별도로 놔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침대를 그냥 두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게 뭘 그리 미련 둘 물건이라고, 며칠을 고민하고 겨우 결심 했다. 코로나 이 년 동안은 일이 많지 않았으니 쓸 일도 없었다.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은 치우는 게 옳은데... 음.
그러고 보니 어느새 사부작사부작 쌓여서 책장을 꽉 채우고 있는 책도 정리할 마음이 들었다.
온전히 일요일 하루를 바쳐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바꿨다. 들어냈다가 집어넣었다가 또 궁리를 하다가 해가 졌다. 뒷정리는 또 언제 하나. 우리에겐 언제나 내일이 있잖아. 에라, 모르겠다. 가자, 스위트 홈으로. 네 캔 만천 원 맥주를 사들고 퇴근했다.
2일, 월요일. 11시에 예스 24 중고서점이 문을 연다. 책으로 가득 채운 큰 박스 3개를 차에 싣고 갔다. 달랑 8권 팔았다. 바이백, 박하네. 다시 책장에 꽂아 둘까?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다. 이러다가 맨날 못 버리고 처재여 있었는데. 이왕 큰 마음먹었을 때 처분해야 한다. 거절당한 책(다시 3박스)을 싣고 곧장 고물상으로 가서 무게로 팔았다. 오천 원 받았다. 요즘 파지 회수도 안 해가는 지경이라며 파지값이 똥값이란 사장님의 말씀. 달삭거리던 입에 믹스 커피 한 잔을 부어 넣었다.
침대를 치우고 만든 공간에 1 m50 cm X 90cm 상판의 책상을 놓고 남는 공간에 일인용 이케아산 빨간 흔들의자도 놨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광활하다. 책장에도 공간이 생겼다. 11월과 12월에 산 책 11권을 꽂았다. 엉? 또 샀구나. 책을. 새삼 놀람. 그래도 자리가 남는다. 사무실이 넓어 보인다. 사무용 책상은 늘 아인슈타인의 책상처럼 복잡하게 온갖 서류가 쌓여 있다. 컴퓨터, 모니터, 우퍼와 좌우 스피커, 프린터, 라우터 선을 모조리 빼서 재배치를 하고 서류 더미도 한참 동안 정리했다. 어라, 또 해가 진다. 집에 갈까 하다가 읽던 책을 꺼내 흔들의자에 앉았다. 읽으니 또 메모할 게 자꾸 생각이 난다. 뭐 없을까, 공장을 돌아다니다가 비닐을 씌워둔 작은 협탁 하나가 보였다. 잠시 고민. 기껏 넓어진 사무실에 뭘 또 자꾸 들이나... 그래도 흔들의자 옆에 놓으니 딱이다. 리갈 패드와 볼펜을 올려놓고 음악을 틀고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평화롭다. 근데 책 보는 자리로는 좀 어두운데? 스탠드를 하나 살까? 광활한 책상 위에 덩그러니 있는 글쓰기용 노트북을 무릎으로 옮기고 검색을.... 아, 이거 아닌데...
암튼. 비웠다.
연초에 시전 한 비우기, 버리기. 아침 쾌변 같다.
정리된 기분. 기대 이상으로 좋다. 좀 괭한 감은 있지만. 비워야 채운다.
열심히 계획한 대로, 올 한 해 동안 성장과 보람으로 채워지리니.
다 썼다. 2023년 첫 글을.
이제 브런치도 채웠으니, 룰루랄라 퇴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