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세 시였다. 베개가 눅눅했다. 눈을 감았다.
다시 잠이 들었나 싶다가 눈을 뜨면 10분, 5분이 지나 있었다. 몇 번을 반복했다. 이러면 차라리 일어나는 게 낫다.
뒤척이다가 옅은 흉통을 느꼈다. 빨리 잡아야 한다. 겁이 났다.
부엌으로 가서 저용량 아스피린과 혈관 확장제, 저용량 혈압 강하제 등의 약 4알이 든 약봉투를 찾아서 입에 털어 넣고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심장을 물로 씻는 기분으로. 다시 침대로 기어들며 바라본 디지털시계의 빨간 숫자 앞자리는 4로 변해 있었다.
누가 심장을 빨래 쥐어짜듯 하는 느낌, 기다란 작대기로 지그시 찌르는 느낌. 불쾌했다. 약을 먹었으니 혈관이 확장돼 통증이 멈춰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흉통은 외려 조금씩 심해졌고 이마에 배어 나던 땀은 방울로 맺혀 흐르기 시작했다. 가슴과 등도 축축해지고 있었다.
약 네 알을 한번 더 먹기는 부담스러웠다. 혈관 확장제만 꺼내 먹으면 되겠는데, 눈앞이 흐려 고만고만한 크기의 하얀 알약 중 확장제를 구분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아내를 깨웠다. 119를 부르자는 아내 말에 한 알 더 먹고 잠시만 기다려보겠다고, 약만 찾아달라고 했다.
아내에게 또 걱정을 끼쳤다. 난 왜 이러고 사나, 아내는 뭔 죄인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팔꿈치를 부엌 바닥에 대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절하듯 엎드렸다. 이러면 조금이나마 통증이 덜한 기분이었다. 드라마 같은 데서 심장이 아프면 가슴을 쥐고 쓰러지는 장면을 본다. 그건 아마도 배우가 이런 걸 안 겪어 봐서일 거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땀이 식는지 한기를 느꼈다.
지나갔구나.
심정지를 겪은 적은 적이 있다. 극심한 공황장애에 몇 년을 시달리고 살다가 종내 심장이 멎었었다. 그때도 딱 이렇게 시작했었다. 쥐어짜는 고통, 막대기로 찌르고 후비는 지저분한 아픔을 느꼈고 당시에는 비상용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던 니트로글리세린을 혀 밑에 네 번을 밀어 넣고도 흉통이 가시질 않아 119를 누르고 정신을 잃었었다. 코마 상태, 중환자실, 일반 병실을 차례로 거치고 두어 달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후유증에 한참을 시달렸었다.
몇 년 동안 문제가 없어서 니트로글리세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출근을 했다가 10시 반쯤 내 주치의 역할을 하는 친구 병원에 가서 응급용 설하제를 열 알 처방받았다. 내 병력과 의료 히스토리를 다 아는 친구의 걱정 한 바가지는 덤이었다. 그냥... 스트레스 탓이야, 친구에게 말하고 약국으로 갔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죽을 생각도 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아무리 찾아도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무책임하게도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막상 심장이 멈출지도 모르는 극심한 흉통을 겪을 때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는 것이다. 지난 10년 정도 기간 동안 약하거나 센 흉통을 몇 차례 겪으며 매번 같은 생각을 했었다. 살아야 한다.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고 싶다는 생각은 3할 정도, 지금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7할 정도였던 것 같다.
남은 식구들이 살게는 해주고 가야 한다는, 아직은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잠이 부족해서였을까, 늦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자불 듯 책을 읽다가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이면 무엇을 할 것이냐던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올랐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라, 글을 쓰고 있네.