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버거 Jan 07. 2023

브런치 나우는 어디 갔을까

브런치 나우를 살려내라는 항의 글을 쓰다가 멈추고 생각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앱 개편 때 없앴더라도 벌써 되살리지 않았을까. 브런치에 드문드문 들어오는 나도 브런치 앱 개편 후 나우 기능이 사라졌다는 글, 그래서 아쉽다거나 화가 난다는 글을 심심찮게 보았다. 브런치 팀도 이런 기류를 모를 리가 없을 게다. 숨겨놨나?

꼼꼼히 찾아보자.






역시, 나우는 없어지지 않았다. 웹 브런치는 바뀐 게 없으니 얘기할 것도 없고, 앱은 '발견' 카테고리 제일 하단 '관심 가는 이야기에 집중해 보세요'가 나우였다. 나우란 용어만 앱에서 사라진 거였다. 친절(?)하게 카테고리로 나눴구나. 보기 쉬우라고 찾기 쉬우라고 그랬겠구나. 그러 더 낫다는 느낌은 없다. 익숙한 것에 집착하는 나는 나이가 든 가? 어쨌건 다행이다.

  

나우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상실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이제 브런치는 온전히 매니지먼트 팀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플랫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5만 명의 작가가 매일 쏟아내는 글 중에서 브런치 팀의 추천과 픽이 아니고서는 내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될 확률은 더 희박해질 것이고, 내가 직접 새로운 작가를 발견할 기회는 사라진다는 상실감. 독자로서의 내 특권과 권력을 박탈당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들의 선택 기다려야 하는 세상. 작가 독자의 노력은 무용한 세상이 됐구나 했었다.




브런치에 독자 모드로 들어오면 '구독'부터 읽는다. 구독하는 작가가 150명이 넘어도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소수다.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 읽으면 메인 페이지의 추천 글을 읽는다. 브런치팀이 여러 기준으로 선정하여 메인에 올린 글들이다. 읽힐 확률이 높은 글을 추천했을 텐데, 내가 여기서 제목을 터치하여 읽고 공감하는 글은 많지 않다. 라이킷까지 누르는 글은 더 적다. 구독까지 누르는 일은 거의 없다. 브런치 팀 기준과 내 기준이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읽을 때마다 한다.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 취향은 고유하니까.


메인까지 읽으면 나우로 간다. 방금, 2분 전, 30분 전에 발행한 글들이 있다. 오로지 발행한 순서만이 기준이다. 기준이 선명하고 공정하다. 의문을 가질 필요도, 째려볼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쭉쭉 스크롤하다가 눈에 띄는 제목(역시, 제목이 중요하다)에 멈추고 읽는다. 라이킷은 물론이고 구독을 누르는 일도 흔하다. 어떤 작가는 글이 너무 재밌고 좋은데도 구독자는 달랑 15명이다. 최근에 브런치 작가 선정이 된 사람들은 비교적 한산했던 초기에 비해 엄청난 경쟁 속에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작가의 글을 읽고 구독을 누르고 나면, 마치 내가 발굴한 느낌이 든다. 발견하게 해 준 나우가 특별한 혜택 같고, 보석 같은 작가를 발견한 내가 뿌듯하다.


브런치 작가 선정 기준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한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의 저자 김키미 작가는 브런치 팀 직원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작가 선정은 브런치 베타 오픈을 앞두고 '광고 도배'를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했다. 한 명의 작가가 아쉬운 오픈 초기에 쓰겠다는 사람을 막는 선택이라서 고육책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필요 위한 고심의 결과가 브런치 시그니쳐가 된 아이러니. 내가 여러 글에서 브런치 작가 타이틀은 마케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작가는 상태라서, 쓰는 사람과 쓰겠다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겠다는데 누구도 토를 달 수는 없으니 이제 와서 보면 작 신청 제도는 신의 한 수라 할만하다. 기준이 베일에 쌓인 것도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훌륭하다 하겠다.


작가의 글을 다음 메인에 올리는 기준, 에디터 픽이 되는 기준도 브런치 팀에서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 물론 라이킷 수, 구독자 수 등 나름 공정하고자 설정한 지표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지표도 허점은 있기 마련이다. 완전히 공정하고 공평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인스타그램이던, 유튜브던 모든 SNS가 그렇듯 초기 진입한 사람은 어드벤티지를 누릴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듯 기준이 모호하면 각자의 추론과 추측이 무성해진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각자도생 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영화 미스트(프랜크 다라본트 감독/2008년 작)의 카모디 부인과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연상호 감독/2021년 작)의 정진수 의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논리와 확증편향의 증거를 들이민다. 종교의 탄생이고 교주의 탄생이다. 그다음은 한몫 더하는 사람들이 출몰한다. 카모디와 정진수를 광적으로 맹신하는 사람들. 사제 계급이 탄생한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간혹 브런치 작가 되기 유료 클래스 같은 걸 볼 때 드는 생각이다. 글을 쓰고 싶고 작가 소리를 듣고 싶은데, 책을 출간할 자신은 없는 사람들이 타겟이다.


하긴, 이제 와서 브런치 팀에서 작가 선정 기준이나 노출 기준 같을 걸 밝혀서 괜한 논란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

나는 없어진 줄 알고 짜이 났던 나우가 건재해서 좋으니 그것으로 됐다. 괜한 생각을 했다.


브런치 팀, 잘하고 있어요.

어딘데, 내가 뭐 하러 이런 글을 썼을까나.



   


 




매거진의 이전글 버리자. 채워지리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